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게 나간 센돌 승부수냐 자충수냐
이처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데도 침묵하고 있는 한국기원 이사회와 이사장이 한심스럽다. 도대체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싸우거나 말거나, 다치든지 말든지, 이사장과 이사회는 아예 관심이 없다는 것인지.
그런 와중에 기사총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조훈현 9단과 한국기원 실무행정 책임자 한상열 사무총장이 팬들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이사장과 이사회는 두 사람을 방패막이로 생각하는 것인지. 사무총장이야 행정 책임자니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조훈현 9단이 아들뻘의 후배 천재기사를 궁지로 몬 주역으로 지목되면서 당하고 있는 건 잘잘못을 떠나 차마 볼 수가 없다.
이세돌 9단은 1983년생. 전남 신안 앞바다 비금도가 고향이다. 바둑을 좋아했던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웠고 기재를 인정받아 상경, 권갑용 7단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1995년, 열두 살 때 입단했다. 형이 이상훈 7단이고 누나가 이세나 아마 6단이다. 이상훈 7단은 1975년생, 1990년에 입단했다. 김수영 7단(2005년 작고)-김수장 9단에 이은 국내 두 번째 형제 프로기사.
입단 전에 이미 천재 소리를 들었던 이세돌은 입단하면서부터 바로 성적을 내면서 이른바 ‘포스트 이창호’의 선두 주자로 조명을 받았다. 2000년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 우승이 타이틀 행진의 시작이었다. 곧이어 제8기 배달왕전에서 우승했고, 32연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최다 연승 역대 3위의 기록이었다. 2000년에는 그 해 바둑문화상 최우수기사상을 수상했다.
발동이 걸리자 거침이 없었다. 국내 타이틀을 하나둘 점령하는가 싶더니 2001년부터는 일찌감치 세계대회 입상권에 얼굴을 나타냈고, 2002년에는 제15회 후지쓰배에서 우승, 세계 정상의 한 봉우리를 점령했다.
2003년에는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 ‘마침내’ 이창호를 꺾고 타이틀을 차지했고, 2004년에는 삼성화재배 세계대회에서 우승, 명실상부 이세돌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예고했고, 2008년 시즌부터는 국내 랭킹에서도 이창호 9단을 제치고 1위를 질주하기 시작했으며, 밖에서는 이창호 9단, 중국의 구리 9단과 함께 세계의 3인방으로 공인받았다. 2006년 봄, 스물셋 나이로 결혼을 했다. 심신의 안정을 얻은 이세돌은,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면 다시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하기 시작했다. 결혼 후 2년 사이에 타이틀 10개를 거두어들였다.
2009년 6월 현재 국내외 타이틀 획득 통산 30회. 조훈현 9단의 157회, 이창호 9단의 136회에는 아직 많이 못 미치고 있으나, 조남철 9단, 김인 9단서봉수 9단 등과 함께 공동 3위다. 물론 단독 3위로 올라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 제13회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 대국하는 이창호와 이세돌 9단.(맨 위 사진) 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복기를 하고 있는 이세돌과 구리.(가운데 사진) 제10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이창호-이세돌 콤비.(맨 아래 사진) | ||
방금 말했듯 2009년 현재 세계 바둑계의 판도는 이창호-이세돌-구리의 3파전이지만, 결국은 이세돌이 천하제일검에 오를 것으로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이세돌이 아직 이창호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그게 이세돌에게는 큰 숙제이긴 한데, 이창호는 아무래도 정점을 지난 상태. 쉽게 내려가지는 않겠지만 다시 정점으로 돌아오기는 어렵다는 분석인 것. 또 한 사람의 경쟁자 구리 9단. 현재 세계대회 5관왕. 기록으로는 그가 1등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구리가 이세돌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둑 스타일에서 이창호와 이세돌-구리는 상반되고, 이세돌과 구리 두 사람은 닮은 면이 있다. 시원스러운 행마, 탁월한 전투력 등이 두 사람의 장점이다. 단점도 닮았다. 종반에서 철저-치밀함이 좀 부족한 것, 가끔 튀어나오는 경솔 등이다. 포석은 구리가 낫다는 평이다. 이세돌 스스로 “나는 포석에 문제가 있다”고 토로하곤 한다.
그러나 수읽기에서는 이세돌이 한 수 위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아니, 수읽기라면 이세돌은 구리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그 착상의 자유분방함과 기발함과 힘이 가히 독보적이며 천하제일이라는 것을 세계가 공감하고 있다.
무시무시하고 기상천외하며 늘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수읽기를 바탕으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투를 일으켜 전판을 질풍노도로 휘몰아간다. 사람들은 “이세돌이 공격하는 바둑을 보면 한 편의 스펙터클”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세돌의 공격은 관전자들을 열광케 한다. 그래서 인기 만점이다. 이세돌이 징계 비슷한 걸 받을 것 같고, 그래서 휴직계를 냈다는 소식에 이세돌의 팬들이 분노하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상대편에게 혹독한 비난을 퍼붓는 것은 그럴 만하다.
