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그네‘ 관련 ’.kr’ ‘.com’ 등 한글, 영문 도메인 닥치고 사들여 눈길
출처= 도메인 등록사이트 후이즈 캡처 사진
후이즈(whois.co.kr)는 일정 비용을 내고 등록을 신청하면 도메인을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다. 11월 30일 후이즈 검색창에 ‘닭그네’를 입력했다. 닭그네.닷넷, 닭그네.com 등 한글 도메인 20개가 등장했다. ‘닭그네’라는 표현이 들어간 도메인 중 등록 가능한 도메인은 13개뿐이었다. 나머지 6개는 누군가 이미 등록을 마쳤기 때문에 등록불가 표시가 나타났다.
‘등록불가’가 나타난 도메인 중 하나인 닭그네.kr의 정보를 재차 검색하자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닭그네.kr의 등록인은 대통령 비서실, 등록 책임자의 전자 우편은 postmaster@president.go.kr였다. 청와대가 닭그네.kr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청와대는 2014년 5월 16일 닭그네.kr를 포함해 닭그네.com, 등 3개의 도메인을 등록했다. ‘닭그네’는 박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단어인 ‘닭’과 ‘그네’가 결합된 은어다. 누리꾼들사이에선 박 대통령의 비하 표현으로 통한다.
MB 정부 때도 비슷한 일은 있었다. 2011년 8월 12일 작가 이성국 씨는 트위터를 통해 청와대가 쥐박이.com, 명박이.kr 등과 같은 도메인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쥐박이’와 ‘명박이’는 앞서 ‘닭그네’처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11월 30일 현재 쥐박이, 명박이 관련 도메인들은 누구나 구입 가능하다. MB 정부가 도메인의 등록기간을 연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차이는 구입 시기다. MB 정부는 임기 말인 5년차에 도메인 구입에 나섰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임기내내 꾸준히 도메인을 구입했고 ‘타이밍’ 역시 절묘(?)했다. 청와대가 닭그네.kr을 구입한 날짜는 2014년 5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민심이 들끓었던 때다.
당시 해경은 실종자 수색에 속도를 내지 못했고 검찰의 구원파에 대한 수사는 진척이 없었다. 국민들은 ‘세월호 트라우마’에 신음하고 있었고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공식화했다. 대내외적으로 정부를 향한 비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청와대가 박 대통령에 대한 안티성 도메인들을 구입한 것이다. 일각에선 “안티 도메인을 구입해 비난 여론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 까닭이다.
청와대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도메인을 ‘사재기’했다. 한글 도메인뿐만 아니라 영문 도메인도 구입했다. 2013년 3월 11일 청와대는 도메인 antiparkgeunhye.net을 구입했다. antiparkgeunhye.net의 등록자는 Office of the President, 등록자의 주소는 ‘종로구 청와대로1’이다. ‘antiparkgeunhye’ 역시 박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영문 표현이다. 11월 30일 기준으로 antiparkgeunhye.net, antiparkgeunhye.co.kr 등 수십개의 영문 도메인의 등록자는 청와대다.
청와대는 안티성 영문 도메인의 경우 알파벳 철자 하나하나마다 도메인으로 등록했다. antiparkgeunhye, antibakgeunhye, antigeunhyepark, antiparkgh 등 박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지칭할 수 있는 모든 영문 도메인들을 구입했다. 영문 도메인 대부분은 2013년 3월 11일 등록됐다. 박 대통령의 취임일(2013년 2월 25일) 뒤 약 2주가 지난 시점이다. 대통령비서실이 보유한 도메인 목록이 있는 domainbigdata.com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청와대는 2013년 3월 11일antigeunhyepark.com 등 수십개의 영문 도메인들을 등록했다.
올해 구입한 도메인도 발견됐다. 8월 12일 청와대는 ‘닭그네.닷컴’, ‘닭그네.닷넷’, ‘antiparkgeunhye.닷컴’을 구입했다. 후이즈 관계자는 “8월부터 영문 도메인을 한글 도메인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기존에 영문 도메인을 보유한 사용자에게 우선권을 제공했는데 청와대 비서실이 우선권을 주자마자 구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8월 12일 전후에는 폭염이 전국을 강타한 시기다. 누진제를 성토하는 여론이 급증한 시기였다.
문제는 청와대의 도메인 구입에 국민들의 ‘세금’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후이즈에 따르면 도메인 하나의 등록비용은 1년에 2만 8600원, 3년간 사용하면 15% 할인을 적용받아 7만 3200원이다.
2013년 3월 11일에 등록된 antipark-geunhye.com 등 대다수 도메인의 만료 날짜는 2017년 3월 11일이다. 청와대가 해마다 도메인 등록기간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갱신을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취임 초기, 세월호 참사 직후, 8월에 확보한 도메인들의 구입비용을 전부 합산한다면 최소 수백만 원의 예산이 소요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청와대는 안티성 도메인들을 빈 공간으로 방치한 상태다.
‘미스터리’한 것은 청와대가 보유한 안티성 도메인들이 최근에 ‘업데이트’됐다는 사실이다. 닭그네.kr, antiparkgeunhye.com 등 일부 도메인들의 최근 정보 변경일은 2016년 11월 24일. 전날인 23일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며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탈당을 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정치권에 불어닥친 시기에 정보 변경이 이루어진 것이다. 후이즈 관계자는 “등록자가 도메인을 연장하거나 Name서버를 바꾸거나, 등록정보를 변경한 최근 날짜를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등록자가 무엇을 바꿨는지 우리쪽에서 확인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도메인을 보유하고 있는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는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해명했다. 후이즈의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 나름대로 대통령 개인의 브랜드 관리를 하는 것 아니겠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비서실 차원에서 도메인을 관리하고 다.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도메인들은 수가 많고 등록 기간도 오래됐다”고 했다.
시민들은 청와대의 도메인 구입 행보를 성토하고 있다. 직장인 이 아무개 씨는 “정말 열이 받는다. 이런 꼴을 보려고 세금 냈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곽 아무개 씨는 “안타깝다. 비판을 틀어막을 노력의 100만 분의 1이라도 비판을 들으려는 노력을 했다면 이 지경은 안 됐을 것이다”고 비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론 조작용”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청와대가 여론을 방어하기 수단으로 도메인을 구입한 것이다. 정상적으로 형성된 여론은 정부에 압력을 가할 수 있고 정부는 이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식으로 여론을 인위적으로 조작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웹 전문가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웹 디자이너는 “한심한 행태다. 도메인이 홍보 목적도 아닌 것 같은데 혈세를 낭비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도메인을 방치하는 것은 졸렬한 모습같다. 설사 홍보 목적이라고 해도 국가기관은 보통 웹 에이전시를 이용한다. 기관이 다수의 도메인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비판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