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에 물리고 뜯겨도 ‘아이 러브 라이온’
티피 헤드런(사진)이 남편이자 프로듀서였던 노엘 마셜과 함께 기획한 영화 ‘로어’ 스틸 컷.
1930년생으로 86세의 나이에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티피 헤드런은 할리우드에서 3대에 걸친 배우 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배우다. 1952년에 광고 기획자인 피터 그리피스와 결혼한 그녀는 1957년에 딸을 낳는데, 그녀가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미모로 꼽혔던(하지만 지금은 성형수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멜라니 그리피스. <워킹 걸>(1988)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배우다. 그리피스의 첫 남편은 TV 시리즈 <마이애미 바이스>(1984~89)로 유명했던 돈 존슨. 그들 사이에 태어난 딸이 바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2015)로 유명한 다코타 존슨이다.
티피 헤드런은 피터 그리피스와 이혼한 후 1964년에 노엘 마셜과 결혼한다. 에이전트 출신의 프로듀서였던 마셜에겐 존과 제리, 두 아들이 있었고, 그들은 1녀 2남의 화목한 가족을 이루었다. 삶의 전환점이 된 건 1969년 아프리카의 경험이었다. 이 시기 헤드런은 마셜이 제작한 두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사탄스 하베스트>(1970)와 <미스터 킹스트리트 워>(1971)로 모두 아프리카 로케이션을 했던 영화다.
부부는 세 아이와 함께 1년 동안 아프리카에 머물렀고, 이때 사자 떼들이 생존의 곤경에 처한 현장을 목격한다. 이후 헤드런과 마셜은 동물권 보호를 위한 액티비스트가 되었고, 아프리카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로어 Roar>(1981)라는 영화를 기획한다. 당시 만난 어느 조련사가 “야생동물에 대해 잘 알고 싶다면 그들과 생활해보는 것이 좋다”는 말을 했고, 이 말은 영화 제작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티피 헤드런의 딸 멜라니 그리피스는 ‘로어’ 촬영 중 사자에게 얼굴 부분을 공격 당해 50바늘을 꿰맸다.
마셜이 직접 연출을 맡은 영화 <로어>는 그들 가족이 모두 출연하는 영화였다. 스토리는 간단했다. 아빠 행크(노엘 마셜 분)는 아프리카에서 맹수들과 함께 생활한다. 그곳을 아내 매들린(티피 헤드런 분)과 딸 멜라니(멜라니 그리피스 분)와 아들 제리(제리 마셜 분)과 존(존 마셜 분)이 방문한다. 그들 가족은 온갖 동물들로 득실거리는 집에서 야생의 거친 동물들을 경험한다.
1970년부터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영화는 1974년에 촬영을 시작했다. 야생 동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었다. <엑소시스트>(1973)의 프로듀서였던 노엘 마셜은 이때 받은 거액의 지분을 모두 영화 제작에 들이부었고, 헤드런도 자신의 재산을 제작에 보탰다. 영화 현장은 거칠기 그지없었다. 촬영지는 캘리포니아의 액턴에 있는 마셜의 개인 목장. 동물원, 애완동물 가게, 서커스 등에서 섭외한 100여 마리의 사자와 호랑이와 표범과 치타와 재규어가 현장을 가득 메웠다. 아직 야생이 거세되지 않은 그들은 거칠었고, 끊임없는 사고가 이어졌다.
안전장치 없이 촬영되었고, 영화 속 모습은 모두 실제 상황이었다. 촬영 팀은 쇠창살로 된 우리 안에서 카메라를 돌려야 했지만 안전한 건 아니었다. 70~100명의 스태프와 배우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고, 영화 속에 나오는 피는 특수효과가 아니라 실제로 배우들이 흘리는 것이었다. 감독이자 배우였던 노엘 마셜은 하도 많이 상처를 입어 신체의 특정 조직이 죽어버리는 ‘괴저’ 현상을 겪었다. 티피 헤드런은 코끼리를 타다 떨어져 다리뼈가 부러졌고, 사자가 목 부분을 할퀴어 38바늘을 꿰맸다. 맹수들의 습격으로 나무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는 장면은 그대로 영화에 들어갔다. 실제로 피를 흘렸고, 머리 부분도 상처를 입었다.
‘로어’는 안전장치 없이 촬영됐고, 영화 속 모습은 모두 실제 상황이다.
멜라니 그리피스는 얼굴 부분에 50바늘을 꿰매야 했고 결국 성형수술을 했다. 시력을 잃을 뻔한 위험한 상황도 있었다. 영화 속엔 사자가 머리카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 역시 실제였다. 아들 존은 촬영 전에 물려서 56바늘을 꿰맸다. 제리도 발 부분을 물렸다. 촬영감독은 얀 드 봉. 네델란드 출신으로 <로어>는 그의 첫 할리우드 작업인데, 여기서 그는 악몽을 겪는다. 뒤통수 부분을 심하게 물려 머리가죽이 크게 상했고 220바늘을 꿰맨 것. 이후 그는 <스피드>(1994)로 감독 데뷔를 하며 유명해지는데, 한 인터뷰에서 “<로어> 현장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악몽 같은 경험”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자 한 마리는 조감독이었던 도런 카우퍼의 귀를 뜯어내려 했고, 저항하던 그는 머리, 가슴, 허벅지 부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1978년 홍수로 세트가 모두 사라져 다시 지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마셜과 헤드런 부부는 목장과 베벌리 힐스의 집과 산 페르난도 밸리의 부동산을 팔아야 했다. 총 제작비는 1700만 달러. 하지만 거둔 수익은 200만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1981년에 개봉된 후, 결국 부부는 이혼했다. 하지만 이후 헤드런은 꾸준히 동물 보호 운동을 했고 1983년에 비영리단체인 ‘로어 파운데이션’을 설립했으며, 캘리포니아에 있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인 ‘샴발라 프리저브’를 지원했다. 이후 헤드런은 <로어>에 대해 “아마도 할리우드 사상 가장 위험한 영화일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장에서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라울 뿐이다. 정말 다행이며 기적적인 일이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