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기’ 노림수냐 물타기 ‘꼼수’냐
의혹투성이인 영수회담 카드는 촛불정국에서 ‘신중론’을 폈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면 등판으로 이어졌다. 문 전 대표는 하루 뒤 ‘조건 없는 퇴진론’을 앞세워 시민항쟁의 최전선에 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11월 16일 역습 카드를 꺼냈다.
이명박(MB) 정부의 ‘파이시티’ 사태를 능가하는 ‘부산 엘시티’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촛불정국에서 사흘간 ‘추 대표의 난데없는 영수회담 카드→문 전 대표의 등장→박 대통령의 엘시티 비리 의혹 수사 지시’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이쯤 되면 배수진이다. 둘 중 한 명은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진검승부 ‘빅뱅’이다.
지난 8월 열린 전당대회에서 추미애 당시 당대표후보가 문재인 전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추 대표의 영수회담 추진 과정은 미스터리 일색이다. 추 대표가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한 것은 14일 오전 6시 30분. 언론에 관련 사실을 알린 것은 2시간여 뒤인 오전 8시 44분께다. 야권 관계자들조차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영수회담은 정국 주도권에서 밀리는 쪽에서 판을 흔들 때 쓰는 일종의 ‘국면전환 카드’다. 추 대표의 영수회담 카드는 정반대였다. 100만 촛불 시민행렬이 광장으로 나온 지 이틀 만에 정국 주도권을 쥔 추 대표가 ‘5%의 지지도’인 박 대통령에게 단독 영수회담을 특별한 조건 없이 제안한 것이다.
또한 ‘비밀주의’로 일관했다. 추 대표 카드는 민주당 핵심 관계자 일부만 알 정도로 극비리로 진행됐다. 앞서 추 대표는 11월 13일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이를 논의한 뒤 그날 밤 우상호 원내대표에게 이를 전달했다고 했지만, 당내 중진 의원들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진실공방을 벌였다.
우 원내대표만이 추 대표로부터 13일 밤 전화를 통해 관련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의혹이 증폭되자 정치권 안팎에선 ‘친노(친노무현) 엘시티 연루설’, ‘당 주류의 당내 개헌파 제압설’ 등 정체불명의 시나리오만 떠돌았다.
이후 청와대가 추 대표 제안을 수락한 것은 오전 10시 27분께다. 그간 영수회담 과정마다 갈등의 진원지였던 회담 일정 및 형식, 장소 등을 둘러싼 핑퐁게임도 없었다. 통상적인 영수회담 추진 과정에서는 양측이 회담 일정이나 의제, 형식 등을 놓고 기싸움을 펼친다. 담판 승부인 영수회담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전략이다. 이번에는 되레 추 대표가 청와대 측에 ‘회담 형식 등은 상관없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정치권 안팎에선 영수회담을 통해 국면전환 지렛대를 삼으려는 청와대와 촛불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추 대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풀리지 않은 의혹은 한층 증폭됐다. 민주당 내부는 격앙됐다. 같은 날 오후 의원총회에 참여한 중진 의원은 “다수가 반대”라며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같은 날 오후 6시 40분께 ‘11월 15일 청와대에서 단독 영수회담이 열린다’며 일정을 공개했다. 당내 반발에도 민주당이 청와대와 협상을 벌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2시간 만에 반전이 일어났다. 오후 8시44분께 추 대표가 당내 반발에 무릎을 꿇고 백기를 든 것이다. 추 대표가 청와대에 영수회담을 제안한 지 14시간 만의 회군이다. 지난 8·27 전당대회 직후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철수에 이어 두 번째 ‘철수 정치’를 한 셈이다.
여의도를 휘감은 소문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제기된 의혹은 엘시티 사건의 야권 유력 인사 연루설이다. 그간 엘시티 비리 의혹에 여권 친박(친박근혜)계와 친이(친이명박계), 야권 친노계 등이 엮였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른바 ‘부산 발 엘시티 폭탄’이다.
특히 게이트 정국에서 엘시티 사건으로 도피 중이던 이영복 회장이 돌연 체포·구속되자, ‘사건의 퍼즐’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평론가는 “추 대표가 급작스럽게 영수회담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관계자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선 ‘질서 있는 퇴진’을 당론으로 변경한 추 대표가 과도내각 카드를 앞세워 개헌 논의를 주도, 당내 비주류 개헌파를 제압하려는 포석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청와대 발 엘시티 수사’ 촉구로 단숨에 묻혔다.
그러자 문 전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11월 15일 ‘조건 없는 퇴진론’을 들고 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카드였다. 14시간 만에 철회한 추 대표의 돌출 행동으로 당 안팎으로부터 뭇매를 맞자, 문 전 대표가 퇴진 카드를 들고 최전선에 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문 전 대표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추 대표의 뜬금포가 문 전 대표로 불똥이 튀기 일보 직전, 박 대통령 퇴진운동의 막차에 탑승한 셈이다.
