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뇌물죄로 법정에 섰던 노태우 대통령보다 분노의 불길은 더 세차게 타오르고 있다. 그 시절 노태우 대통령은 재벌 회장들을 만났다. 핵심 측근들이 부지런히 재벌을 털어 돈을 챙겼다. 재임 중 5000억 원가량 받았고 사용하고 남은 돈 1700억 원을 은밀히 분산해 예치해 놓았다가 발각되었다. 당시 죄수복을 입은 대통령이 법정에서 뭐라고 했을까? 재벌회장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써달라고 했고 그게 관례인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이권에 관해 어떤 영향력을 미친 적은 절대 없다고 항변했다.
권력의 옷을 벗은 대통령에 대해 재벌 회장들은 돈을 준 이유를 뭐라고 말했을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권력이 부당하게 손해를 끼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돈을 주었다고 했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유독 대우만 무성의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돈을 가져다 주었다고 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다른 그룹이 모두 돈을 가져다주는데 현대만 내지 않을 경우 미움을 받을까봐 돈을 냈다고 진술했다. 권력에 대한 공포가 뒤에 있었다. 대림산업의 이준용 회장은 구태여 변명하지 않겠다면서 해군기지공사를 수주하고 대통령측근을 통해 50억을 제공했다고 털어놓았다. 신동아그룹의 최원석 회장은 국책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돈을 주었다고 했다. 한보의 정태수 회장은 수서택지개발의 특별 분양을 얘기했다.
당시 대법원은 ‘대통령은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권한을 가지고 기업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전제했다. 따라서 대통령이 영향력을 미쳤는지에 상관없이 금품을 받는 순간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어떨까. 그때와 기본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아직 현실의 권력일 뿐이다. 미르재단에 지원이 필요했다면 정부예산으로 했어야 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는 경제수석이 돈을 뜯은 행태는 거의 공갈수준으로 보인다. 앞으로 야권이 추천한 특별검사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죄로 철저히 수사할 것이다. 실제로 최소한 징역 5년 이상이 선고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사면도 기대하기 어렵다. 정권이 야권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월권을 불러일으킨 정유라도 다시 의무교육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진보성향 교육감이 철저히 감사할 것이다. 자칫하면 대학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시절의 출석일수 문제로 자격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그런 현실을 아는지 의문이다. 박근혜의 머릿속에 담긴 대통령은 어떤 존재일까? 무속에 세뇌당한 대통령의 영혼은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만들어보려고 하던 대한민국이 있기는 있던 것일까.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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