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는 무기력증과 신경·근육병증 원인 의심…국내 펫푸드 불신 커져 “가이드라인 마련 시급”
동물단체들과 대한수의사협회 등은 증상 원인을 사료로 의심하고 있다. 나이·품종 상관없이 전국에서 유사한 사례가 산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전염병에 걸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검사 의뢰를 받은 사료 30여 건 가운데 3건을 중간 검사했다. 하지만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유럽 등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펫푸드에 대한 관리·규제가 느슨하기 때문에 이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라이프와 사단법인 묘연은 한 국내 제조원이 2024년 1~4월 생산한 사료를 이번 고양이 급성 질환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해당 제조원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든 사료는 20여 종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프와 묘연은 4월 15일 보도자료를 내 “사망한 고양이들의 연령대는 4개월부터 열 살까지이며, 다양한 품종의 고양이들로 확인된다”며 “피해 지역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분포를 보여 특정 전염성 질병이 원인으로 지적되긴 힘들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 제조원 제품이 지난 2015년 유사한 사건을 일으켰다”며 “소비자들은 이 사건 원인이 고양이 사료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불안해한다”고 지적했다.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4월 26일 일요신문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검출하지 못한 사료 내 유해 물질을 섭취한 고양이들이 집단 발병한 것으로 강력하게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의 기관에서 검사할 방법이 있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수의사회도 이번 질병을 조사하고 있다. 사료 등 반려동물 제품이 질병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수의사회는 4월 11일 보도자료를 내 “증상 등을 고려하면 원충성 질병(고양이에 기생하는 원충에 의한 전염성 질환)이 유력하게 의심된다”며 “전국에서 유사한 사례가 산발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사료 또는 모래 등을 통한 전파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반려묘 3마리를 키우고 있는 여성 A 씨(34)는 “이번 집단발병 이전인 2015년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며 “국산 사료들이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해외 기관에서 인증 받은 글로벌 브랜드를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은 규제 당국인 미 식품의약국(FDA)이 검증하는 미국사료관리협회(AAFCO), 유럽에선 EU가 권장하는 유럽펫푸드산업연합(FEDIAF)의 기준을 따른다. 미국·유럽에선 정부나 전문단체가 정한 펫푸드 영양 기준을 충족하면 사료 포장지에 ‘완전사료(Complete&Balanced, Complete pet food)’라는 표시를 하고 있다.
미국사료관리협회는 생애주기를 ‘성장·임신 수유기’와 ‘성견·성묘 시기’로 나누어 영양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반려견은 36가지, 반려묘는 40가지 영양소 함량을 규정하고 이를 충족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유럽펫푸드산업연맹은 반려견에 37가지, 반려묘에 39가지 영양소 함량을 제시하고 있다. 활동성과 생애주기에 따라 △활동성이 보통인 성견·성묘 △활동성이 낮은 성견·성묘 △14주 이하의 자견·자묘 △14주 이상의 성장기 자견·자묘 등 모두 4가지로 구분해 영양소를 권장한다.
국내의 경우 반려동물 사료는 사료관리법상 가축용 사료와 함께 관리된다. 우리나라엔 펫푸드를 주식, 간식, 특수 목적식 등 기능 중심으로 분류하는 체계가 없다. 반려동물이 섭취해야 하는 적정량의 영양성분을 단번에 파악하기도 힘들다. 사료가 원료와 세균 수 등에서 축산동물 기준을 지켰다면 따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2023년 농식품부는 ‘반려동물 연관산업 육성대책’을 발표하면서 가축용 사료와 구별해 미국, EU 등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도록 펫푸드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국내 펫푸드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어서 발 빠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입법 및 동물법 전문 홍완식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상 집단발병과 사료의 인과 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것은 어렵다. 때문에 소비자 개인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섭취하는 음식에 대한 안전이 까다로운 것처럼 동물이 섭취하는 식품에도 까다롭게 관리하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펫푸드에 대한 모니터링과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