소설 쓰듯 연출… 배우 빚는 감독
▲ 영화 <밀양> 촬영장에서 이창동 감독. 그는 배우복이 많은 감독이 아니라 배우를 고르는 탁월한 안목을 가진 감독이다. | ||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그에겐 배우복이 아닌 배우를 고르는 탁월한 안목이 있고 그들이 능력을 넘어서는 호연을 펼칠 수 있게 만드는 연기 지도력이 있다. <초록물고기>에 출연한 한석규는 당시 스타성은 인정받았으나 연기력은 아직 검증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 감독과의 작업으로 그의 연기력 검증은 마무리됐다. 설경구나 문소리는 사실상 무명의 배우를 이 감독이 픽업해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영화 <밀양>에서 함께 작업한 전도연 정도가 스타성과 연기력에서 모두 검증된 유일한 배우였다.
이처럼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하나같이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는 까닭은 이 감독의 감독론과 연결돼 있다. 이 감독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날카로운 시각과 그런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데 있다. <초록물고기>에선 개발에 소외된 이들의 일그러진 삶을 다루고 있는데 그 안에서 출세를 꿈꾸던 한석규의 내면을 중심으로 영화를 풀어 간다. <박하사탕> 역시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던 설경구의 내면을 통해 광주민주화항쟁이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의 인정받지 못한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에선 장애인 문소리와 사회부적응자 설경구의 내면세계를 통해 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번 영화 <밀양> 역시 극한 상황에 처한 한 여성이 절망과 슬픔, 그리고 덧없는 희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전도연이 있다.
송강호는 이 감독의 연기지도법을 “연기를 세밀히 규정지어 이끄는 스타일이 아닌 캐릭터가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배우가 공감해 연기로 끌어내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한다. 이 감독 역시 “(연기지도는) 특별히 하는 게 없다. 그래서 배우들이 힘들어 한다”면서 “배우들이 갖고 있는 내재적 힘이 최대한 표출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고 기다릴 뿐인데 너무 기다려서 배우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