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약 1000㎞씩 이동…공소시효 넘긴 절도범과 동고동락하기도
이번에 되찾은 동의보감. 일부가 훼손돼 있다. 사진제공=경기북부지방경찰청
처음 경찰이 냄새를 맡기 시작한 건 훈민정음 해례본 사건이 터진 지난해부터였다. 북부청 광역수사대 조폭3팀은 “문화재 한번 제대로 찾아보자”라는 마음으로 하나둘씩 첩보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처음 찾아간 곳은 충남 지역이었다.
경찰은 수사를 좁히다 지난 8월 8일 도굴범 A 씨(59)가 사는 아파트를 찾았다. 미행과 잠복을 반복하다 잡은 A 씨에게 압수수색영장을 내밀고 A 씨의 아파트 문을 열였다. 문이 열리자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려 562점에 달하는 삼국시대 도자기와 고려청자 등이 발견된 것.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2000년대 초부터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국의 사적지와 사찰, 고택 등을 돌며 삼국시대 도기, 고려시대 청자, 불상 복장물 등 보물을 찾아다녔다. A 씨는 한 산성에서만 고대 토기류 83점, 자기류 15점, 숟가락 6점, 가위 2점 등 삼국시대 토기의 전형 및 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물을 캤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 많은 유물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경찰 관계자는 “사실 정상적인 묘는 굳이 문화재 발굴을 하지 않고 그 자체로 두는 편인데 A 씨는 묘와 산성 주변을 많이 판 것으로 보인다. 조사 도중 A 씨는 ‘묘야 당연하고 산성은 전쟁에 휩싸인 적이 많아 파보면 이것저것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며 웃었다고 한다.
충청도를 지나 경상도로 향한 경찰은 9월 9일 일제 치하의 민족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상화 시인 일가에서 유물을 몰래 매입하고 은닉한 8명을 검거하기에 이른다. 국채보상운동 관련 서류 등 관련 유물 3221점을 회수했다. 이러한 유물 회수는 시작에 불과했다. 19일 뒤 경찰은 큰 몸통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이번에 회수한 대명률. 사진제공=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경찰은 지난 9월 28일 한 유명 사찰에 이르렀다. 사찰에서 발견된 문화재는 국보 319호 동의보감과 동일 판본인 동의보감 목활자 초간본 22권과 목판본 2본, 필사 1본 등 총 1질 25권이었다. 목활자본은 나무조각에 글자를 새겨 끼워 맞춰 찍는 방식으로 원본 제작 방식이며 목판본은 원본을 보고 나무판에 글을 새긴 뒤 복제할 때 사용되는 방식이다. 25권 중 22권이 국보와 동일한 형태로 제작된 원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999년쯤 절도범 B 씨(57)는 울진에서 포항 사이 해변가에 있는 고택들을 털다가 동의보감 1질을 훔쳤다. B 씨는 승려를 그만두고 문화재 매매업에 뛰어든 C 씨(60)에게 이 동의보감을 팔아넘겼다. 2년 뒤인 2001년 C 씨는 해당 동의보감을 자신이 머물던 해당 사찰에 2000만 원을 받고 팔았다. 문제는 기증서를 남겼다는 점이다. 이 기증서를 토대로 경찰은 끊임없이 C 씨를 찾아 헤맨 뒤 잡았고 장물인 줄 알고도 구매한 해당 사찰 종무실장 역시 검거했다.
회수 문화재를 찾으려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을 방문한 정상혁 보은군수. 사진제공=보은군청
사설 박물관장의 아들은 학예실장으로 해당 박물관에 재직 중이었으며 실제 구매를 시행한 사람은 관장의 부인이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은 도난 문화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장물범 D 씨(67)에게서 1500만 원에 대명률을 매입한 뒤 보물로 지정받았다. 일당은 대명률이 보물로 지정되면 돈을 더 주겠다고 D 씨에게 약속했지만 끝내 지키지 않았다. 이에 분개한 D 씨가 해당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며 대명률은 세상 밖으로 빛을 볼 수 있었다.
경찰이 문화재 회수 사실을 언론에 알리자 전국 각지에서 주인을 주장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하지만 주인 찾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경찰은 내다봤다. 동의보감의 경우 궁에서 남긴 하사 기록 ‘내사기’가 오려진 채 발견됐고 대명률의 경우에도 표지가 뜯겨진 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절도범이 문화재의 원 소유자 및 소유과정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훼손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정상혁 보은군수는 지난 9일 북부청으로 부랴부랴 달려와 보은 지역 문화재 106점을 회수해 갔다. 정 군수는 “보은 지역의 소중한 유물을 되찾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문화재를 잘 보존해 보은군 역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군민의 자긍심을 키우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김용기 팀장 “대부분 배고파서 시작했던 사람들이라 씁쓸” 김용기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조폭3팀장(50)은 약 2년에 걸쳐 해당 수사를 담당했다. 지금도 추가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 팀장이 밝힌 수사 이유는 간단했다. 김 팀장은 “지난해 상주에서 발생한 훈민정음 해례본 사건을 보고 그냥 갑자기 해보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 보람찰 것 같다는 이유가 컸다”고 말했다. 브리핑 중인 김용기 경기북부경찰청 광역수사대 조폭3팀장. 사진제공=김용기 팀장 문화재는 도난된 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세상에 나온다. 공소시효가 지나야 법망을 피해 판매할 수 있는 탓이다. 애써 찾은 절도범 여럿의 공소시효가 끝나 허탈한 적도 있었으며 막상 잡으러 찾아갔는데 이미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김 팀장은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았다. 김 팀장은 절도범에게 “어차피 범죄 사실을 시인해도 내가 잡을 수 없다. 그래도 우리 문화재만은 회수하자”고 한 명씩 설득해 수사망을 좁혀 나갔다. 조폭3팀은 하루에 약 1000㎞씩 달렸다. 전주에서 대전으로 이동하고 사천과 포항 등 전국 안 뒤진 곳이 없을 정도였다. 고속도로에서 자는 건 기본이었다. 특히 절도범과 동행하며 모텔에서 며칠씩 먹고 자기를 반복했다. 원수도 붙어 있으면 가까워지곤 한다. 게다가 김 팀장과 함께한 절도범은 80세를 넘긴 노인을 포함 대부분이 고령의 문화재털이였다. 김 팀장은 이들에게 이불도 깔아주고 밥도 대접했다. 이들의 불편한 동행은 멈출 줄 몰랐다. 조폭3팀은 30~40년 전 도난 장소조차 일일이 확인하며 수사를 진행했다. 김 팀장은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씁쓸한 건 이분들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제일 처음 문화재를 발견한 이 사람들은 그냥 배가 고파서 1만~2만 원에 팔고 했던 게 대부분이었다. 보통 돈이 좀 있는 사람이 문화재를 구입한다. 장물아비만 돈 버는 꼴이니 이 바닥도 우리 사회의 단면을 꼭 빼닮았다”고 토로했다. 김 팀장과 조폭3팀은 수사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조일 예정이다. 문화재를 훔친 사람도 문제지만 구입해서 전시하는 ‘고위급’도 문제라며 모두 소탕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김 팀장은 “소중한 문화재를 불법적으로 구해 사유화하려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끝까지 간다”고 말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