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단지 철거 학부모 항의집회…구청·조합 “기존 절차보다 엄격히 관리·감독” 반박
지난 15일 서울 강동구 상일여중‧고‧미디어고등학교 학부모 단체가 강동구청 정문에 모여 재건축 사업 전면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분진이 그대로 날아오는데 학생들을 위한 조치가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믿고 맡기나요.”
지난 15일, 서울 강동구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가 얼굴을 찌푸렸다. 또 다른 학부모는 공사 현장에서 날아온 먼지와 소음에 노출된 아이들이 걱정돼 잠도 못 이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강동구 상일여중‧고‧미디어고등학교 학부모 단체는 집회에서 서울 강동구 고덕지구에서 진행 중인 한 재건축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서울 강동구 고덕지구는 서울 전체 재건축 사업 가운데에서도 규모가 큰 지역이다. 고덕동·명일동·상일동 일대 93만 4730㎡ 부지에 고덕 주공 1~7단지 등 1만 2850가구의 노후 아파트가 재건축을 마치면 약 2만 가구의 작은 신도시급 주거지가 된다. 특히 지난달 분양을 마친 이 지역의 한 재건축 사업장이 올해 서울에서 청약자가 가장 많이 몰린 단지로 기록된 데다, 나머지 재건축 사업장도 속도가 붙으면서 부동산 업계에서는 고덕 지구가 서울에서 청약자와 투자자들의 관심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한 재건축 사업장에서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문제의 재건축 사업장은 고덕 주공 7단지로, 지난 11월 1일부터 노후 아파트 철거작업이 시작됐는데 작업 현장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앞서의 상일여중‧고‧미디어고등학교 측과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철거공사로 인한 소음이나 분진, 석면 등에 아이들이 그대로 노출됐는데 구청과 시공사, 조합 측이 아무런 조치 없이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는 이유다. 앞서의 한 학부모는 “사전에 협의한 내용도 지켜지지 않았고, 철거 작업이 시작된 이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 많아 더 놀랐다”고 말했다.
학교와 학부모 관계자들에 따르면 앞서 지난 10월 25일 상일여고 회의실에서 고덕 7단지 재건축 시행과 관련, 분쟁조정협의체 회의가 열렸다. 학교 측과 학부모 대표단, 강동구청 재건축과, 조합, 시공사 관계자 등 30여 명이 모여 향후 공사 방향과 방식을 두고 의견을 나눴다.
당시 학교 측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분진과 안전 문제를 해결할 시설, 자동소음 및 분진 측정기 설치 등과 함께 공기청정기와 밀폐 창틀 등 학교 환경 개선 시설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구청 관계자는 조합과 시공사가 적극 검토 및 협의할 수 있도록 중재하겠다고 밝혔다. 또 철거 작업도 학교와 280여m 떨어진, 가장 거리가 먼 아파트 한 개 동을 시범 철거한 이후 2차 협의를 통해 진행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현재 학부모 단체는 앞서의 협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거 작업은 7단지 아파트 총 25개 동을 대상으로 지난 11월 1일부터 시작됐는데, 요구한 분진 및 안전문제 해결을 위한 시설 설치도 없이 공사가 강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11월 1일 노후 아파트 철거 작업을 참관한 한 학부모는 “건물이 무너지는데 살수차가 한 대밖에 동원되지 않아 분진 확산이 심각했다”며 “또 시범 철거 이후 다시 협의를 하자고 했는데 다음날부터 철거 작업이 곧바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재 7단지는 총 6개 동이 철거돼 있다.
철거 작업 중 발생한 분진. 학부모 측은 물을 충분히 뿌리지 않아 분진이 그대로 학교로 날아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동구청과 조합 측은 살수차를 동원했으며, 분진과 소음은 최소화 했다며 맞서고 있다. 사진제공=상일여중‧고‧미디어고등학교 학부모단체
학교 측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 중이다. 상일여중‧고등학교의 학생 식당이 7단지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는데, 분진이 그대로 식당에 날아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학교 관계자는 “철거 현장과 마주보고 있는 곳 창문 곳곳에도 분진이 쌓여있다. 창문을 닫아 놔도 이 정도인데, 현장과 가까운 식당은 어떻겠느냐. 이런 곳에서 학생 2300여 명이 밥을 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앞서의 3개 학교가 서울시 잠복결핵 관리 대상에 올라있다는 점도 학교 측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서울시는 지난해 메르스 사태 이후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선제적 결핵 관리를 하고 있는데, 올해 초 학교의 일부 교사에게서 결핵이 발견되면서 모든 학생이 결핵 감염 조사와 약 처방을 받았다. 오는 12월에도 추가 검진, 투약 등이 예정돼 있다. 앞서의 학교 관계자는 “결핵에는 먼지가 치명적이다. 이 사실을 구청에 전달했는데도 아무 조치 없이 철거를 강행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철거에 앞서 진행했던 7단지 석면해체‧제거 작업에서도 뒤늦게 문제가 발견되면서 학부모들은 구청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강동구청이 지난 9월 13일부터 10월 30일까지 예정돼 있던 석면해체 일정을 작업 당일인 9월 21일 오전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석면안전관리법 시행규칙 제37조(석면해체·제거작업의 공개 등)를 보면, 석면해체작업 사실을 ‘안 날’부터 작업완료일까지 지방자치단체의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석면 해체작업 속도도 도마에 올랐다. 7단지 해체 작업은 아파트 총 25개 동을 9일 만에 완료했는데, 인근 3단지 아파트 총 68개 동은 지난 9월 8일에 시작돼 11월 16일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또 다른 학부모는 “3단지와 7단지는 같은 시공사에서 같은 공법으로 세웠던 아파트인데 석면 해체 작업 속도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아파트 단지 규모 차이를 고려해도 너무 빠르지 않나”라고 말했다.
현재 철거 작업은 학교와 학부모 측이 앞서의 문제 제기와 대입수능시험을 이유로 전면 중단을 요구해 진행이 멈춘 상태다. 이들은 구청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민원을 제기하면 중재나 행정지도를 한다면서도 정작 지켜진 게 없다는 주장이다. 일부 학부모는 구청에 대해 “시민보다는 시공사나 조합 측에 더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고덕 7단지 총 25개 동 가운데 일부. 학교 학생 식당(사진 오른쪽 아래 옥상이 보이는 건물)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에 대해 조합과 구청 측은 “학교와 학부모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당황스런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학생들의 학습권과 건강이 최우선인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학교와 학부모 측의 일부 요구는 과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다.
고덕 7단지 조합 관계자는 “현장과 학교가 가까운 데다 앞서의 학교를 졸업한 자녀를 둔 조합원도 상당수라 남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하루에도 수천만 원의 비용이 나가고 있다. 일정이 지체될수록 1000여 명에 가까운 조합원이 부담하는 사업 진행 비용은 계속 늘어난다. 그래도 학교 측 요구 사항을 모두 반영하고 있고, 일부는 구체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분진과 소음과 관련해 시공사와 협의해 기준치를 넘기지 않는 등, 법테두리 안에서 모든 절차를 지키고 있다”며 “다만 공기 청정기나 밀폐 창틀을 교체해 달라는 등의 일부 요구사항은 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강동구청 재건축과 관계자는 “고덕 7단지는 건물을 전도(넘어뜨리는 작업)하는 과정에서 시공사와 협의해 소음과 분진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도입하는 등 기준과 절차를 기존보다 더욱 엄격히 지키고 있다. 학생들을 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회의나 협의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학교 측 요구 사항을 반영하면서도 시공사와 조합 측 의견을 고려해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