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친노-DJ-호남 카드 다시 꺼내든 속내···낡은 대선 프레임 재탕하나
‘최순실 게이트 거국내각 논란’ 박근혜 대통령과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013년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국민대통합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일요신문]
-최순실 사태 전환 노림수? 박 대통령 DJ와 노무현 카드로 거국내각 선수
-‘노무현 정부’ 김병준 총리이어 ‘DJ와 호남’ 의식한 한광옥 비서실장 내정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인사 개편을 전광석화처럼 단행하고 있다. 전날 김병준 국무총리를 내정한데 이어 3일엔 대통령 비서실장에 한광옥(74)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내정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야기된 여야 정치권의 거국내각 구성을 무시한 것도 모자라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참여정부 인사를 내정한 속내를 두고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3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추관 브리핑을 통해 청와대 비서실 추가 개편안을 발표하며,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 한 위원장과 신임 정무수석에 허원제(65)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한 비서실장은 민주화와 국민화합을 위해 헌신해 온 분으로, 오랜 경륜과 다양한 경험은 물론 평생 신념으로 살아온 화해와 포용의 가치를 바탕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을 국민적 시각에서 보좌하며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데 적임이라고 판단돼 발탁했다”고 말했다.
한 비서실장 내정자는 4선 의원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등을 지냈다.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100% 대한민국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역임했다.
박 대통령은 바로 전날엔 신임 국무총리에 참여정부 정책실장을 역임한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내정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현 상황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대통령 비서실을 개편했고,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국민안전처 장관에 대한 인사를 단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신임 경제부총리에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국민안전처 장관에는 김 교수의 추천을 받아 참여정부 시절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낸 박승주 씨가 내정됐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명 소감을 발표하며 활짝 웃고 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정치권에서 거국내각론을 두고 이견차를 보이고 있던 와중에 사실상 박 대통령의 셀프 내각 인사 단행으로 국정주도권 선수를 빼앗긴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정치권은 맹비난 중이다. 야권은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 및 탄핵 카드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여권 일부에서도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다. 여론이 새누리당의 책임론으로 번져가는 것을 손 쓸 기회조차 뺏어간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번 인사 단행이 정치권이 요구하는 거국중립내각 취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물론 여론의 분위기는 부정적이다.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뒤 여야 합의 또는 국민합의를 거친 거국중립내각이나 과도내각이 거론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인선에서 노무현 참여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인사를 기용한 것을 두고 통합을 가장한 ‘정치적 쇼’일 뿐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하야에 이어 탄핵 절차를 밞아야 한다는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구속처벌 대상이지 내각인사 단행을 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박 대통령이 내각 인사에 DJ와 노무현 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이미 이들은 ‘친DJ’와 ‘친노계’ 사이에서 ‘배신자’로 불리어지고 있어 통합이니 중립이니 하는 시늉만 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한광옥 내정자의 경우 박 대통령의 대선과정에서 ‘국민대통합’을 걸고 선거운동을 도왔지만, 정작 호남과 DJ지지세력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또한 김병준 내정자 역시 17대 대선에서 당시 야권주자였던 정동영 후보와 갈등을 보이는 등 친노는 아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최순실 사태 압박당한 정치권” 야당 지도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인선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거국중립내각을 두고 총리 인선과 성격 등을 두고 이견차가 나는 틈을 타 최순실 사태로 흔들리는 국정을 선점해 오히려 여야 정치권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총선 직후 박근혜 정부가 자주 거론했던 ‘발목 잡는 국회’, ‘우왕좌왕 국회’ 프레임까지 재탕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 박 대통령의 내각 인사 강행으로 여야 정치권의 셈법이 바빠졌다. 특히, 야권은 국정 정상화를 위한 중립 내각 협의에서 박 대통령의 강제 퇴진으로 방향을 틀 전망이다. 여권 내부 역시 여전히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친박계와 박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하는 비박계간의 갈등이 재점화 될 조짐이 일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정치권의 싸움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런 국정혼란을 야기한 책임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여야 정치권내에서도 이런 국민여론에 더 귀 기울어야 한다는 자성마저 나오고 있다.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 시국선언과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들끓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