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KS 4차전, 삼성 2회 8점 ‘되로 주고’ 두산 3회 12점 ‘말로 갚고’
지난 포스트시즌 역사에서도 그랬다. 수많은 배트가 돌았고, 동시에 승자와 패자가 탄생했다. 극적인 환희와 좌절의 순간들이 아로새겨졌다. 그동안 타자들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던 경기는 언제였을까, 그리고 누가 가장 멋지게 혹은 꾸준히 활약했을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봤다.
두산은 유독 포스트시즌에서 기억에 남는 타격전을 많이 펼쳤다. 지난해 10월 3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이 삼성을 13-2로 완파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 7점차 열세 뒤집고 역전승한 두산
두산은 ‘가을의 팀’이다. 그리고 ‘타격의 팀’이다. 올해 두산은 막강한 선발 투수진을 앞세워 정규시즌 우승을 일궜지만, 투수진이 허약할 때도 타선의 응집력을 앞세워 가을 무대를 밟았다. 그만큼 두산이 가을 야구에 남긴 타격의 역사가 많다.
7점차 역전승은 정규시즌에서도 쉽게 보기 어렵다. 두산은 포스트시즌에서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역대 최다 득점차 역전승 기록 1, 2위가 모두 두산의 작품이다. 특히 정규시즌 3위로 올라가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도달한 지난해에는 무려 7점차 열세를 뒤집어서 이겼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었다.
넥센에 2승 1패로 앞선 채 4차전을 시작한 두산은 7회까지 2-9로 끌려갔다. 패색이 완연했다. 그러나 7회부터 흐름이 달라졌다. 7회 1사 2·3루서 터진 김재호의 2타점 적시타가 신호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은 5점은 무척 멀어 보였다. 4-9였던 8회 1사 3루서 김현수의 2루수 땅볼로 1점을 더 추격하면서 5-9.
이게 끝이 아니었다. 9회 1사 1·3루서 허경민의 적시타와 김현수의 2타점 적시타가 연이어 나왔다. 8-9 1점 차. 결국 계속된 1사 1·3루 찬스서 양의지의 좌중간 2루타가 터져 나왔다. 여기에 당황한 넥센 좌익수 문우람이 실책까지 범해 10-9 역전. 두산 더그아웃은 ‘기적’을 본 자들의 함성과 포효로 가득 찼다. 목동구장 두산 관중석이 떠나갈 듯했다. 전의를 잃은 넥센은 최주환 타석에서 폭투를 범해 양의지에게도 홈을 내줬다.
두산은 이날 7회부터 9회까지 3이닝 동안 9점을 뽑았고, 9회에만 6점을 얻어냈다. 역대 9회 최다 점수차 역전승 기록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준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된 두산 이현승은 “기적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눈앞에 벌어진 것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선 무슨 일이?
이에 버금가는 역전극이 15년 전에도 나왔다. 2001년 두산과 삼성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었다. 타격에 관련된 각종 기록이 물밀 듯 쏟아진, ‘불타는 하룻밤’이었다. 그때도 주인공은 두산. 6점 차를 뒤집었다.
두산은 2회에만 한꺼번에 8점을 내줬다. 승부는 싱겁게 일찌감치 갈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두산 타선이 3회 공격에서 무려 12점을 뽑아냈다. 역대 포스트시즌 한 이닝 최다 득점 기록. 한 이닝에만 두산 타자가 15번 타석에 들어섰다. 타자 일순을 하고도 6명이 한 번씩 더 타석에 섰다는 의미다. 역대 한 이닝 최다 타석 기록도 새로 쓰였다. 승부는 당연히 뒤집히고도 남았다.
이 경기는 결국 18-11이라는 역사적인 스코어로 마무리됐다. 한 경기 최다 득점(29점), 한 팀 최다 득점(18점)과 타점(16점), 한 이닝 최다 타점(12점)과 득점(12점)이 모두 경신됐다. 두산이 19개, 삼성이 15개의 안타를 쳐 역대 한 경기 최다 안타(34안타) 기록도 작성했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절대 깨지지 않은 기록들이다.
# ‘타격의 제왕’ 두산, ‘저비용 고효율’ 삼성
두산은 이 경기 외에도 유독 포스트시즌에서 기억에 남는 타격전을 많이 펼쳤다. 2001년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첫 이닝에만 8점을 뽑아 1회 최다 득점(8점) 기록을 세웠다. 2013년 LG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선 8회 한 이닝에만 3루타 2개를 쳐 상대의 혼을 빼놨다. 2013년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선 연장 13회에 5점을 뽑아 역대 연장전 최다 득점 기록도 갖고 있다. 9회초까지 3-0으로 앞서다 9회말 투아웃에 박병호에게 동점 3점 홈런을 맞고 연장전에 돌입했던 바로 그 경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8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장단 21안타로 한 팀 최다 안타를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두산이 2루타 7개, 삼성이 2루타 3개를 쳐 한 경기 최다 2루타 기록도 곁들였다. 그러나 두산 역시 ‘닥치고 공격’ 전술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병살타의 마수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포스트시즌 한 경기에서 한 팀이 병살타 4개를 친 사례가 총 5번 나왔다. 그 가운데 4번을 두산(전신 OB 1회 포함)이 기록했다. 오히려 그 4경기 가운데 하나인 2007년 한화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8-0으로 승리한 게 더 놀랍다. ‘병살타 3개 치면 못 이긴다’는 속설도 깨버렸다.
