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노사모’ 꿈꾸는 SNS 지지세력 오프라인서도 활동…“문재인 지지자들 대거 합류”
10월 23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손가락혁명군들의 ‘작당모의’ 콘서트. 유튜브 동영상 캡처.
11월 12일 기자와 만난 민주당의 한 비서는 “ ‘최순실 게이트’는 대권잠룡들에게 강력한 호재다. 그 기회를 제대로 파고든 사람이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 카드를 처음 꺼낸 이도 이 시장이었다. 이 시장은 흙수저 출신이라서 스토리도 충분하다. 지지층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다. 우리 당은 ‘문’으로 정리됐지만 이 시장은 폭발력을 갖춘 리더다. 내년 대선에서 반드시 뭔가를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내년 대선의 ‘히든’ 카드라는 분석이다.
이 시장이 최근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11월 14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1월 2주차 주간집계에 따르면, 9%의 지지율을 기록한 이 시장은 4위를 차지했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21.4%)로 1위를 기록한 가운데 반기문 UN 사무총장(17.2%)이 뒤를 이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10.2%)가 3위를 기록했다. 이 시장은 박원순 서울시장(5.3%)를 제치며 기염을 토했다(이번 조사는 11월 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31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p, 응답률은 12.3%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시장의 상승세는 손가락혁명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손가락 혁명군(손가혁)’은 이재명 성남시장을 지지하는 SNS세력이다. 이들은 페이스북·트위터 등에서 이 시장에 관한 글을 올리거나 토크 콘서트를 따라다니는 열성 지지자들이다. 11월 12일 열린 광화문 촛불집회는 물론 이 시장이 촛불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이들은 ‘이재명 대세론’을 외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껏 손가락 혁명군들의 주축은 이 시장의 팬클럽 이사모(이재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사모 회원들 외에도 자발적으로 손가락혁명군에 참여하는 누리꾼들이 늘고 있다. 손가락 혁명군의 주 활동 무대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다. 이 시장의 페이스북 팔로어 숫자는 18만 2717명. 이들이 너도나도 손가락혁명군을 자처하고 있다.
이 시장은 11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6년 대한민국 최고경영자 대상”을 받았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손가락 혁명군들은 “손가락 혁명군 다 모여라, #이재명 기사가 뜨면 링크 열고 들어가서 공감 누르고 댓글달기 운동” 캠페인 배너와 함께 이 시장의 강연 동영상 링크를 댓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손가락혁명군의 활약은 트위터상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이 시장의 트위터 팔로어는 30만 5237명이다. 이 시장이 11월 16일 “이재명 지지율 10.9%, 빅3 첫 진입했다”는 기사를 인용한 순간 손가락혁명군들은 너도나도 기사를 ‘리트윗’했다. 손가락혁명군의 한 회원은 “대권주자들이 시장을 따라하고 있다. 시장님은 소신껏 의사를 펼치는 반면 다른 야권 주자들은 관망하고 있다. 축하할 일이다”는 댓글을 달았다. 다른 회원은 “우리는 이재명호, 청와대로 가고 있다고 전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손가락혁명군의 트위터 계정은 급증했다. 트위터 계정의 이름도 ‘손가혁 4167부대’ ‘친노, 손가혁’ 등 각양각색이다. ‘박근혜 퇴진’ 구호를 배경화면으로 내건 손가락혁명군의 다른 회원은 ‘#그런데 최순실은’ 메시지 운동을 이어갔다. 이들은 최근 “하야 요구와 탄핵절차 같이 하면 되지 왜 하야투쟁만 해야 합니까?”라는 이 시장의 글을 ‘팔로잉’하면서 지지운동에 본격 돌입했다.
