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가 꿈에…” 현몽으로 접근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재단법인 미르·K스포츠의 이름을 연결하면 ‘미륵’이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최순실 씨 선친인 최태민 목사는 스스로를 미륵이라고 했다”며 “박 대통령이 최태민, 최순실의 사교에 씌어 이런 일은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도 CBS 라디오에 출연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 종교적인 것이 있었던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고 전했다.
박 전 원내대표는 본인이 기자 시절 박 대통령을 인터뷰한 일을 언급하며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질문한 적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청와대 시절부터 알았던 분이다. 저희 사회활동(구국여성봉사단)에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이 사회활동 단체가 조직이 되면서 반대 세력의 악선전 때문에 부정 축재자로 몰리기도 했다’고 답했다. 1994년 인터뷰 내용으로 봐서는 그 당시에도 최 목사에 대한 마음의 의존이 컸다는 걸 느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최 목사와 그의 딸 최순실, 그리고 최 씨의 남편 정윤회에게 강하게 의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태민 목사가 1977년 1월 19일 새마을 국민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면에 실린 광고에는 “영세계에서 알리는 말씀. 영세계 주인이신 조물주께서 보내신 칙사님이 이 고장에 오시어 불교에서의 깨침과 기독교에서의 성령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 이 모두를 조물주께서 주신 조화로 즉각 실현시킨다”며 “난치의 병으로 고통 받으시는 분, 모든 재난에서 고민하시는 분은 즉시 오시어 상의하시라”고 적혀있다.
최 씨 모녀와 박 대통령의 인연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타계 직후 최 씨가 박 대통령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며 시작됐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회고록을 통해 최 목사가 보낸 편지에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 근혜가 우매해 아무것도 모르니 가서 도우라고 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된 ‘육 여사 현몽설’의 근거다. 현몽이란 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최 목사가 육영수 여사의 현몽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영매 능력을 과시, 교주와 신도 간의 종속 관계를 유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박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씨와 박지만 EG 회장은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언니(누나)를 최태민의 손에서 구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낸 바 있다. 남매는 탄원서를 통해 “저희 언니는 최태민에게 속은 죄밖에 없다,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나 불쌍하다”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는 영원히 최 씨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또한 “경비원을 언니에게 붙여 우리 형제들과 완전히 차단시키고 있다. 서로가 지척에 있으면서 만나지도 못하고 소식도 들을 수 없으며 전화 대화마저 못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최 목사의 통제 아래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최 목사의 사교(사이비 종교)와 관련해 현재 남아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영생교, 영세교, 영세계 교리 등으로 불렸던 정황만 남아있을 뿐 그 실체를 파악할 길이 없다. 현재 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있는 영생교의 교리는 이름만 같은 다른 종교인 ‘영생교 승리제단’의 교리다. 최 목사의 영생교는 사실상 ‘교리’라고 할 만한 내용도 없었던 셈이다. 다만 스스로를 교주로 칭하며 포교활동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 25일 취임식을 마치고 세종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희망이 열리는 나무’ 제막식에서 복주머니를 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영생교 승리제단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사실 우리는 피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최태민 씨가 했다는 영생교는 70년대라고 하는데 우리는 조희성 총재님이 세우신 것이고 81년도에 시작했다. 이름만 같을 뿐 전혀 관계가 없다. 세상에서는 우리를 사이비종교라고 평가하지만, 최태민이 세운 영생교와는 관계가 없는데도 덩달아 우리 총재님의 존함이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쾌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영생교의 1대 교주가 최태민이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최태민, 최순실, 박근혜와는 전혀 무관하다. 언론에 보도된 ‘살아 영생’ 또한 우리의 교리다. 최태민 씨는 ‘살아 영생’을 말한 적 없으며, 그쪽(최태민의 영생교)은 플라톤의 이데아론 등을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쪽 종교는 알려진 자료도 별로 없지 않느냐”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의 곁에서 ‘주술적 멘토’ 역할을 했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최 씨가 사용했던 태블릿PC에서 ‘오방낭’의 초안이 담긴 파일이 발견됐고, 박 대통령이 취임식 행사에서 최 씨가 만든 오방낭을 지참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오방낭은 음양오행설을 기반으로 다섯 가지 색을 섞어 만든 전통주머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