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집회 이후 청와대와 정치권 수습책 마련 고심중
피켓 뒤로 보이는 청와대. 사진=고성준기자.
[일요신문] 지난 11월 12일 역대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이 추산한 시민은 100만 명이 넘었다. 경찰 측은 26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 1987년에 있었던 6월 항쟁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집회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서울도심과 지방 곳곳으로 모였다. 이유는 하나. 이들은 집회 내내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 요구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역대로 손꼽을 만큼 많은 인원이 모였지만 집회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평화롭게 진행됐다. 집회는 12일 오후에 시작돼 다음날 새벽까지도 계속돼 1박2일 집회로 끝마쳤다.
지난 10월 30일에 있었던 1차 촛불집회에 이어 지난 11월 12일에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3차 촛불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집회에 앞서 서울광장 주변인 서울 광화문과 청계천, 대학로 등 일대에서는 다양한 사전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관계자 1만 명은 이날 정오 서울 광장에서 노동자대회를 시작했다. 또 빈민·장애인 대회, 여성대회, 전국노동자대회 등에 나선 참가자들도 사전 집회를 시작한 후 서울 광장으로 이동해 오후 4시부터 시작한 3차 촛불집회에 합류했다. 가족, 친구 단위로 이뤄진 시민들 역시 오후가 되자 서울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12일 오후 서울시청광장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고성준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상호 원내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도 함께했다. 추 대표는 박 대통령이 국회 추천 총리에게 내치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해서 “외치를 대통령인 본인이 꼭 해야겠다는 것인데 박 대통령에게 더 이상 나라의 외치를 맡길 수 있겠는가”라며 “최순실이 써준 대로 해외순방 다니는 게 외교가 아니며, 위험천만하고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대통령에게 군 통수권도 내려놓으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권 인사들도 참여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또 황영철,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 등 여당 일부 의원들도 이번 집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을 향해 “이제 대통령을 내려놓으라”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곳은 민주노총 등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였다. 이들은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을 연대해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를 개최했다. 이들은 오후 5시부터 ‘청와대 에워싸기 행진’을 진행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서울 광장에 모이자 행진은 1시간이 지연된채 시작됐다. 주최 측은 당초 서울 광장에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하는 경로, 서울 광장에서 출발해 각각 신문로·정동길·을지로입구·을지로 2가 등을 거쳐 내자 로터리까지 가는 경로 등을 행진 경로로 신고했다.
시민들의 규모만큼이나 행진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다. 경찰은 도심 내 구간의 행진을 허용했으나, 교통소통과 구급차 비상로 확보 등을 이유로 경복궁역 인근까지의 행진은 금지한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날 경찰이 청와대 인근 구간의 행진을 금지한 데 참여연대가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집회·시위로 인한 교통 불편보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했을 때의 공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법원 결정이 나오면서 내자로터리∼광화문∼안국로터리로 이어지는 율곡로까지 시위가 가능해졌다.
1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고성준기자.
경찰은 지금까지 광화문에 대규모 집회가 있을 때마다 세종대왕상을 중심으로 세종문화회관과 미국대사관을 경찰버스 차벽으로 봉쇄했다. 그러나 법원의 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경찰은 버스 차벽을 내자로터리 방면까지 후퇴했다. 다만 경복궁역 교차로를 넘어 청운효자동주민센터로 이어지는 거리는 행진은 불가능했다. 이 구간은 애초 투쟁본부가 신고한 범위 밖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일대에 차벽을 설치했다. 투쟁본부 관계자는 “경복궁역 교차로까지가 행진의 종착점”이라며 “많은 시민이 모인만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겠다”고 밝혔다.
행진이 시작된 지 한 시간쯤 지나자 시민 일부가 마지막 지점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로 모여들었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는 청와대로부터 서쪽으로 불과 200m 떨어져 있는 곳이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에는 경찰 차벽과 경찰 병력이 서 있었다. 시민 일부는 이 곳에서 대치 중인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거나 다쳐 연행되기도 했다. 경찰관 한 명은 집회 참가자가 던진 백미러에 눈썹 위를 맞아 3㎝ 정도 찢어졌다. 경찰은 13일 오전 2시 30분께 해산작전에 돌입했으며 도로를 점거하거나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시민 23명을 연행, 6개 경찰서로 분산 이송해 조사를 진행했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경복궁역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청와대 인근으로 행진하려 하자 경찰들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사진=고성준기자.
광화문 일대에서는 평화시위가 계속됐다. 행진에 나서지 못한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문화제 행사에 참여했다. 문화제 행사에서는 김제동, 김미화, 크라잉넛 등의 공연과 발언이 이어졌다. 김미화 씨는 “경찰은 당당하게 수사하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외치니 내치니 이런 말을 하고 있는데 과거 쓰리랑 부부를 할 때 외치던 말이 있다. 무조건 방 빼”라고 말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크라잉넛은 ‘룩셈부르크’, ‘말달리자’ 등 히트곡을 부르며 문화제의 열기를 한층 뜨겁게 달궜다.
3차 촛불집회는 또 다른 움직임을 불렀다. 청와대와 정치권 등에서는 성난 촛불 민심을 확인하고 추가 수습 대책 마련을 위해 고심 중이다. 청와대는 13일 오전 10시 한광옥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100만 명이 운집한 민중총궐기 대회와 관련한 대응책 등을 논의했다. 또 여야에서도 대책회의를 열었다. 새누리당은 13일 긴급최고위원회의와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정국 수습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날 오후 2시 국회에서 긴급최고위원회 간담회를 열고 정국 대응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