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되자 근로자해고의 낙수효과가 하청기업과 중소기업에서 나타나 경제전체가 고용대란의 불안에 휘말렸다. 산업발전의 역군인 근로자들을 희생양으로 내쫓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근로자 해고는 이제 시작단계이다. 향후 경제의 성장절벽이 본격화하여 기업들의 경영위기가 철강, 석유화학, 전자, 자동차 등 전 산업으로 확산할 경우 근로자들의 해고규모는 급증할 전망이다. 더구나 근로자 해고가 기업의 위기극복이 아니라 일시적인 연명을 위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근로자들의 무차별적인 해고가 끝없이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가 이러한 상황에 처한 것은 정경유착에 근거한 압축성장 때문이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 경제는 정치권력의 정권유지와 대기업들의 이익독점이 맞물린 공생체제하에서 고속성장을 지상의 목표로 추구했다. 그 결과 경제성장의 속도는 세계 최고수준으로 높았다. 그러나 구조적 비리와 불공정거래가 만연하여 경제성장의 질은 극히 낮았다. 특히 대기업들이 기득권에 안주하고 족벌 세습경영을 고착화하여 경제성장이 양극화했다. 이에 따라 경제가 스스로 성장동력을 잃는 모순에 빠지고 사회는 계층간 갈등과 분열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기업들의 경영이 부실화할 때마다 국책은행을 통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자금을 퍼부어 대기업들의 경영부실을 확대 재생산했다. 이런 상태에서 중국기업들이 인해전술 식으로 공격을 해오자 우리나라 기업들은 속수무책이다.
경제를 올바르게 살리려면 사람을 쓰러뜨리는 산업구조조정이 아니라 사람을 일으키는 산업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이러한 산업구조조정을 위해 우선 기업들의 부실경영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대주주 및 경영자의 책임을 묻는 것은 필수적이다. 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부정부패와 비리를 척결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와 함께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사업구조를 과감하게 바꾸어 회생능력을 갖게 해야 한다.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다음 수순이다.
근로자들에게는 해고 대신 기업을 살리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근로자들이 스스로 고통을 분담하고 협력을 하여 기업을 일으키는 노력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근로자 해고가 불가피할 경우 일자리 나누기, 교육훈련, 생계보장 등 실업자 대책은 산업구조조정의 전제조건이다. 배가 침몰할 때 인명부터 구해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기존산업은 과감한 혁신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산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첨단지식, 서비스, 건강복지, 환경보호 등과 같이 고용창출능력이 높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미래산업 발전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일을 하고 사람이 행복한 인본주의 시장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 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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