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뚝심’ 하나로 달려와…“사극은 흥행 안 된단 믿음 깨고 싶었죠”
기대를 아득히 상회하는 성공 뒤에는 제작사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의 ‘뚝심’이 있었다. CJ ENM 영화사업부에서 10여 년 동안 투자와 기획제작을 맡으며 ‘국제시장’, ‘베테랑’, ‘엑시트’ 등의 투자진행에 참여했던 그는 회사를 나와 2023년 온다웍스를 설립했고, 첫 작품으로 ‘왕과 사는 남자’를 내놓았다. 장항준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하고 단종 역에 박지훈을 추천하는 등 프로젝트의 방향을 잡으며 제작 전 과정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누구도 쉽게 성공을 점치지 못했던 이 작품을 끝까지 밀어붙인 임 대표의 선택은 자신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천만 흥행으로 이어졌다.

“감사한 마음밖에 없다. 목표했던 숫자를 훨씬 넘어가니까 감독님부터 배우 분들까지 모두 만나서 항상 하는 말도 ‘정말 너무 감사하다’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가파른 흥행 속도와 관객들의 압도적인 관심을 보여줬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의외라고 여겼던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관객 수다(웃음). 사실 시기적으로 ‘1000만 명을 목표로 한다’는 꿈을 품기엔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나. 장항준 감독님과 개봉 이틀 전에 한잔하면서 (관객 수가) 어느 정도로 가면 좋을지를 얘기해봤는데 손익분기점의 2배만 돼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정말 조심스럽게 나눴다. 개봉일엔 그조차도 어려운 숫자가 나와서 그날 밤에 저희끼리 정말 조마조마했는데 그 후에 그걸 훌쩍 넘은 숫자를 보게 된 거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게 가는데?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그때가 가장 의외의 순간이었다.”
―흥행 성공의 기쁨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시나리오 ‘표절’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떠돌아다니는 시나리오를 픽업해서 작업한 게 아니라 소재에서부터 시작한 작품이다. 저희 영화 크레딧을 보시면 원안자도 있고, 각본에 감독님과 작가님의 이름도 올라가 있고 각색자도 있다. 첫 한 줄부터 시놉시스, 트리트먼트까지 다 작업한 거다. 모든 과정들이 계약으로도 남아있고 회의록도 있다 보니 이런 부분이 다 제시되면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오해가 됐든 성실하게 대응할 생각이다.”

“사실과 좀 다르게 바이럴된 부분이 있다. 제가 시나리오를 들고 나가서 제작에 돌입한 건 아니고, 황성구 작가님(각본)과 함께 2019년부터 기획 회의를 해서 2020년도 초에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었다. 이미 (CJ ENM 내부에서) 기획을 중단한 작품이었지만, 작가님 입장에서는 제가 제안해서 시작된 만큼 다른 사람과 함께 제작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런 작가님께 제가 ‘회사 안이든 밖이든 5년 안에 제가 반드시 다시 한 번 트라이해서 만들겠다’는 약속을 드렸다. 그렇게 제가 회사를 퇴사한 뒤 작가님이 간직하고 있었던 시나리오를 다시 가져와서 만들게 된 거다.”
―최근 국내 영화계의 어려운 상황이나 사극 영화라는 흥행이 쉽지 않은 장르적 특성에도 이 작품을 끝까지 제작하고자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같이 일하는 분들에 대한 약속과 책임 때문이었다. 물론 작품에 대한 애정과 확신도 당연히 있었다. 이야기 자체가 정말 의미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기획자로서도 이 사극에는 기존과 다른 새로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제가 쇼박스에 이 작품을 가져갈 때도 ‘이건 궁궐 사극이 아니라 민초 사극이야. 얼마나 새로워!’ 이런 말을 했다(웃음).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을 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한민국 사극에서 별로 없지 않았나. 또 한편으로는 ‘사극은 타깃이 한정돼 있어. 그래서 사극은 (흥행이) 안돼’라며 어느 순간 생각해 버리는 것을 깨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배급사인 쇼박스가 이 이야기를 선택하게 된 과정도 궁금하다.
“제가 2023년 4월에 퇴사하고 온다웍스를 차린 뒤 한 4개월 동안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거쳤다. 8월에 BA엔터테인먼트(공동 제작사)를 찾아가 장항준 감독님 연출로 제작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감독님께서 1차로 거절하셨다. 당신은 ‘리바운드’ 이후에 무조건 성공하는 영화를 해야 하는데 이건 사극에다 비극이라 안된다는 것이다(웃음). 저도 제작자가 되고 보니 그 말씀이 너무 잘 이해됐다. 하지만 영화의 가치는 ‘안될 거야’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알아봐 주고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사람을 만나야 완성되는 것이다. 당시 쇼박스 투자팀에 계셨던 분이 ‘이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지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용기를 실어주셔서 제가 감독님께 직접 제안 드릴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처음으로 ‘같이 하자’는 의지를 표현해주신 쇼박스 덕에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저도 배급사 출신이고, 투자팀에서도 오래 근무한 데다 기획팀도 경험했다 보니 감독님 글을 볼 기회가 많았다. 표현이 조금 이상할 수 있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조금 다르게, 조금 깊이 감독님을 알았던 것 같다. 누군가는 감독님의 필모그래피에 성공작이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장 감독님이 준수한 작품을 만드는 연출자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영화의 실존 인물을 대하는 그 마음과 방식을 보면, 저는 이렇게 할 수 있는 감독님이 대한민국에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출적으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서 상업적 확장성이 있고, 의미도 확장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면 성공하실 것이란 야망을 갖고 접근했다(웃음).”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을 이끈 데엔 단종 역을 맡은 박지훈, 그리고 엄홍도 역의 유해진을 빼놓을 수 없다. 캐스팅 과정도 궁금한데.
“‘단종의 환생’이라는 말에 너무 뿌듯하더라. 제가 이런 혜안을 가진 사람이었나 싶다(웃음). 사실 박지훈 배우의 등장에는 유해진 선배님의 캐스팅이 큰 기반이 됐다. 저도 영화산업 종사자로서 한국 영화에 새로운 마스크, 새로운 다음 세대를 나오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들 신선한 배우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시장이 얼어있다 보니 시도하기 어려운데, 그럴 때 (유)해진 선배님이 중심을 딱 잡아주고 있으면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이미지와 눈빛이 가장 중요한 단종 역에 박지훈 배우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제가 ‘약한 영웅’ 제작진과 많이 가까운데 현장에서 박지훈 배우의 칭찬을 많이 들었다. 시리즈를 보고 이미지에 꽂혀있었는데 이 친구가 성실한 배우라는 인상까지 가지면서 장 감독님께 추천 드렸더니 감독님도 ‘눈빛이 단종이다’라고 하셨다(웃음).”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엄흥도와 홍위(단종)가 마지막 만남을 가졌을 때다. 저는 지금도 그때의 현장이 종종 떠오른다. 배우 분들도 인터뷰에서 많이 언급하셨는데, 그때 두 분이 서로 정말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두 분이 그 방에 들어서고 나서 만들어지는 에너지를 모니터링하면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스탭들도 다 같이 그 분위기에 젖어 들면서 집중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 눈물이 나면서 ‘저 때 우리 정말 몰입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 ②에서 계속)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