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이탈층 부동층에 머무르는 데다 ‘박 대통령 법적 혐의 미약’ 판단
지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박 대통령은 본인이 참고인 혹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자신의 측근들 연루 의혹이 돈 부산 엘시티(LCT)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최근 4년간 거의 발을 들이지 않았던 청와대 참모 비서동인 위민관에도 부쩍 모습을 드러냈고,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5주간이나 맡겼던 국무회의도 재개하려는 움직임이다. 외교 행보도 계획 중이라 한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수세는 공세로 바뀌고 궁지에 몰렸던 쥐가 고양이를 물겠다고 돌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진다. 박 대통령의 이런 은근슬쩍 회군에 친박계도 화답하듯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는 비박계 비주류를 향해 연일 맹공으로 전환했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100만 명 촛불집회를 목격하고도 진격의 후퇴를 선언하지 않는 데에는 박 대통령이 줄기차게 외쳐온 ‘법과 원칙’에서 답을 찾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에 대한 국민의 도덕적 잣대에선 박 대통령이 탄핵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지만, 검찰과 법원의 법적 판단에 맡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최근 친박계 중에서도 강성파로 불리는 일부는 자파에 우호적인 정치권 인사들과 면밀히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친박계 한 재선 의원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들려줬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부분은 딱 두 가지야. 하나는 대통령기록물을 외부에 유출했는지고, 하나는 최순실 씨가 재단 모금할 때 관여했는지. 그런데 완성되기도 전인 문서가 대통령기록물이 되겠느냐? 기록물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 또 대통령기록물에도 등급이 있어요. 또 그동안 박 대통령은 재단은 문화와 스포츠 분야의 창조경제를 위한 선의에서 독려를 했다고 했어요.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얘긴데 우리 대통령이라면 정말 그런 사람 아니겠습니까.”
친박계는 이렇게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떼어놓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박 대통령에게 적용될 법적 혐의는 미약할 것으로 본다. 강공으로 나가는 첫번째 이유가 이렇다.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단단한 공조체제로 묶여 정권교체에 열 올릴 것 같았던 야권이 비실대고 있다는 것이 손꼽힌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제안해 박 대통령이 즉각 수락했음에도 자당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일자 몇 시간 만에 ‘셀프취소’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국민의당은 청와대·민주당 영수회담에는 반대하다 청·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영수회담을 재제안했다. 엘씨티 비리 의혹 관련 사건에 야당 의원들의 연루설이 퍼지고, 거국중립내각 구성의 첫 단추인 책임총리 추천도 꿰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반감여론이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지만 보수 이탈층이 야당으로 옮겨가지 않고 부동층에 머무르고 있다는 여론조사 분석결과가 나오고 있다.
친박계는 “우리가 싫어도 저쪽으로 붙지 않겠다는 층은 우리가 잘하면 언제든 돌아온다”고 믿기 시작했다. 이정현 대표가 기자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은 앞으로 잘하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김진태 의원이 “촛불은 바람 앞에 꺼진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지지율이 빠지는데도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나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의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겠다(2선 후퇴), 혹은 직을 내려놓겠다(하야 혹은 사임)고 선언하지 않는다면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탄핵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탄핵의 함정’을 간파했다는 관측도 배제할 수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를 중심으로 최측근인 김성태 의원까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탄핵 절차”라고 주장했지만 동력이 실리지 않는다. 왜일까. 정치권에 따르면, 탄핵되기까지는 최장 360일, 즉 1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탄핵절차를 밟게 되면 임기를 거의 채우게 돼 “박 대통령과 친박계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1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특검수사 기간만 120일이다. 헌법재판소의 심리과정이 최장 180일이고 탄핵된다면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한다. 박 대통령이 임기를 거의 다 채우는 시간이다.
게다가 탄핵정국으로 흐를 경우엔 보수층에서 이탈해 유보층에 머무르고 있는 정통 보수층이 재결집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어버이연합 등 강경 시위파와 일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력이 현 정부에 우호적이다. 앞서의 친박계 의원이 지적했듯 법률적으로만 판단한다면 헌재가 탄핵을 심판할지도 장담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도 친박계도 법적 면죄부를 받게 되는 셈이다.
친박계가 이렇듯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박 대통령 보호하기에 나설 수 있는 것에는 큰 꿈을 포기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꽤 설득적으로 들린다. 즉 먼발치의 ‘정권재창출’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인 수를 놓기보다는, 당장 박 대통령이 핵심적인 권한을 내려놓지 않는 방법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여권 대선주자들에 대한 품평을 통해 힘을 빼놓는 것이고, 당내 의원들만의 총의로 구성되는 비상대책위원회보다는 당원과 대의원 등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조기 전당대회로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를 증명하듯, 이정현 대표는 최근 자신의 사퇴를 주장하는 여권 잠룡들을 향해 “지지율 10%도 되지 않는 분들은 대권주자란 말도 쓰지 말고 대권주자에서 사퇴하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장우 최고위원은 지난 총선 옥쇄파동을 꺼내들며 “당의 위기를 좌초한 김무성 전 대표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완전 막장으로 치달아 탄핵을 끌어내려는 속셈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풀이한다.
