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열리는 동안 대통령은 내실에만 머물러”
최순실 게이트 항의시위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청와대 관저는 대통령이 거주하는 은밀한 곳이다. 관저 중 대식당이 있는 외실은 비교적 공적인 공간에 속하지만 침실과 서재가 자리 잡은 내실은 대통령 내외만 사용한다. 관저는 부속실에서 관리한다. 역대 정권 부속실장들을 대통령 집사라고 불렀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이 여성이었다는 점 때문에 현 정부 들어 관저엔 부속실 소속 몇몇 관계자들만이 드나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퇴근 후 관저에서 주로 개인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관저 집무실에서 업무를 봤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직 청와대 직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관저는 사택 개념이다. 왜 근무시간에 본관 집무실이 아닌 집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출근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관계자 역시 “관저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세월호 참사 같은 급한 일이 생기면 당연히 본관이나 지하 벙커로 왔어야 했다. 계속 관저에 머물렀다는 해명은 억지”라고 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집무실이 본관, 비서동, 관저, 영빈관에 산재해 있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해도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른다. 부속실이나 알까. 내가 관저에 가도 대통령 침실인 안방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박 대통령이 무슨 시술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선 난 대통령 말을 믿고 확신하고 있지만 사실 그걸 물어볼 수가 없었다. 여성 대통령이라. 그런 걸 묻는 건 결례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관저는 청와대 대다수 직원들이 접근하기조차 힘든 장소임엔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일요신문>이 접촉한 복수의 부속실 관계자는 여기에 예외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바로 최순실 씨였다. 최 씨는 별다른 제지 없이 관저를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는 부속실 내부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부속실 전직 관계자는 “최 씨가 박 대통령을 친언니처럼 편하게 대했다. 당시엔 별다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 귀띔했다.
최 씨는 대부분 자신의 차를 직접 몰고 와 청와대 경내로 들어왔고, 이 과정에서 별다른 검문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부속실 전직 관계자는 “청와대의 한 행정관이 최 씨와 동행했다. 최 씨를 관저 앞까지 모시고 오는 것으로 보였다. 대기하고 있다가 다시 최 씨를 청와대 밖으로 다시 데리고 나갔다”라고 귀띔했다. 여기서 언급된 행정관은 박 대통령과 최 씨 간 ‘연락 업무’를 맡은 것으로 지목받은 인물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이미 검찰 조사를 받았다.
흥미로운 부분은 최 씨가 관저로 들어오면 문고리 3인방인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도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들은 관저로 방문한 최 씨와 함께 거의 매주 일요일 모임을 갖고 여러 현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무런 권한과 직책을 갖고 있지 않은 최 씨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핵심 실세 참모들과, 그것도 청와대의 가장 은밀한 곳에서 국정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물론 박 대통령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다른 부속실 관계자의 말이다.
“(최 씨와 문고리 3인방은) 박 대통령에게 인사를 한 뒤 외실의 대식당 옆에 위치한 회의실에서 2~3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참석한 모습은 본 적이 없다. 회의가 열리는 동안 박 대통령은 대부분 내실에서 머물렀다. 회의가 끝나면 최 씨는 박 대통령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거나 잠시 머물렀는데 3인방은 박 대통령을 보지 않고 그냥 갔다. 이를 지켜보면서 3인방이 박 대통령이 아닌 최 씨를 만나기 위해 관저로 온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최 씨와 3인방은 매주 일요일 대통령 관저에서 만나 무엇을 했을까. 절차상의 하자는 차치하고서라도 대통령과 가까운 최 씨가 관저를 드나들며 참모들과 단지 만남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법적 또는 탄핵의 이유로까지 삼을 순 없을 듯하다. 역대 대통령들 역시 관저에 친한 지인을 불러 만나곤 했다. 사생활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 씨와 3인방 간 만남의 성격을 꼼꼼히 짚어보는 일이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우선 앞서의 부속실 전·현 관계자는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최순실 의혹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은 최 씨와 3인방 간 만남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팀 관계자는 “청와대 압수수색 자료, 정호성 전 비서관 휴대폰 녹음 파일, 최순실 씨 진술 등을 통해서 우리도 매주 일요일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파악했다”면서도 “뇌물죄나 공문서유출, 직권남용 등과는 달리 수사를 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대통령 관저에서 벌어진 은밀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특검 또는 정치적으로 규명될 사안”이라고 귀띔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씨와 3인방은 매주 일요일 주요 국정 현안들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주로 3인방이 각 부처 또는 수석실 등에서 올라온 보고서 중 일부를 최 씨에게 건넸고, 이에 대해 최 씨가 의견을 제시한 증거들이 포착됐다. 최 씨가 대통령을 등에 업고 단순히 사적인 이득을 취했을 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점칠 수 있는 정황이다.
앞서의 수사팀 관계자는 “최 씨와 3인방 행동도 믿기 어려웠지만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박 대통령 모습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는 수사에 관여한 검사와 수사관들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최 씨가 3인방과 함께 국정을 논의했지만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서 나온 결과들을 국정에 반영하거나 국무회의에서 지시했다는 흔적도 나왔다. 최 씨와 3인방 간 회의가 사실상 국정의 최고 의결기구나 다름없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