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은 부부 동반 해외출장, 직원들은 선거 기간 대거 휴직…나태해진 조직문화 속속들이 드러나

선관위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1~2년마다 돌아오는 전국 단위 선거 관리다. 선거를 앞두고는 행정부 공무원부터 공공기관 직원들도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런데 정작 선관위에선 전국 단위 선거 때마다 선거 전 휴직자가 늘어났다가, 선거가 끝나면 감소하는 양태를 2016년 이후 최소 10년간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연이어 치러진 2022년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간 선관위 휴직자는 200명을 넘었다. 휴직자 수는 선거가 끝나자 줄어들기 시작, 지선 직후인 2022년 7월 휴직자는 195명으로 감소했고 그해 12월 말 161명까지 줄었다. 전국 단위 선거가 없었던 2023년에는 연말까지 휴직자가 130~150명대를 유지해 대비를 이뤘다.
중앙선관위가 이번 지선을 앞두고 직원들에 “선거를 앞두고 불필요한 휴직은 자제해달라”고 공지했지만, 직원들에겐 ‘소귀에 경 읽기’였다.
선관위 직원들의 국외 출장도 논란에 휩싸였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중앙선관위로부터 받은 2022년부터 올해 6월까지 ‘최근 5년간 선관위 직원 국외출장 현황’을 보면 직원 461명이 총 107차례 국외 출장을 떠났다. 소요된 총 예산은 24억 5255만 원이었다.
출장지 중엔 몰디브·타이·말레이시아·코타키나발루 등 대표적 휴양지가 포함됐다. 명목은 몰디브 대선 참관, 재외선거 준비 상황 점검 등이었다. 동일한 목적으로 이탈리아 관광지를 반복적으로 가기도 했다. 출장 뒤 제출된 결과보고서는 원론적 내용이 쓰여 있거나, 역사·문화 탐방 내용이 포함되는 등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관위 직원들이 이런 비위를 저지를 수 있었던 데는 기관의 수장부터 문제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은 4년 재임기간 동안 3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왔는데, 매번 배우자를 동반하고 항공비와 숙박비 등 비용을 나랏돈으로 처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양부남 의원이 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해외선거관리기관 교류·협력방안 협의 등을 위한 국외출장 계획’에 따르면 노 전 위원장은 부인과 함께 2024년 11월 7박 9일 일정으로 독일과 에스토니아를 방문했다. 당시 출장에는 항공료와 철도운임, 체재비, 준비금 등 총 7194만 원의 선관위 예산이 소요됐다.
이어 중앙선관위 ‘선거제도 발전 및 국제 네트워크 증진을 위한 국외출장 계획’ 자료를 보면 노 전 위원장은 2025년 11월 8박 10일 일정으로 덴마크와 스웨덴을 찾았다. 총 9053만 원이 소요된 이 출장 역시 ‘부부동반’으로 진행됐다.
2022년 12월 2~10일 ‘선거 정치제도 의견수렴 및 재외선거 평가’ 명목으로 다녀온 호주와 뉴질랜드 출장에도 부인이 함께 갔다.
선관위는 이러한 세 차례 해외 출장에 노 전 위원장의 배우자가 동행했다는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는 사후 보고서에는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선관위 측은 “헌법기관장으로서 지위와 역할에 상응하는 예우를 고려해 예산을 편성할 때부터 배우자 예산을 편성했다”며 “향후에는 국민 눈높이에 맞게 운영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개표 과정에서도 문제는 발생했다. 전북교육감 선거 개표 과정에서 전주 완산구 중화산1동 3투표소 개표 결과가 같은 동 1투표소 결과로 잘못 입력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1투표소 유권자 1104명의 투표는 누락됐다.
이 문제는 선거 다음날인 4일 아침 개표 작업을 마무리하다 뒤늦게 발견됐다. 하지만 선관위 측은 “개표가 마무리되며 전산입력이 차단돼 수정할 수 없었다”며 “제대로 입력됐다면 1, 2위 후보 간 차이가 19표 줄었을 것이지만, 중복입력이 당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24년 4월 총선 당시 경기 수원정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개표 오류가 있었던 문제가 뒤늦게 밝혀졌다. 개표 과정에서 투표지 분류기가 ‘재확인 대상 투표지’로 분류했던 2241표가 재확인 없이 무더기로 무효표로 처리된 것이다.
당시 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후보가 6만 9881표(50.87%)를 얻어, 6만 7504표(49.13%)의 국민의힘 이수정 후보에게 2377표 차로 신승했다. 다만 무효표로 잘못 집계된 유효표 2241표를 따져 보니 김 후보가 1089표, 이 후보가 1152표를 추가로 얻어 당락에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수원영통구선관위는 총선 두 달여 뒤인 같은 해 6월 각 후보자에게 개표 결과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잘못 입력된 각 후보의 득표수와 무효투표수 결과는 현재까지도 선관위 홈페이지 개표 결과에 그대로 남아 있다.
전국민적 질타가 쏟아지는 가운데, 선관위 직원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구 중구선관위 청사 안에서 한 선관위 직원이 골프채를 쥐고 스윙 연습을 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다. 당시 건물 앞에서는 6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직원은 해당 일 저녁, 3시간에 해당하는 ‘시간 외 근무’ 수당도 신청한 것으로 전해져 공분을 샀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6월 17일 검찰 12명, 경찰 15명 등 총 27명 규모의 수사팀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합수본은 압수물 분석과 실무 관련자 조사를 마치는 대로 중앙선관위 등 윗선으로 수사 범위를 넓힐 전망이다.
국회도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한 국정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18일 본회의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 인선을 포함한 국정조사 계획서가 통과됐다.
조사기간은 오는 8월 1일까지 총 45일이며,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경우 본회의 의결을 거쳐 연장할 수 있다. 국조 대상 기관은 중앙선관위와 각급 지역 선관위다. 국민의힘에서 주장하던 청와대와 경찰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조사 범위는 △투표용지 인쇄 수량 산정 과정 부실 여부 △인쇄·배분·보관 등 투표 당일 현장관리 실태 △선관위 지휘 체계·사후 대응 적정성 △참정권 침해 실태 △투·개표소 집회 시위 및 경찰 조치 사항 △선거관리 인력·예산 운용 등이다.
특위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는다. 위원은 민주당 9명, 국민의힘 7명, 비교섭단체 2명 등 총 18명으로 구성됐다. 위원장에는 5선의 윤상현 의원이 내정됐다.
민주당은 윤건영 의원(간사)과 김영배 이해식 전용기(재선) 의원, 김남희 김성회 김용만 양부남 이기헌(초선)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국민의힘은 서범수 의원(간사)과 김은혜(재선) 의원, 박수민 신동욱 주진우 최보윤(초선) 의원이 합류한다. 비교섭단체에서는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과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참여했다.
하지만 국회 국정조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윤상현 위원장은 부정선거 의혹을 명분으로 내세운 윤석열 비상계엄을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감싼 인물이다. 주진우 위원도 올림픽공원 집회의 부정선거론자들을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국민의힘이 국조의 논점을 흐리고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는 정쟁의 장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보수진영에서는 선관위 문제를 이재명 정부의 관리 부실로 엮으려고 하고 있다. 선관위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라 행정부와 관련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국조에서 선관위를 옹호해줄 필요가 없다. 오히려 민주당이 선관위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추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