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달라도 ‘꿍꿍이’는 하나?
▲ 김문수·이완구(오른쪽) 두 도지사의 수도권 규제 문제를 둘러싼 설전 이면엔 그들의 미래구상이 녹아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대 국회의원 당시 의정활동 모습. | ||
신파 정치인’으로 통하는 김 경기지사는 과거 노동현장에서 특유의 결기로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내 결말을 이끌어냈던 ‘투사형’ 운동권 출신. 정계에 입문해서도 김대중 정부 시절 홍준표, 이재오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 저격수 3인방’으로 불릴 정도로 대여 강경투쟁을 주도하는 등 ‘강성’ 정치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똑소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 충남지사 역시 ‘전투력’이 만만치 않다. 전형적인 엘리트 직장인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관료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경찰로 말을 갈아타는 모험을 감행할 정도로 타고난 승부사 기질을 지녔다. 경찰서장 시절부터 현장에서 발휘되던 야생마 같은 기질이 정계에서도 재현돼 ‘충청도인 같지 않은 충청 정객’으로 꼽히기도 한다.
두 도지사 간의 계속되는 설전에는 이같이 남다른 기질과 소신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방이 한 달을 넘기는 데다 두 사람 모두 날 선 창을 쉽게 거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혹시 다른 뜻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가 일각에선 김 지사 측이 별도의 차기대권 준비 TF팀을 구성하고 ‘수도권 규제완화’를 화두로 대권플랜에 전략적인 시동을 건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서울시장 재출마’를 선언하는 등 차기 지방선거 기선잡기에 나선 것과는 달리 김 지사 측은 숱한 언론의 취재와 차기 경기도지사 출마희망자들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대권’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완구 지사 측 역시 최근 들어 별도의 이름이 없는, 즉 무명의 ‘TF팀’이 구성돼 김 지사와의 설전에 조직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TF팀의 이름이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뚜렷한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충남지사 재선이 목표가 아닌, 다른 더 큰 목표를 위한 특별 준비팀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 지사나 측근들은 이 지사의 다음 목표가 ‘충남지사’가 아닐 수 있다는 추측에 대해 부인하지 않고 있다.
두 여권 도지사 간의 설전에 대해 청와대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지켜만 보는 이유도 두 사람의 논쟁을 단순히 수도권 규제 문제나 도 발전 전략 차원으로만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차기를 꿈꾸는 잠룡들 간 일종의 ‘전초전’으로 이해하고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 지난 5월 열린 제1차 전국시도지사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좌로부터 안상수 인천광역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이완구 충남도지사, 박성효 대전광역시장, 박맹우 울산광역시장. | ||
반면 이 지사는 전국적 인지도나 지지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상태여서 그를 대권후보, 잠룡의 반열에 올려놓고 바라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지사가 지난 8월 초 한나라당 당정협의회 석상에서 ‘충청 홀대론’을 둘러싸고 당 지도부와 이례적으로 극한 언쟁을 벌이면서까지 제 목소리를 냈던 것을 두고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지사가 ‘잠룡반열’에 오르기 위한 전략에 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김 지사와의 수도권 규제 논란에 적극 대응하고 언론매체와 인터넷,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연이어 김 지사를 물고 늘어지면서 ‘맞불’을 놓고 있는 것도 이미 잠룡으로 거론되는 김 지사를 이용해 인지도를 높이는, 정치권의 전형적인 ‘올라타기’ 전술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지사 측은 실제 이번 설전이 전국적 인지도 상승에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보고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도 교감을 갖는 등 외연 넓히기에도 열중하고 있다.
두 사람 간의 설전은 최근 ‘공산당’ 공방으로 더욱 화제가 됐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8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수도권 규제완화를 비난한 이 지사에 대해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며 “(지역)균형발전은 중국 공산당도 못 하는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현실성 없는 지방 유토피아론에 빠져 있기보다는 국가발전을 위해 효율적인 정책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7일 중국을 방문한 뒤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직접 와 보니 중국은 지역 균형발전을 추진 중이더라”라며 “중국이 급속 성장한 것은 베이징을 문화 중심과 전 방위적으로 개방된 국제도시로 육성하고, 경제 중심으로 비수도권의 특화 발전을 유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중국 공산당 관계자의 설명이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라디오 방송에서 공개토론까지 벌이며 설전을 거듭하는 데는 양측 모두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계산과 함께, 서로 추구하는 가치관과 노선이 다른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나이는 이 지사가 김 지사보다 한 살 많지만 사실 두 사람은 정치판에서 만난 친구 사이다. 신한국당 소속 15대 국회의원으로 나란히 금배지를 달면서 친분을 쌓게 된 이들은 지난 2006년 각각 경기도지사와 충남도지사로 선출된 뒤에도 인연을 이어갔다.
두 도지사는 같은 당 소속이면서도 국정을 보는 시각 차이가 뚜렷하다. 이런 차별성은 이들의 성장과정과 정치적 경력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1970년대 서울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시절부터 김 지사는 사회적 모순에 저항한 ‘투사’였다. 교련반대 시위 및 민청학련사건으로 두 차례나 학교에서 제적됐고 이후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에 눈을 떴다. 7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다닐 정도로 집안이 빈곤했던 김 지사로선 모순된 사회구조에 대한 저항은 젊은 시절의 당연한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김 지사는 노동운동가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뒤 당 기획위원장, 대외인사영입위원장 및 공천심사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외인부대’나 마찬가지였던 그가 당에서 중임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이미지가 그만큼 깨끗하다는 데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일까. ‘국회의원 김문수’는 좀처럼 자신의 열정을 접거나 자기 소신을 굽히는 경우가 없었다. 그가 결식아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예결산위원회의장에 뛰어들어 어렵게만 여겨졌던 예산을 결국 확보한 일화는 아직도 정치권에 오르내린다. 외자유치와 수도권 경제회복을 위해 뛰어다니는 김 지사의 모습을 보면 그의 뜨거운 기질은 단체장이 된 이후에도 변함이 없는 듯하다.