문 전 대표 측 구상의 플랜 A는 ‘조건 없는 퇴진’을 통해 하야를 이끌어낸 뒤 ‘과도내각 구성과 조기 대선’ 수순을 밟는 것이다. 플랜 B는 하야 카드로 압박한 뒤 박 대통령이 버티기로 일관할 경우 탄핵 절차에 돌입하는 안이다. 문 전 대표는 탄핵에 선을 그었지만, 이 카드를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미스터리한 영수회담이 문 전 대표의 발목을 잡을 조짐이다. 앞서 문 전 대표 측은 추 대표와의 사전교감설에 대해 “사전 협의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당내 비문(비문재인)계 한 의원은 “친문(친문재인)계가 잔머리를 쓰고 있다가 이런 꼴이 났다”고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추 대표의 ‘비선조직’ 논란이 덮치면서 추 대표의 ‘회군 정치’에 대한 비판이 극에 달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추미애 뒤에 최순실이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추 대표 특보단장인 김민석 전 의원을 지칭한 말이다. 김 전 의원은 박 위원장을 향해 “노회함이 아니고 나쁜 프레임이고 오만이고 결례”라고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야권이 분열한 사이, 박 대통령은 11월 16일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해 가능한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 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전격 지시했다. 내치 이양 가능성을 밝힌 박 대통령이 검찰 권력을 쥔 채 ‘마이웨이’를 외친 것이다.
촛불정국에서 사흘간 롤러코스터를 탄 3개의 승부수 간 연결고리 여부는 속단할 수 없다. 다만 힘과 힘이 맞붙는 구도인 것만은 분명하다. 2012년(18대) 대선에서 맞붙었던 두 주자가 ‘대통령 퇴진’을 놓고 헌정 사상 초유의 대회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역사가 최종적으로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알 수 없다. 이미 문 전 대표는 ‘질 수 없는 선거’로 평가받았던 지난 대선에서 패했다. 11월 12일 박 대통령 퇴진 촉구 제3차 촛불집회에는 1987년 6·10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인 100만 명의 시민들이 광장 정치로 나왔다. 이번에도 질 수 없는 양상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역습이 성공한다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최종전은 안갯속 국면으로 흐른다. 이 지점이 촛불정국의 최대 승부처다.
윤지상 언론인
손학규 조직·인물·자금 ‘삼중고’…‘원맨쇼’로 돌파하나 한때 거국중립내각 총리로 거론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년 만에 전남 강진에서 하산한 손 전 대표는 정계 복귀에 따른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도가 상승세를 타는 현상)는커녕 잇따른 블랙홀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애초 거국중립내각에 머물던 박근혜 대통령 권력 이양 방안이 ‘질서 있는 퇴진’과 ‘하야·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손 전 대표의 활용 가치는 땅으로 떨어졌다. 또한 그가 정계 복귀를 선언한 10월 20일 이후 여의도 정치권에는 이슈 블랙홀 쓰나미가 몰아쳤다. 손 전 대표가 정계 복귀를 선언한 지 나흘 만인 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7공화국 개헌을 전격 제안하더니, 같은 날 종합편성채널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공개로 촉발한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가 정치권을 휩쓸었다. 지난 4·13 총선에서 복귀 타이밍을 놓친 손 전 대표가 이번에는 일찍 테이프를 끊은 셈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정치적 고비마다 손 전 대표를 괴롭힌 타이밍의 유령이 발목을 잡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민주당 비노(비노무현)계 한 의원은 “복귀하자마자 참…”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특히 손 전 대표 탈당 이후 이찬열 무소속 의원만 탈당했을 뿐, 후속 탈당파로 거론된 13명의 의원들은 요지부동이다. 차기 대선 국면에서 손 전 대표의 조직력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 2006년 5월 28일 창립총회를 한 손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차기 대권잠룡들의 정책네트워크 중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지만, 판을 흔드는 것은 현역 의원들이라는 점에서 이 지점이 손 전 대표의 약한 고리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자금난까지 덮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을 탈당한 이 의원이 사비를 털어 손 전 대표를 물밑 지원한다는 후문이다. 10여 년 동안 민주당에 몸을 담은 한 관계자는 “정치에는 조직도 필요하고 인물도 필요하지만, 자금이 없으면 될 것도 안 된다”며 “당을 탈당한 이들이 시베리아 벌판에 나갔다는 것을 많이 느낄 때가 자금이 부족할 때”라고 말했다. 손 전 대표 측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박순성 동국대 교수, 김종희 전 도시환경연구소 대표 등 잔뼈 굵은 명망가들이 포진, 2012년 대선에서 반향을 일으켰던 ‘저녁 있는 삶’에 버금가는 정책 슬로건을 만들며 난국을 돌파한다는 복안이다. 조만간 열릴 예정인 10주년 재단 행사가 손 전 대표의 민생 신호탄이 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그러나 손 전 대표의 대선 가도가 순항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선거 핵심 변수인 ‘조직·인물·자금’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기댈 것은 손 전 대표의 원맨쇼뿐이다. 정계 복귀와 동시에 개헌을 꺼낸 손 전 대표는 ‘촛불 정국’에서도 “박 대통령은 이미 국민에 의해 탄핵당했다”며 날을 세웠다. 100만 명의 시민들이 모인 11월 12일 박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직전에는 박 대통령을 향해 “(당일) 정오까지 결단하라”며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이제 더 이상 길은 없다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라며 중대 결단 카드를 시사했다. 손 전 대표는 11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야 3당 초선 의원들이 주축이 된 ‘따뜻한 미래를 위한 정치기획’(이하 따미정)이 마련한 토론회에 참석, “구체제를 넘어설 강력한 정치혁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이날 예고 없이 손 전 대표를 방문, “조만간 시간을 내주시면 정국 현안에 대해 논의를 좀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손 전 대표는 “그러자”고 말했다. ‘최순실 쓰나미’에다가 ‘조직·인물·자금난’까지 겹친 손 전 대표가 원맨쇼를 통해 난국을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