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관계자 “삼성이 보낸 돈 최순실 주머니로…올림픽 메달보단 뒷돈 챙기기 목적“
한국마사회가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를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진위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좌),한겨레(우)
김현권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로드맵에 대해 “정유라 씨를 피겨의 김연아, 골프의 박세리처럼 만들기 위해 608억 원을 투입하는 지원방안”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실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로드맵 추진 배경에 ‘승마의 국민적 우상(예: 골프 박세리, 피겨 김연아) 탄생을 적극 원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명시돼 있다. 또 정 씨가 출전하는 마장마술 부문 예산 186억 원은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고 있는 삼성이 담당하고, 장애물 부문 예산 160억 원은 마사회가 담당하는 것으로 돼 있다.
김 의원은 정 씨의 승마훈련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독일에 파견됐던 박재홍 전 마사회 승마단 감독의 내부증언을, ‘정유라 영웅 만들기’ 실체를 파헤칠 핵심 증거로 꼽았다. 실제 <일요신문>이 김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박 전 감독과 체육계 인사 간의 대화 녹취록에 따르면, 로드맵은 모두 정유라 씨를 위한 것이었다는 증언이 잇따른다. 로드맵이 승마 훈련보다 최 씨 모녀의 ‘뒷돈 챙기기’에 무게가 실렸음을 뒷받침하는 증언도 있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박 감독이 독일에 파견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박 감독은 지난해 8월 20일 독일 하겐에서 올림픽 선발전을 치르고 식사 자리에서 박상진(삼성전자 사장) 승마협회 회장, 황성수 부회장(삼성전자 전무), 전무, 경기이사 등 임원들을 만났다. 회장사가 한화에서 삼성으로 바뀐 뒤 박 감독이 임원들을 처음 만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은 박 감독에게 “너무 너무 고생했다. 다음엔 장애물 팀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이후 박 감독이 마사회로부터 부여된 임무는 도쿄올림픽 준비단 단장이었다. 박 감독은 녹취록에서 “원래 독일에서 4년 있을 계획으로 갔으며 월급은 마사회가 지급하고 독일에 가면 삼성과 계약한 스포츠마케팅 회사에서 제반 경비, 즉 숙박비+알파를 지불할 계획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이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된다. 박 전 감독은 “승마장에 갔더니 비어 있더라. 그런데 거기에 유연(정유라 개명 전 이름)이가 썼던 방이 있었다. 집안에서 썩은 내가 났다. 개 냄새로 엉망이었다. 시리아 애들 불러서 청소를 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말 한 마리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2개월 반 동안 있었다”고 밝혔다. 박 전 감독은 침대와 가구, 세탁기 등을 코어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서 쓰라고 준 카드로 샀다. 박 전 감독은 그 비용이 삼성이 돈을 보내고 코어스포츠가 집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집행이 안 돼 중간에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박 전 감독은 “코어스포츠 직원들에게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답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삼성이 보낸 돈을 최순실이 먹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결국 박 전 감독은 독일로 건너간 지 2개월 반 만인 올해 1월 귀국했다.