특히 자신이 화두로 삼고 있는 ‘수도권 규제 완화’에 관한 한 ‘성역’이 없어 보인다. 요즘 그는 ‘지난 대선 때 MB(이명박 대통령)가 어려울 때마다 크게 도왔다’며 ‘이젠 (MB가) 수도권 규제완화 약속을 지키라’고 채근하고 있다. 청와대에 대한 그의 섭섭함 표출은 때때로 독설에 가깝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국가를 망치는 지름길”, “떼놈보다 더하다”, “(청와대의) 포퓰리즘은 공산주의보다 더 나라를 빨리 망친다” 등등 연신 직격탄을 쏘아댔다.
그러나 위험수위를 오가는 김 지사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선 김 지사의 발언이 잘 짜인 시나리오에 의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MB 정부가 수도권 규제 때문에 울고 싶은 심정인데 김 지사가 알아서 뺨을 때려준 격이라는 얘기다.
▲ 김문수 경기도지사(왼쪽)와 이완구 충남도지사. | ||
이 지사는 정치권 이전의 경력 자체만 보면 김 지사와 극히 대조적이다. 이 지사는 젊은 나이(31세)에 경찰서장을 맡고 충북과 충남에서 연이어 경찰청장까지 지냈다. 그런 탓인지 언론에서도 대부분 경찰 출신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사는 정통관료로 공직에 첫발을 디뎠다. 성균관대 재학 시절 일찌감치 행정고시에 합격(15회)해 지방 사무관을 거쳐 경제기획원에서 관료 수업을 쌓았다. 그러다가 ‘책상’보단 ‘현장’이 좋다며 특채를 통해 경찰직 공무원으로 변신, 서장과 LA영사관 내무영사를 지냈고 충북·충남경찰청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이 지사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은 지난 90년대 중반. 1996년 자민련이 충청권을 싹쓸이할 때 충남에서 유일하게 신한국당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정치권에 입문한 이 지사는 김 지사가 대표 특보를 맡을 당시 대표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2년여 뒤 JP가 이끌던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이후 그의 활동은 더욱 두드러졌다. 대변인과 원내총무를 거치면서 장관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 자신은 DJP공조를 깨는 데 주역을 맡았다.
당시 원내총무를 맡고 있던 이 지사가 한나라당과 함께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을 해임시키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DJP 공조가 붕괴되었지만 세월이 흘러 대북송금 특검 때 JP는 대북정책과 대북송금을 둘러싼 공동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지사가 자민련을 탈당해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은 지난 2002년 10월. 이후 16대 국회의원을 거쳐 2006년 충남도지사로 선출됐다. 이 지사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매사에 부딪쳐서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그를 ‘사막에 갖다 놓아도 물동이를 들고 나타날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워낙 뚝심이 강해서 강성 이미지로 비치지만 목표를 향한 그의 열정과 추진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잠룡으로서의 행보와 관련, 김 지사와 이 지사의 지지기반과 대권전략이 사뭇 다르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양측 측근들 얘기를 종합하면 김 지사 측의 대권전략이 이른바 ‘수도권 사수 전략’이라면 이 지사의 경우는 ‘수도권 포위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김 지사의 핵심 전략인 ‘수도권사수 전략’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권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이 대통령 역시 서울시장 재임 때부터 일관되게 ‘수도권규제 완화’ ‘행정복합도시 반대’ 입장을 취했다. 지난 대선 당시 충청권 득표를 위해 ‘행복도시 추진’을 공약하기는 했지만 이 대통령의 득표결과를 보면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지역연고가 있는 영남에서 크게 승리하면서 정동영 후보를 압도할 수 있었다.
김 지사 측 역시 지역연고가 있는 영남과 서울 수도권에서 승리하면 향후 ‘큰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듯하다. 수도권 규제완화 주장은 최악의 경우 수도권 이외 지역의 지방 표를 포기하더라도 놓칠 수 없는 핵심 대권전략인 셈이다.
반면 이 지사는 서울·수도권 포위 전략을 통해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이 지사 측은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진 이유를 야권의 분열과 ‘보수-진보’ 이념대결 양상을 보였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념대결이 아닌 지역대결 구도로 갈 경우 제2의 ‘DJP’ 전략, 즉 충청-호남 연대를 기반으로 하고 여기에 강원 영남 민심을 얻는다면 김 지사와의 대결에서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이 지사가 비수도권 민심을 대표할 수 있는 ‘지도자’로 부상하는 것이 우선조건이 된다.
물론 양측에서는 두 지사의 최근 설전과 행보를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을 경계하고 있다. 꿈이 어디를 향하고 있건 간에 다리는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는 것, 지금은 도지사로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게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일반론’ 때문이다. 그러나 여권의 ‘침묵’ 속에서 여전히 두 지사 간의 설전은 이어지고 있고 그 공방의 중간성적표는 서로 간에 ‘윈-윈 게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연 두 사람의 대결이 새로운 정치스타의 탄생을 불러오게 될지, 아니면 결국 서로에게 적잖은 생채기를 남기게 될지 자못 결과가 궁금하기만 하다.
이대인 뉴스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