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면 없고 있다면 있고…’
▲ 2002년 제기됐던 이회창 부부 비자금 수수 의혹(위)과 최규선 사건. 둘 다 조작으로 결론났다. | ||
그 이후에도 정권 ‘상층부’ 조직의 선거 개입은 극심했지만 형태는 달라졌다. 1992년 대통령 선거 직전 터진 부산 초원 복국집 사건이 그 대표적 예다. 당시 김영삼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김기춘 법무부 장관(현 한나라당 의원) 주재로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은밀히 만나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죽자”는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영삼 후보의 당선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민정부를 자임했던 김영삼 정권 들어서는 겉으로 드러내놓고 정부 차원에서 선거개입을 하지는 않았지만 물밑으로는 계속 공작정치의 잔재가 남아있었다. 기존 공작 정치가 국가 공조직을 중심으로 버젓이 행해졌다면 김영삼 정권 뒤부터는 사조직이나 국정원 등의 비밀 조직이 은밀하게 행하는 형태로 변해갔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97년 발생했던 안기부의 북풍공작 사건이었다.
1997년 대선을 한 달 앞둔 11월 밀 입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에게 편지를 보내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때 국민회의 측은 ‘오익제 건 활용계획’이라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문건 내용을 입수했다. 당시 여권 수뇌부가 연루됐다고 국민회의 측이 주장한 ‘북풍’ 사건의 하나였다. 나중에 이 편지 파동은 안기부의 단독 행동으로 결론 내려졌다.
200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도 공작정치 공방이 일었다. 이때에는 여당 등의 정치권에서 의혹을 제기해 상대후보에게 타격을 가하는 방식이었다. 지난 2002년 10월 당시 민주당 전갑길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기양건설 김병량 회장이 19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부부와 측근에게 최소 80억 원 이상을 건넸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이 전 상무가 제시한 서류는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2002년 4월 당시 민주당 설훈 의원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측근인 윤여준 전 의원이 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에게서 20만 달러를 받았다”고 폭로하며 관련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2003년 2월 검찰은 설 전 의원을 명예훼손 및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녹음테이프는 어디에도 없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