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생도대장과 육사 동기인 장성의 딸
육사 졸업식 모습으로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공=청와대
[일요신문] 육군사관학교에서 1946년 창설 이후 처음으로 여생도간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70여 년의 육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 데다 사후 처리 과정에서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며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육사는 이번 사건에서 사고가 터질 때마다 자주 지적되던 군 집단 특유의 늑장 대처, 은폐 의혹 등에 또 다시 휩싸이고 있다.
육사는 지난 2013년 5월 4학년 남생도의 2학년 여생도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 한차례 홍역을 앓은 바 있다. 당시 사건은 1998년 육사가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한 이후 처음 있는 성폭행 사건이었고 은폐 의혹까지 일어 화제가 됐다. 이후 육사 교장이 전역 조치되고 교수·훈육관 등 장교 11명이 징계 절차에 회부됐다.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고 3년이 지난 최근에는 여생도간 성추행이 발생했다. A 생도(21)가 올해 3월부터 같은 생활관을 이용하는 2명의 동기생을 뒤에서 껴안거나 신체를 만지는 등의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A 생도는 이 같은 행동을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나서야 자신의 성 정체성에 의심이 든다는 발언을 했고 한 방을 쓰는 동기가 학교 측과 상담도 했지만 즉각적인 조치가 없었다는 부분이다.
육사 측은 지난 10월에서야 비로소 진상조사에 나섰고 그 조사 과정에서도 별다른 징계 없이 A 생도가 퇴교 의사를 밝히자 즉시 훈육위원회를 열어 학생을 퇴교 처리 했다. 그렇지만 퇴교 조치로 이번 사건이 마무리된 것을 두고 ‘A 생도의 아버지가 현역 장성이라 사고를 축소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육사 측은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육군본부에서 조사중이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며 “육군본부에 문의 바란다”는 답변만을 했다. 육군본부에서는 사건과 관련해 “조사중인 사항이라 자세히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들은 A 생도의 아버지와 육사 생도의 교육을 책임지는 생도대장이 동기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육사 동기가 맞다”고 확인해줬다. 이어 육군본부는 “A 생도의 퇴교 처리 등 사건 이후 절차에서 A 생도 아버지와 생도대장 간의 접촉이 있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육군본부 측은 “사건 경위뿐만 아니라 이후 육사에서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는지에 대해 조사 중”이라며 “조사를 마치고 나면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 생도들이 많은 언론 보도로 관심을 받아 놀란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피해 생도들은 가해 학생의 처벌을 원치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내 ‘여생도 생활’ 코너.
이번 사건에서 육사는 지난 7월 피해 생도가 “방을 바꿔 달라”고 요청해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10월이 돼서야 A 생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최초로 사건을 접한 이후 조치가 취해지기까지 약 3개월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육사는 3년 전 성폭행 사건에서도 약 일주일간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한 그 사이 A 생도에게 징계 등이 내려지지 않고 퇴교 의사를 밝히자 그대로 처리된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한편 학교 측에서 입막음을 지시했다는 증언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매체는 군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육사 측이 명예 실추를 이유로 입단속을 지시했고 징계도 내려지지 않아 사실과 다른 소문이 돌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 육사 내에 복무중인 기간병도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한 병사는 “이 정도 큰일이면 보통 행정관을 통해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이번엔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육사 졸업 후 장교로 복무 중인 이들은 졸업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번 사건을 더욱 안타깝게 바라봤다. 한 장교는 “이번 사건이 동기들 사이에서도 이슈였다”며 “또 다시 육사의 이미지가 실추된다고 생각해 다들 아쉬워하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 교내 성폭행 사건으로 여생도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기 위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여생도 사이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건 이후 육사 측에서 취할 후속 조치에도 눈길이 집중된다. 지난 2013년 성폭행 사건 이후 육사는 음주·성 관련 크고 작은 사고가 지속되자 ‘육사 제도·문화 혁신 TF’를 구성, 대책을 내놓았다. 혁신 방안으로는 10일 간의 ‘생도 정신문화 혁신주간’ 신설, 외박 일수 축소, 당직·불침번 제도 강화 등이 나왔지만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문화 혁신’이 아니라 ‘생도 괴롭히기’라는 비판이 가해진 것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