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노골적인 반기문 밀어주기?
여가부는 지난 4월 1일 ‘2016년 지역다문화프로그램 공모 사업’으로 한국다문화센터의 ‘청소년 뮤지컬 레인보우 하모니’를 선정했다. 이 사업에 선정되면 3000만 원에서 최대 1억 원까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여가부가 공지한 공모 규정을 보면 ‘문화, 예술, 공연을 주목적으로 하는 사업은 제외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자칫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하는 사업과 내용이 겹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데없이 청소년 뮤지컬 사업이 선정되자 당시부터 뒷말이 무성했다고 한다.
지난해 유엔을 방문해 반기문 총장과 만난 박근혜 대통령. 사진제공= 청와대
해당 공모 사업은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됐는데 지금까지 공연 관련 프로그램이 선정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해당 사업은 25개 단체를 선정해 지원하는데 올해 140여 개 단체가 신청서를 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다문화 지원 단체의 한 관계자는 “공연을 주목적으로 하는 사업은 제외한다고 분명히 명시해놓고 공연 프로그램을 선정하니 탈락한 단체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문화 관련 단체들은 여가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기 때문에 대놓고 항의할 수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번 사건은 한국다문화센터 센터장인 김성회 씨가 반기문 총장 팬클럽인 ‘반딧불이’ 회장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더 큰 논란이 됐다. 앞서 언급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우리들끼리 그냥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김 센터장)이 TV에 나오는 것을 보고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의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반 총장 대세론이 불거진 후 반 총장 지지모임이 난립하고 있지만 김 센터장과 반 총장과의 관계는 좀 더 특별하다. 김 센터장은 지난 9월 한국다문화센터가 운영하는 레인보우 합창단을 이끌고 뉴욕에서 유엔 초청공연까지 하고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난립하는 자신의 지지모임들에 대해 모두 선을 그어온 반 총장이 이례적으로 특정 팬클럽 회장이 이끄는 합창단을 유엔으로 초청해 힘을 실어준 것이다. 당시 공연에는 김원수 유엔사무차장과 오준 유엔대사를 비롯해 반 총장과 부인 유순택 여사까지 직접 참석해 공연을 지켜봤다.
이런 일이 알려지자 김 센터장이 반 총장과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가능한 일이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에선 김 센터장이 공연 하루 전날 반 총장과 오랜 시간 독대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여가부는 이 사업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우리는 해당 단체가 반 총장 팬클럽과 연관되어 있는 단체인지도 몰랐다. 공고문에 ‘문화, 예술, 공연을 주목적으로 하는 사업은 제외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이는 문화 프로그램 자체를 불허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가족 지원이 주목적이 되어야지 문화 진흥이 주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며 “다문화가족의 주도적 사회 참여라는 공모주제 아래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다문화청소년 뮤지컬 공연활동을 지원한 것이다. 지난해에도 ‘지역사회 다문화 인식 개선’을 공모주제로 해 문예창작교실, 시낭송, 문화예술 체험, 폰으로 단편영화 만들기 등과 같이 문화, 예술을 내용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한 사례가 있는 등 이번 선정이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여가부 측은 또 “외부 전문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초청해 단체를 선정했고 여가부는 지원금만 내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특혜는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당시 심사위원들의 해명을 들어보고 싶다며 심사위원들의 명단을 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여가부 측은 “심사위원 명단은 개인 정보에 해당돼 공개할 수가 없다”며 거절했다.
그런데 여가부의 설명과는 달리 한국다문화센터 측의 사업계획서를 보면 32회 공연연습과 캠프 1회를 제외하고는 다른 프로그램은 없었다. 아이들을 지도했던 외부강사도 “공연 연습 외에 기억나는 다른 프로그램은 없었다. 공연 연습이 끝나면 집에 갔다”고 설명했다.
여가부 측은 공연이 주목적이 아니라고 했지만 한국다문화센터 측은 해당 사업에 참여할 다문화 청소년들을 모집하면서 안무와 노래 등으로 오디션까지 본 것으로 확인됐다. 공연이 주목적이 아니라면 이런 오디션 과정이 왜 필요했겠느냐는 지적이다.
해당 사업에는 4000만 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됐는데 막상 공연은 한국다문화센터 내 자체 연습실과 사회복지관 강당 등에서 실시했다. 관객은 참여 다문화 청소년의 학부모와 가족, 지역주민 등 50여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증언한 다문화 지원 단체의 한 관계자는 “공연 프로그램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공모에 지원한 단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례로 공연 분야에 특화된 모 단체가 있는데 이번 공모사업에는 공연과 전혀 관련 없는 ‘아동부모역할 교육프로그램’으로 지원해 선정됐다”며 “여가부의 말대로라면 공연 프로그램으로 지원하려는 단체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의혹제기에 대해 김 센터장은 “특혜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우리는 정상적인 절차로 사업 공모에 신청해 선정된 것뿐”이라며 “반딧불이를 올 초부터 준비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6월경부터인데 반 총장의 입김으로 선정됐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항변했다.
김 센터장은 “유엔에 초청된 것도 내가 반딧불이 회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다문화센터 센터장 자격으로 초청된 것이다. 내가 반 총장과 독대했다는 보도도 오보다. 항의해서 기사를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다문화센터는 지난해에는 같은 공모 사업에 지원했다 탈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공연도 5년 전부터 추진했지만 성사가 되지 않다가 올해 5월에서야 초청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모두 김 센터장이 반 총장 팬클럽 창립을 준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반 총장과의 관련성을 속단할 수는 없지만 여가부가 내부 규정을 어겨가며 이 단체에 특혜를 준 의혹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심사과정에서 외압은 없었는지 살펴봐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