손가락혁명군은 네이버 밴드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손가락혁명군의 또 다른 회원은 “손가락혁명군은 아직 체계를 완벽히 갖추지 않았다. 실체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을 지지하고 SNS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손가락혁명군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네이버 밴드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다. 각 지역의 밴드장들이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성남 지역의 손가락혁명군들이 모인 한 밴드(회원 876명) 모임은 11월 12일 열린 광화문 촛불집회 공지를 올렸다. 공지는 “이 시장이 태극기를 가져오라고 했다. 박근혜탄핵 촛불집회를 태극기로 가득 채우자”고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재명과 손가락혁명군 사령부’ 등 각종 밴드모임은 손가락혁명군들의 오프라인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손가락혁명군은 최근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10월 23일 이 시장 측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손가락혁명군을 위한 ‘작당모의’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행사장에 몰려온 약 3000명의 시민들은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구호를 외치며 이 시장을 향해 환호를 보냈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제는 이재명이다, 나라를 구할 이재명이다’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기도 했다. 지금껏 SNS 공간에서 활동했던 손가락혁명군들이 본격적으로 세를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장 측도 손가락혁명군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장은 지난해 12월 25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손가락 혁명군’의 모집요강을 밝혔다. 모집요강은 “첫째, 손가락이 건강하고 건전할 것. 둘째, 옳은 말과 글에는 마구 흥분할 것. 셋째,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있을 것. 넷째, 새누리당·일베요원이 절대 아닐 것. 다섯째, 비록 적이라도 욕은 하지 말 것”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장이 공개적으로 모집요강을 천명한 뒤 손가락혁명군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시장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는 우리의 동지들 손가락 혁명 동지들한테 큰 절을 드리겠다. 제가 먼저 두려움을 뚫고 혁명적 변화, 국민변화의 폭풍 속으로 뛰어 들겠다”고 화답했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했던 손가락혁명군은 “지지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국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왔고 미국 뉴욕에서도 지지자들이 왔다”고 보탰다. 이 시장이 손가락혁명군 앞에서 자신의 대선출정식을 연 셈이다.
손가락혁명군에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지지했던 열성지지자들이 대거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회원은 “이 시장의 팬들 중엔 과거에 문 전 대표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많다. 지난 대선 때 최선을 다해 문 전 대표를 밀어줬지만 이기지 못했다. 20대 총선 때 김종인 전 대표를 영입해 당의 정체성에 혼란을 초래한 모습에도 실망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 전 대표의 지지자들이 이쪽으로 떨어져 나와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제2의 노사모를 꿈꾸는 손가락혁명군은 전국 조직망도 갖출 계획이다. 손가락혁명군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곧 노사모처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광주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무너뜨렸다. 이 시장도 광주를 시작으로 돌풍을 일으킬 것이다. 전국 조직화를 위해 논의 중이다. 노 전 대통령은 너무 착한 지도자였다. 전투적이지 못해 기득권 세력에게 당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전투형 노무현’이라고 생각한다. 대선까지 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손가락혁명군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우리 쪽 대권 주자 캠프에서도 손가락혁명군을 신경을 쓰고 있다. 이 시장을 지지하는 팬클럽이 이 시장의 힘이다. 대선후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적인 인지도다. 이 시장은 자발적인 힘으로 조직을 형성하고 있다.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여의도 정치권에선 “일부 보수세력들이 문재인과 이재명을 갈라놓기 위해 ‘손가혁’ 행세를 하고 다닌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에 대해 ‘손가혁’의 또 다른 회원은 “그 사람들이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들일 수도 있고 문 전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다 걸러질 것이다. 아무리 온라인이라고 해도 게시글을 천천히 읽어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성남시 측 역시 “야권이든 일베든 서로 음해를 하고 허위사실로 공격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초래한 특수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전 교수는 “우리나라는 평시 상황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누구나 이 시장을 모른 채로 지나쳤다. 하지만 지금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혼란스럽다. 꼭두각시가 난무하는 시대다. 대권잠룡 한 사람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철학에 공감한 소위 ‘빠’라고 불리는 이들이 남다른 열정을 보일 수 있는 까닭이다. 대통령의 하야, 기득권 타파를 외친 이 시장의 메시지가 대중들의 감성을 섬세하게 ‘터치’한 것”고 분석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