게다가 최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선 4선 이상 친박계가 총집결해 현 지도부에 힘을 실었다. 이를 지켜 본 여권 관계자는 “만약 이주영 의원이나 정우택 의원 등을 택해 단일 후보로 내세운다면 조기 전당대회도 친박계의 승산이 있다”고 했다.
만약 현 지도부가 밝힌대로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던 규정을 고쳐 당권주자도 대권행이 가능토록 하면 비박계에서 다수 후보가 전대에 나설 것이고 그렇다면 표 분산이 이뤄져 친박계가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당원과 대의원도 정당일체감이 큰 충성당원보다 국회의원 저마다 자기 사람을 심은 지역구 의원 충성도가 더 높다는 것이다.
최근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TK지역 의원들을 긴급 소집한 자리에서 “보수의 본류인 대구경북이 똘똘 뭉쳐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내야 한다. 탈당은 말이 안 된다”는 취지로 단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정치권은 검찰 수사가 변수라고 입을 모은다. 매일 쏟아지는 최순실 사태 관련자들의 진술은 검찰의 송곳수사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빈수레가 요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던가 하는 기대반 우려반도 상존한다. 검찰 출신인 새누리당 한 의원은 “왜 검찰을 영혼없는 조직이라고 하겠는가. 수사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정필 언론인
비박계, 배 흔들리는 데 ‘자리 욕심’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수렁에 빠진 새누리당. 이에 비박계 비주류는 집권여당의 동반몰락을 막기 위해 분투 중이지만 선장이 많아 배가 움직이지 않는 형국에 놓여있다. 친박계 일색인 현 지도부가 물러나면 강력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당을 정비하고 조기 선거대책위원회로 전환해 대선을 준비한다는 시간표를 세웠다지만, 선장 중에도 인지도나 지지도가 도드라지는 돋보이는 자가 없고 그래서 저들을 믿고 따라가도 되느냐는 비박계의 푸념도 결코 적지 않다. 비박계가 뭉쳐 내놓은 비상시국위원회 공동대표단 12인은 대권주자 6명, 당권주자 6명으로 뭉쳐 있다. 잠룡급에선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전 원내대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참여했다. 원내에선 5선의 심재철 국회부의장과 정병국 의원, 4선의 김재경, 나경원, 주호영 의원, 그리고 3선의 강석호 전 최고위원이 선임됐다. 간사나 위원장은 없다. 문제는 이들 중 다수가 비대위원장에 관심이 있다는데 있다. 위기가 곧 기회인 현 정국에서 비대위원장으로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증명할 경우 단숨에 대권가도에, 혹은 당권가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위한 책임총리를 야당과 협의해 추천하고,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폐단을 해소할 개헌 논의에 나서면서, 사태 수습을 위한 집권여당의 합리적 방안을 내놓는다면 “18대 대선 당시 51%의 정통 보수층을 재결집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여권 관계자)는 기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박명재 당 사무총장은 김 전 대표에게 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아줄 것은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김 전 대표는 맡은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지만 그렇다고 다른 인물을 추대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게다가 김 전 지사의 경우엔 운동권이었던 학창 시절의 경험에다 국회의원, 단체장의 경험, 낙선의 스토리까지가 비대위원장감이란 얘기를 주변부에서 흘리고 있다. 당장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오 전 시장도 마찬가지다. 남 지사와 원 지사가 사석에서 “비대위원장으로는 유 전 원내대표가 적합하다”고 입을 모았다지만 다들 마음이 콩밭에 있으니 힘이 실리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보좌 문제 등에 대해 꾸준히 직언을 해오면서 친박과 멀어진 유 전 원내대표도 이렇다 할 움직임이나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 하지만 당권주자들 중 지난 8·9전당대회에서 탈락한 주 의원이 비대위원장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들린다. 김 전 대표가 주 의원을 밀고 있다는 설도 있다. 이정현 대표에 이은 2위로 당대표 경선에서 탈락한 그가 이 대표 후임의 비대위원장으로 추대 가능하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주 의원과 당시 후보단일화를 이룬 정 의원도, 원내대표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나 의원도 비대위원장에 욕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위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인 비상시국위원회 멤버가 다들 자리 욕심을 내면서 이해관계가 부딪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현 지도부 총사퇴라는 희생을 강요하려면, 비박계 대권주자나 당권주자들도 백의종군을 택해 똑같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신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 강력한 리더를 옹립해야만 탈당이든 재창당이든 함께 갈 초·재선 의원들이 늘어날 것이란 주문이 나오고 있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