반면 두산의 난타전 상대였던 삼성은 가장 적은 안타를 치고도 승리한 기록이 있다. 2004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안타 3개로 현대에 1-0으로 이겼다. 상대팀 현대는 삼성 마운드에 눌려 단 1안타에 그쳤다. 그해 한국시리즈는 역대 유일하게 9차전까지 치른 접전이었다. 앞서 4차전에선 양 팀이 연장 12회까지 도합 5안타(삼성 4개, 현대 1개)를 치고 점수를 못내 0-0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됐다. 삼성 배영수가 10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던 그 경기다.
물론 안타를 아무리 많이 쳐도 점수를 못 내면 도로아미타불이다. 넥센은 최근 끝난 LG와의 올해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안타 11개를 치고도 팀 완봉패를 당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삼성은 1986년 OB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8안타를 치고도 점수를 못 냈다.
‘연습생 신화’ 장종훈은 1999년 포스트시즌에서 만루홈런을 쳤다.
한화는 창단 이후 지금까지 딱 한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양대 리그 체제였던 1999년이다. 시즌 중반까지는 4강 진출이 위태로웠지만, 추석 연휴를 시작으로 막판 무서운 10연승을 질주하면서 플레이오프행 티켓을 따냈다.
이 플레이오프는 한화팬들에게 레전드 장종훈의 마지막 그랜드슬램을 본 시리즈로 기억된다. 장종훈은 연습생 신화의 원조이자 불세출의 홈런왕이었다. 삼성 이승엽이 그의 기록을 깨기 전까지, 리그 최고의 홈런 타자로 군림했다.
사실 1999년은 이미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장종훈이 서서히 선수 생활의 황혼에 접어든 시기였다. 두산도 장종훈을 예전만큼 두려워하지 않았다. 선발 최용호가 1회 선취점을 내주고 무사 만루 위기까지 몰렸지만, 장종훈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마운드에 내버려뒀다. 그러나 장종훈은 ‘장종훈’이다. 최용호의 4구째 슬라이더를 받아쳐 담장을 훌쩍 넘겼다. 역대 포스트시즌 통산 네 번째 그랜드슬램이 터졌다. 장종훈 개인으로서는 1989년 한국시리즈 이후 10년 만에 포스트시즌에서 홈런포를 쏘아 올린 순간. ‘나 아직 살아 있다’고 알린 전설의 사자후였다.
한화는 그렇게 한국시리즈에 올라가 롯데를 만났다. 그리고 장종훈은 마지막 5차전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3으로 맞선 9회 1사 3루. 장종훈은 롯데 문동환과 맞서 외야로 공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 희생플라이로 결승점을 뽑았다. 장종훈은 훗날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 수많은 경기를 뛰어봤지만, 정말 그렇게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떨렸던 순간은 처음”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 긴장을 이겨낸 보답은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 홍성흔, 유일한 100경기·100안타의 주인공
포스트시즌에 100경기 넘게 출장한 타자는 역대 단 2명뿐이다. 두산 홍성흔과 SK 박진만 코치다. 현역 선수인 홍성흔은 무려 109번의 포스트시즌 경기에 나갔다. 준플레이오프 25경기, 플레이오프 48경기, 한국시리즈 36경기다. ‘국민 유격수’로 통했던 박 코치가 104경기로 그 뒤를 이었다. 준플레이오프 14경기, 플레이오프 32경기, 한국시리즈 58경기를 뛰고 은퇴했다. 한국시리즈로 국한하면 최다 출장이다. 삼성 진갑용은 아쉽게도 포스트시즌 100경기 고지에 단 4경기를 남겨두고 지난해 은퇴했다. 그 다음 순서는 삼성 박한이의 86경기. 홍성흔과 박진만의 뒤를 잇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홍성흔은 역대 유일하게 포스트시즌에서 100안타를 돌파한 타자이기도 하다. 준플레이오프 23안타, 플레이오프 47안타, 한국시리즈 31안타를 때려내 총 101안타를 기록했다. 2위인 두산 김동주(81개)와 20개 차가 나는 독보적 기록이다. 통산 최다 루타(149루타)와 통산 최다 타점(42점) 기록도 홍성흔의 차지다. 그가 정규시즌에는 물론 가을잔치에서도 바쁘게 일했다는 증거들이다. 유일한 포스트시즌 100경기·100안타 달성은 부지런히 달려온 선수생활의 훈장과도 같다.