이세돌은 인기가 높은 만큼, 수시로 구설수에도 올랐다. 보통 사람의 눈, 상식의 눈에는 튀는 행동이 많았다. 이번에 징계 사유로 거론되었던 항목들은 사실 어제 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었다. 그게 다 예전에 이미 구설수에 올랐던 내용들이다. 그러나 튀는 게 재미있었고, 그래서 그의 팬들은 그를 더 좋아했고, 그렇게 기발하기에 바둑도 그렇게 멋지게 두는 것 아니냐, 바둑을 그렇게 멋지게 두는 청년이니 일상생활에서도 튀는 것 아니냐, 평범의 잣대로 천재의 튀는 행동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를 감쌌다.
시상식 불참. 어쩌다 한 번 불참한 것을 갖고 그럴 수 있느냐고 하는데, 사실 한 번은 아니었다. 상금의 일부를 기사회에 내놓는 것. 각자의 자유 아니냐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냈다. 한국리그 불참. 그것도 각자 자유라고 하는데,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세돌에게 불만이 있는 것은 알겠고 이해도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건 약간 별개의 문제지만 여기서 한국리그 주최 측인 바둑TV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 국내 프로기전 중에서는 한국리그가 단연 인기인데, 바둑TV가 전체 예산에 비해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너무 적게 배정했다는 것이다. 이건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다.
기보 저작권을 한국기원에 일임하는 것. 저작권과 관련된 계약 같은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일이라 일임한다는 것은 이상한데, 여기도 약간 다른 사정이 있었다. 기전 중계권과도 연관되는 일이었다. 예컨대 다른 스포츠 같은 건 방송사가 주최 측에 중계료를 내고 방영을 하는데, 바둑은 주최 측에서 바둑TV에 제작비를 지불하는 것이다.
바둑판에 사인하는 일, 기전 주최사 경영진과 기념 촬영하는 일, 그런 것들에도 이세돌 9단이 평소 협조적이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대회가 끝나고, 참가했던 기사들이나 입상자들이 바둑판에 죽 사인을 해 주최사에 기념으로 선물을 할 때, 주최사 임직원들과 기념 촬영 같은 것을 할 때 이세돌은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기전을 주최해 주는 기업과 기업의 관계자들이 프로기사들로선 고마울 수밖에 없다. 바둑판에 사인해 선물하고 같이 사진을 찍고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의전적인 일, 상투적인 인사, 그런 것들을 거부하는 것은 승부사의 개인적 매력일 수 있다. 순종과 수긍보다는 저항과 거부가 매력적인 면이 분명 있다. 그러나 바둑계를 위해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하는 기사들로서는 이세돌 9단의 행동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훈현 9단이 기사총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도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여덟 팀으로 진행되던 한국리그가 올해 참가하겠다는 팀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리그 존속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조 9단은 한국기원 직원들과 함께 기업체를 찾아다니며 체면을 돌보지 않고, 설득하고 부탁하는 일을 했다. 그래서 겨우 그나마 일곱 팀이 되어 리그가 존속하게 되었는데, 제일인자라고 하는 후배가 불참을 선언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으니 화가 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흑번 1-3-5 포석과 불멸의 호수(好手) 흑7의 마늘모로 흑번필승을 구가해, 누가 “오늘 바둑 승부는 어땠나요?”라고 믈으면 “제가 흑번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던 승부사. 발군의 기예로 일찍이, 당시 최고 실력 가문이었던 본인방가의 후계자로 지목되었으나 콜레라에 걸려 33세로 요절한 불운의 천재. 본인방 장문인을 계승하지는 못했지만 ‘본인방’으로 불리는 사람.
그가 태어난 곳이 히로시마 앞바다 가난한 어촌이었다. 생가가 그곳에 보존되어 있다. 새천년 벽두, 2000년 봄에 거길 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생가까지는, 마을 어귀에서부터 길이 좁아져 버스가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 시골에서 어찌 바둑사의 기성이 나왔을까. 그 시골 어촌 사람들은 어떻게 슈사쿠의 기재를 알아보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 어린 소년을 머나먼 교토로 바둑 유학을 보낼 생각을 했을까.
비금도가 있는 신안군은 재정자립도가 전국에서 제일 낮은 곳. 그 가난한 마을의 섬 소년이 자라서 지금 세계바둑계 지존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역사는 돌고, 삶은 비슷하다. 이세돌이 슈사쿠 같은 인물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튀는 언행, 괜찮다. 매력적이다. 박력 만점이다. 더욱이 요즘 우리는 이세돌류의 그런 다이나믹스, 그런 폭발력, 내가 아니다 싶으면 아닌 것,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 그런 게 절실히 필요한 사회,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다만 선-후배, 동료들도 조금은, 가끔은 좀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불만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앞에 나와 말해 주기를 말한다. 말이란 게 때로는 오해를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말로 빚어진 오해는 풀 수가 있다. 개인적인 문제라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그러나 공적인 일이라면 말을 하지 않으면 앙금으로 쌓이고, 그 앙금은 공멸의 저주가 된다. 이세돌 9단으로부터 비롯된 작금의 불화가 거꾸로 우리 바둑계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