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요신문] 박하늘 기자 = 대전시가 상수도 고도정수처리시설 설치 사업을 대기업의 투자를 받고 운영권 일부를 넘기는 방식으로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에 휩싸였다.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단체가 민영화의 한 방식이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대전시는 민간투자 일 뿐 근본적으로 민영화가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권선택 대전시장은 시민단체의 극렬한 저항에도 민간투자방식을 강행하겠다고 나서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를 두고 각계의 의견은 분분하며 시민들은 민영화로 인한 수돗물의 질 저하와 요금 폭등을 걱정하고 있다.
#고도정수처리시설이 뭐길래?
고도정수처리시설은 기존 정수시설에 오존반응조와 활성탄흡착지를 추가해 맛·냄새를 유발하는 물질과 병원성 미생물, 암모니아성 질소 등을 처리하는 공정이다.
상수원인 대청호의 수질이 심각히 오염됨에 따라 대전시는 지난 2011년 수도정비계획을 세우고 송촌 정수장(20만t/일)과 월평 정수장(40만t/일)에 하루에 총 60만t을 정수할 수 있는 고도정수처리시설 설치키로 했다. 사업예산은 국비 70%와 시 부담 30%로 진행키로 했다.
사업추진결과 국비 29억여 원과 시비 12억여 원이 투입된 송촌정수장 1단계 고도정수처리시설(10만t/일)이 지난 8월 준공됐다. 시는 지난해 1월 월평정수장에도 1단계 시설 실시 설계용역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포스코건설 등 3개사가 참여한 컨소시엄이 수익형 민간투자사업(BTO-a) 투자의향서를 시에 제출했다. 이 컨소시엄은 월평정수장 1·2단계·송촌정수장 2단계 고도정수처리시설 설치와 중리취수장과 신탄진정수장을 잇는 도수관로 연결사업에 총 1172억 원을 투자해 오는 2019년까지 완공할 것을 제안했다. 대신 컨소시엄은 오는 2020년부터 2044년까지 고도정수처리시설의 운영권을 갖기로 했다.
시는 월평 1단계 사업을 중지하고 같은해 9월 KDI에 컨소시엄의 제안서 검토를 의뢰했다. KDI는 올해 7월 시에 적격성을 통보했다. 시는 민간투자법을 이유로 모든 과정을 비밀에 부쳤다.
뒤늦게 시가 상수도 시설사업에 민간자본을 투입하려 한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며 시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들은 “대전시가 상수도를 민영화하려 한다”며 맹비난하고 잇따라 규탄대회를 열었다.
시는 지난 9월5일 컨소시엄의 제안서를 두고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를 열었으나 여론 악화 등을 이유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권 시장은 “11월까지 결론냈으면 한다”며 강행의지를 내비쳤으나 정작 시는 민투심의위원회 재개최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민영화 일까 민간투자 일까
시가 추진하려는 BTO는 공공시설 등에 민간자본이 투자해 준공 후 일정기간동안 시설 운영권을 갖고 수익을 취하는 방식이다. 이때 소유권은 정부가 갖는다. 시설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최소 사업비 및 운영비는 정부가 보전하며 초과이익 발생 시 이익을 정부와 민간이 공유한다.
일반적으로 민영화는 공공기관의 소유권 및 운영권을 민간에게 이양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민영화의 범위를 넓게 잡고 있으며 일부 사회단체 등은 ‘정부의 소유와 기능을 사적자본에게 넘기는 것이자 공공부문에 수익성 기준을 따르게 하는 일체의 시도’라고 정의한다.
시는 “공공기관 일부분에 대한 운영권을 한시적으로 넘기는 것일 뿐 소유권을 넘기는 것이 아니기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 민간기업이 담당하는 것은 전체 정수처리시설 중 오존반응조와 활성탄흡착지 등 2개 시설 이다.
그러나 이광진 대전경실련 조직위원장은 “민영화의 핵심은 기업이 투자하고 운영해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민간이 직접 수돗물 소비자들에게 영업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는 것이다. 또 환경부는 지난 2001년 ‘BTO는 민영화’라고 명시했다”고 강조했다.
#진짜 수도요금 폭등하는 것 아냐?
시민단체들은 영국, 프랑스를 예로 들며 수도의 질 하락과 수도요금 폭등을 얘기한다. 시는 “수도요금은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요금폭등이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BTO로 시와 민간은 시설 운영시 발생한 추가이익을 공유하지만 수익이 79% 이하로 떨어질 경우 수익피해도 함께 분담해야 한다. 또한 민간이 시중 은행에서 대출한 투자금의 2.88% 이자를 시가 부담해야 한다. 이자도 전체 사업비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에 이제중 계장은 “시의 이자부담은 재정사업으로 진행해도 어차피 이자가 발생해 분담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기업이 빌리면 25년 균등상환인 반면, 시가 빌릴 경우 2년 거치 10년 균등상환으로 부담이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타 시·도는 국비로 하던데 왜 대전은 민간자본을?
환경부는 지역특별회계에 고도정수처리시설 설치를 포함해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인천, 광주 등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비 70%, 지방비 30%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초 대전도 국비사업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대기업이 투자를 제안해 민투 방식으로 선회했다. 고도정수처리시설에 민투 방식을 도입한 지자체는 대전이 처음이다.
시는 “국비로 추진하면 최소 15년이 걸리며 그동안 대청호의 수질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고도정수처리시설이 중요하다면 우선순위에 두면 된다”고 반박한다.
고도정수처리시설 사업과 도수관로 연결사업을 묶은 이유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민간의 투자금은 1172억 원이다. 도수관로 사업은 517억 원이다. 도수관로 설치는 당연히 민간기업이 담당하게 된다. 기업의 투자금 1172억에서 도수관로 사업으로 얻는 이익 517억 원을 제외하면 실제 고도정수처리시설에 투자하는 금액은 655억 원에 불과하다. 물론 도수관로 사업도 중요하나 이를 굳이 묶어서 진행할 필요는 없다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민간투자 만이 답?
시민단체는 사업이 국비를 투입한 재정사업으로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동섭 대전시의원도 “시민들이 반대하는 민투방식은 그만둬야 한다. 시가 적극적으로 방안을 찾으면 민간투자 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면서 “지난 1일부터 환경부의 지역발전특별회계 융자지원이 시행됐다. 이를 이용하면 1% 금리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극한 반발을 사고있는 대전시가 원활히 사업을 추진키 위해선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각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