물론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갖고 있다. 오른손 타자에다 발도 느린 편이라 역대 가장 많은 병살타 11개를 쳤다. 2007년 SK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선 한 경기에서만 병살타 3개를 쳐 한 경기 최다 기록도 썼다. 그러나 통산 최다 병살타 순위에 포함된 타자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삼성 양준혁·진갑용·이만수와 두산 김현수(현 볼티모어)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만큼 자주 경기에 나갔고, 공격적으로 타격했다는 의미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가을야구 끝내기 홈런 드라마…무명 김선진 ‘한 방’으로 인생역전 지난해까지 34년간의 포스트시즌에서 끝내기 홈런은 딱 7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드물고, 그래서 더 큰 환희를 안긴다. 가을잔치에서 맛볼 수 있는 희열의 극치다. 첫 번째는 1989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나온 태평양 김동기의 홈런이었다. 태평양은 그해 정규시즌 3위에 올라 인천 연고팀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선수들은 그해 부임한 김성근 감독의 지시에 따라 한겨울에 오대산 얼음물에 들어가고 맨발로 눈 속을 걸었다. ‘고진감래’가 따로 없었다. 삼성과의 역사적인 첫 준플레이오프 1차전. 첫 경기부터 연장 14회 혈투가 펼쳐졌다. 김동기는 그날의 영웅이었다. 양 팀의 무득점 행진이 이어지던 연장 14회말 2사 2·3루서 배트를 휘둘러 인천 도원구장 외야 펜스를 넘겼다. 좌중간 끝내기 3점 홈런. 인천팬들을 열광시킨 가을야구의 첫 승리가 그렇게 극적으로 나왔다. 김동기는 포수로서도 태평양 선발 박정현의 14이닝 무실점 완봉 투구를 뒷받침했다. 인천 야구 최고의 날이었다. 1990년과 1994년 LG의 한국시리즈 우승 포수인 김동수 2군 감독은 이제 당시의 일을 상세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단 하나, 정말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하나 있다. 그게 바로 LG 김선진의 끝내기 홈런이다. 김선진은 한국시리즈 홈런 한 방으로 인생을 바꿨다. 1994년 태평양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 그는 6회 대주자로 출장하면서 경기에 투입됐다. 그리고 1-1로 팽팽히 맞선 연장 11회 1사 후 타석에 섰다. 태평양 선발 김홍집은 그때까지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무명의 타자 김선진에게 그날의 141번째 공을 던졌다. 그런데 김선진이 초구를 받아쳐 끝내기 홈런을 날렸다.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던 홈런이었다. 잠실구장이 난리가 났다. 그 한 방을 신호탄으로 LG는 4승 무패 우승 신화를 썼다. 시즌 직후 방출될 선수 명단에 올라 있던 김선진은 그 후로 선수 생활을 6년 더 연장했다. 삼성은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창단 21년 만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이승엽의 동점 홈런에 이어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이 화룡점정이 됐다. 당시 삼성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서 있다가 6차전에서 6-9로 뒤진 채 9회를 맞았다. 이미 승부가 끝났다고 생각해 야구장을 떠난 관중도 많았다. 그런데 여기서 믿을 수 없는 이승엽의 동점 3점홈런이 터졌다. 뒤이어 타석에 선 4번 타자 마해영은 LG 투수 최원호를 상대로 드라마 같은 끝내기 홈런을 작렬했다. 결국 삼성의 10-9 승리. 삼성의 오랜 한이 풀렸다. 그러나 시리즈를 끝내는 홈런을 ‘마지막 승부’인 7차전에서 때려낸 선수는 역사상 단 한 명뿐이다. 앞으로도 한국시리즈 역사에 빠짐없이 거론될 이름. KIA 나지완이다. 2009년 KIA와 SK는 3승 3패로 팽팽하게 맞선 채 운명의 7차전을 맞았다. 초반 분위기는 한국시리즈 3연패에 도전한 SK 쪽에 유리하게 흘렀다. 6회초까지 5-1로 앞서갔다. 그러나 KIA 타선은 조금 늦게 발동이 걸렸다. 나지완이 6회말 2점홈런으로 추격의 시동을 걸었다. 7회말 안치홍의 솔로홈런과 김원섭의 적시타로 2점을 만회해 5-5 동점을 이뤘다. 마침내 찾아온 운명의 9회말. 투수를 모두 소진한 SK는 팔꿈치가 아파 쉬고 있던 채병용을 마운드에 올렸다. 반면 나지완은 앞선 타석에서 홈런을 터트려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1사 후, 채병용의 5구째 높은 직구를 힘차게 걷어 올렸다. 역사적인 타구 하나가 잠실구장 하늘을 갈랐다. 나지완은 이미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잠실구장 베이스를 돌았다. KIA 선수들은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KIA는 그렇게 ‘해태’에서 ‘KIA’가 된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