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총장 사퇴 이후 ‘명예총장 사퇴’ ‘총장직선제’ 요구 빗발쳐
이화여대 이사회는 최경희 총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지 이틀 만인 21일 사표를 수리했다. 박정훈 기자
이화여대 직제상 학사부총장인 송덕수 법학과 교수가 총장 직무를 대행하게 됐다. 이와 동시에 이화여대는 두 달 안에 차기 총장을 선출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이화여대는 그간 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후보자들을 세우고 이사회가 최종 선출하는 방식을 유지해왔다. 이화여대 총장 선출은 교수들이 중심이 된 추천위원회가 두 명의 후보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총장을 선임하는 구조다. 사실상 이사회 위주의 선출이었다는 지적은 계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교수협의회(교협)로 구성된 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0월 19일 총장해임요구 집회에서 총장사퇴, 학생들의 안전 보장뿐만 아니라 총장선출제도의 개선을 요구했다. 이들은 “작금의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에서는 사실상 재단이 지명하는 인물이 총장으로 선출되는 의사결정구조에 있다”고 말했다. 최경희 총장이 사퇴하기 전부터 신임 총장 선출을 염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학생들은 최경희 총장 사퇴뿐만 아니라 나아가 윤후정 명예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대 내부에는 윤후정 명예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새로운 대자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자보 등을 통해 “윤후정 명예총장은 1996년 9월 이후 지금까지 21년간 명예총장을 집권 중이다. 1996년 총장 임기를 마친 후 명예총장과 이사장, 그리고 이사로 보직을 바꾸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이화의 모든 의사결정은 총장 위에 군림하는 윤 명예총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이화의 명예총장제를 폐지하고 총장직선제를 도입해 이사회와 교수, 학생대표가 모두 의사결정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최 총장이 윤 명예총장의 꼭두각시나 다름없었고 차기 총장이 선출돼더라도 총장선출제도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또 교수들에게 “살아있는 정의의 힘을 보여달라”며 “명예총장제도 폐지에 교수들이 나서서 힘을 보여달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교협 소속인 정문종 교수는 “총장이 사퇴를 했지만 학생들의 안위에 대해서는 아직 가시적으로 해결된 것이 없다. 사퇴 이후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괴리감이 남아있는 상태다. 이사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며 “교수 대다수가 재단의 책임이 크다고 보고 있다. 기존 총장 선출에 교수들의 의견이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았던 것 같다. 차기 총장 선출에 분명히 변화가 있어야 하지만 앞으로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혜숙 교협 공동회장은 “기존 선임 구조는 사실상 이사회 중심의 선출 방법이었다.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하지만 차기 총장을 선출하는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며 “이사회가 총장 선출제에 대해 어떤 개선안을 내놓는지 일단 지켜본 후 입장을 내놓을 계획이다. 최 총장이 사퇴하고나서도 해결돼야 할 일이 많고 총장 선출 제도개선안을 마련하는 것을 포함해 교수협의회에서도 이와 관련해 논의할 부분이 있다. 21일 저녁에 교수들과 논의를 하기로 했다. 이사회에서도 21일 사표 수리와 함께 차기 총장 선출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장명수 이사장, 윤후정 명예총장 등을 포함한 8명의 이사들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7명이 지난 21일 열린 회의에서 최 총장의 사표 수리 여부를 가결했다. 회의는 외부 출입이 통제된 채 진행됐지만 회의록에 따르면 최 총장의 사표 수리는 이날 출석한 이사 7명의 전원 찬성으로 의결돼 선포됐다. 또 이사회 의장은 차기 총장 선출을 위한 논의를 곧 시작할 것이며 정유라 씨의 입시 및 학사관리에 대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교수들이 요구한 총장선출제도, 이사회 지배구조 개선 등은 논의되지 않은 채 회의는 마무리됐다. 앞으로 총장 선출의 최종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던 이사회가 교협의 요구를 받아들여 총장선출제도 개선에 앞장서는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학생들과 교협은 총장 사퇴와 차기 총장 선출과는 별개로 오는 11월 3일에 3차 총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날 학사운영 정상화와 비리의혹 해명 등을 요구하는 연합시위를 가질 예정이다. 정유라 씨에 대한 특혜 의혹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어 학생들은 본관 점거 농성을 풀더라도 또 다른 방식으로 시위는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