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천원 돈 쥐어줘…‘하은이 사건’ 악몽 오버랩
지난달 25일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지적장애 30대 여성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이 성폭행이 아니라 성매매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금품이 오간 성관계’이기 때문이다.
경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적장애 2급을 앓고 있는 30대 여성 A 씨는 2014년부터 최근까지 2년간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에 적발돼 구속된 피의자만 5명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70대 노인으로 A 씨가 판단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악용해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접근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A 씨는 가해자들의 집과 아파트 인근 폐가 등으로 끌려 다니며 성폭행을 당했다. 애초에는 노인 한 명이 범행을 저질렀지만, 자신의 행위를 이웃에게 자랑하면서 소문이 퍼지자 가해자들은 계속 늘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사는 동네에는 이미 이들의 범죄 행위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지만 주민들은 쉬쉬하며 이를 은폐했다.
범행 후 가해자들이 A 씨에게 천 원짜리 지폐를 몇 장 쥐어주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이에 대해 “성관계 후 돈을 줬다고 해서 성매수라고는 볼 순 없다. 금액이 크지도 않을뿐더러 성폭행의 정황이 명백하기 때문에 성폭행이 아닌 성매매 혐의가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 있게 밝히기도 했다. 돈을 줬더라도 피해 여성이 장애인인 만큼 강제성이 있는 준강간의 혐의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액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이들이 준 돈이 성관계의 대가로 볼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국민들을 공분하게 했던 ‘하은이 사건(떡볶이 화대 사건)’ 역시 1심 재판부에서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피해 아동 하은이가 성관계 후 가해자에게 얻어먹은 떡볶이나 모텔비 등을 성관계에 대한 대가로 보고 이를 ‘성매매 사건’으로 판단했다.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하은이를 성을 판매한 ‘대상 청소년’으로 구분해 성폭행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흔히 성폭행으로 구분하는 합의 없는 성관계의 경우, 성관계의 대가로 금품이 직접 제공됐다는 증거가 갖춰져 있다면 이를 성매매로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안동 장애인 성폭행 사건처럼 성관계 후 몇 천 원이라도 금품이 건네졌거나 혹은 피해자인 A 씨에게 음식 등이 제공됐다면 이 역시 성매매로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불거진 ‘충남 지적장애 여고생 집단 성폭행사건’에서 가해자였던 버스기사 4명 가운데 3명이 1심에서 집행유예, 1명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지적장애 여학생을 3년에 걸쳐 성폭행하면서 아이까지 출산하게 만들었으나 첫 성폭행에서만 강제성이 발견됐고, 이후에는 성폭행한 뒤 용돈 명목으로 건넨 2만~3만 원 상당의 금품이나 음식 등을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대가가 제공된 성관계였기 때문에 피해 여학생이 돈을 위해 자발적으로 성관계에 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성매매의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성매수자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그러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장애인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의 피의자에게는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된다. 이 때문에 장애인과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경우에 금품 등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들어 ‘장애인 성폭행’이 아닌 ‘성매매’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법조계의 이야기다.
한 성폭력 범죄 전문 변호사는 “장애인에 대한 강간·강제추행죄의 경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된 보호법익으로 하는데, 이 때문에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그 행위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였는지를 판단하는 게 핵심”이라며 “이런 성관계가 장기간 이뤄졌거나 반복적인 금품 제공을 통해 이뤄졌다는 증거가 갖춰져 있다면 강제성을 증명하기 어렵고 도리어 피해자의 자발성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은 피해 여성을 성폭력 피해자 전담 기관에 보호하는 한편, 구속된 5명에 대해 장애인 준강간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