박 전 감독은 로드맵이 결국에는 정 씨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증언도 했다. 정 씨 종목인 마장마술이 아닌 장애물 종목에 박 전 감독을 보낸 것도 정 씨를 지원하기 위한 명분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박 전 감독은 “승마협회도 어쨌든 간에 1명에게는 지원을 못하니 장애물, 종합마술 종목과 어우러져 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장애물 선수를 선발했는 데도 다 안 된다고 그랬다. 알고 보니 코어스포츠가 퇴짜를 놓고 있었던 것”이라며 “애초에 보낼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과연 정 씨는 로드맵이 제시한 대로 ‘제2의 김연아’가 될 수 있었을까. 박 전 감독은 녹취록에서 정 씨의 훈련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박 전 감독은 “(올림픽 출전을 위해) 훈련한다면 가랑이에 피가 나게 말을 타야 하는데 정 씨는 말에 살짝 올랐다 내려오기만 했다”며 “열심히 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유라 씨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이 현명관 마사회장과 최순실 씨의 합작품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박 전 감독은 녹취록에서 “현명관 회장은 100% 알고 있었다. 중장기 로드맵 쭉 읽어보니까 더 느껴진다. 100% 자기들끼리 다 연결됐구나. (로드맵)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또 박 전 감독은 “내가 1월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엎고 안 들어왔다면 마사회는 코어스포츠에 계속 돈을 보냈을 것이다. 중장기 로드맵에 마사회 자체도 돈을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내가 두드려 깨놓고 나오니까 그게 안 된 거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박 전 감독이 1월 중도하차하면서 사실상 정유라 지원 계획이 실행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현 회장의 부인 전영해 씨의 증언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김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증언은 전 씨가 의원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밝힌 내용이다. 김 의원실이 확보한 전 씨 증언에 따르면 어느 날 현 회장이 “우리나라도 승마 메달을 딸 때가 됐지 않나”라고 얘기했다. 이에 당시 마사회 산하 승마진흥원 안계명 원장은 “제가 만들어 보겠습니다”라며 만들었는데 현 회장이 그걸 보고 ‘이거 돈이 너무 많이 들잖아’라고 이야기해 그 서류는 폐기됐다. 이후 승마협회가 “우리도 그런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파일을 보내줄 수 없느냐”고 말했고, 안 원장이 승마협회에 파일을 전달했다.
김 의원은 전 씨와 박 씨 증언 외에도 ‘로드맵’ 한글파일의 문서정보에서 초기 작성자가 마사회(KRA)로 명시돼 있는 것을 밝히고, 마사회가 로드맵을 만들어 승마협회로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이에 마사회 측과 김 의원실에 로드맵 관련 증언을 한 전 씨는 즉각 입장을 내놓았다. 마사회 관계자는 “마사회는 (박 전 감독의 독일 파견 근거가 되었던) 중장기 로드맵과 관련해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금번 검찰 수사를 통해 기관에 대한 의혹들이 깨끗하게 해소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향후 수사에 적극 협조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또 박 전 감독이 증언한 부분에 대해서는 “박 전 감독이 주장한 ‘마사회가 돈을 보내려 마음먹고 있었다’는 부분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며, 이와 관련해 11월 10일 박 전 감독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전 씨도 김 의원이 인용한 자신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전 씨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현권 의원실 보좌관과 얘기하며 내가 말한 게 다 맞을 수 없고 대충대충 들어 전달했을 뿐, 사실인지 아닌지는 마사회에 확인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liyo.co.kr
‘중졸 위기’ 정유라, 이와중에 덴마크서 승마대회 출전 시도 한국마사회와 삼성이 나서 정유라 씨의 ‘국민영웅 만들기’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정 씨는 현재 ‘중졸’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6일 정 씨의 출신 중고등학교에 대한 특정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정 씨가 무단결석 하고도 출석으로 처리된 날짜는 고교 3년간 최소 37일이었다. 또 고 3때는 학교에 17일밖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정유라 씨의 고등학교 졸업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씨에 대한 고교 졸업을 서울시교육청이 사실상 취소하기로 하면서 정 씨의 이화여대 ‘입학취소’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렇게 되면, 정 씨의 최종 학력은 ‘중졸’이 된다. 10월 17일 덴마크 오덴세 마장마술 국제대회 최종엔트리에 정유라 이름이 올라와 있다. 사진출처=세계승마연맹(FEI) 홈페이지 캡처 이런 와중에 정 씨가 지난달 덴마크에서 개최된 승마대회에 출전하려고 했던 정황이 포착돼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당시는 이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의혹과 함께 정 씨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 의혹까지 일파만파로 퍼진 상황이었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정 씨는 지난달 20일을 전후해 덴마크 오덴세 지역에 머무르며 나흘간 개최된 국제승마연맹(FEI) 주관 마장마술대회에 출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회 직전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 문제와 함께 자신의 학사 특혜 파문이 증폭돼 참가 계획을 급하게 취소했다. 실제 FEI 홈페이지에 있는 오덴세 마장마술 대회(CDI2) 출전 최종 확정 엔트리에도 정 씨와 그의 말 ‘라우징1233(Rausing1233)’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최종 엔트리가 공개된 시점이 대회 나흘 전인 지난달 17일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정 씨는 최소 그때까지는 대회에 출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