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손 잡으면 태풍
▲ 이회창. | ||
지금까지 이 전 총재의 출마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한나라당도 적극적으로 태도를 바꿨다. 그동안 이 후보 캠프에서는 ‘오히려 가만히 있는 분을 자극할 수 있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지만 지난 1일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은 ‘2002년 차떼기 대선자금을 공개하라’며 이 전 총재를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이 전 총재의 출마를 기정사실로 하고 결국 ‘정면 돌파’를 선택한 모양새다.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설은 BBK 의혹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형국이다. 장고 끝에 결국은 출마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수그러들고 한나라당을 탈당, 국민중심당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 전 총재가 뒤늦게 출마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추적해 보았다.
“이회창 전 총재가 경선 후에 이명박 후보 측에 권유했던 당화합의 메시지와 대북정책의 수정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졌다면 이 전 총재는 출마를 고민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최측근인 이흥주 특보는 지난달 31일 기자와 만나 출마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특보는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강재섭 대표에게 수시로 서신 등을 보내 ‘당내 경선이 지나치게 네거티브로 흘러 후보들 흠집 내기만 되고 있어 경선 후 본선까지 가는 과정에서 당이 총체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며 “경선 후에도 ‘박 전 대표 측과 화합을 잘 이루는 것만이 본선에서 승리하는 길이다’라고 알렸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특보에 따르면 이 전 총재는 이명박 후보(MB)의 정책노선에도 불신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이 전 총재는 자신이 패배함으로 인해 좌파 정권이 들어서고 국가의 총체적 어려움이 야기됐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자신이 좌파 정권을 방치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자책감이 상당히 강하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어떻게든 보수 우파로의 정권 재창출을 이뤄야 하는데 현재 MB 측이 지향하는 정책노선이 이도저도 아닌 중도적 성향이라는 점이 이 전 총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며 결국 MB가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이 전 총재가 한나라당을 창당하면서 생각했던 목표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특보의 말을 종합하면 이 전 총재가 출마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경선 후 박 전 대표를 포용하지 못했다는 점’과 ‘MB의 정체성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 전 총재의 핵심측근이었던 서상목 전 의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는 네거티브가 주를 이루고 있고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의 신변보호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 우파진영 예비후보론을 주장했다. 서 전 의원은 “대선후보 등록 후 선거 기간 중 무슨 일이 발생하면 그 정당은 후보 없이 선거를 치르게 된다”며 “그런 불안감 때문에 많은 분들이 복수 후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래야 이명박 후보를 보호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전 의원은 그러나 “이 전 총재가 출마한다면 당연히 마지막에 단일화가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파진영이 적전 분열되는 것”이라고 했다.
정계에서는 또 이 전 총재가 출마를 고려하는 배경에 명예회복론도 포함돼 있다고 보고 있다. MB 측이 자신을 무시하며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해온데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으며 당선까진 몰라도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MB의 대북관을 문제 삼은 ‘진정한 보수 대통령’ 슬로건도 하나의 명분이라는 분석이다.
▲ 이회창 출마설로 여론이 출렁이면서 이명박 후보 측에 비상이 걸렸다. | ||
이 전 총재의 출마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지금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강경기조다. 한나라당 대선 선거대책본부장인 이방호 사무총장이 1일 2002년 대선자금 문제를 정조준하고 나선 것은 전면전 선언과 다름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 총장은 “이 전 총재가 ‘차떼기’ 의혹의 죄인이라는 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국민과 당원에게 지은 죄에 대해 언제 사면을 받았는지 대답을 해야 한다”며 “만약 출마하려는 계획이 있으면 하루빨리 떳떳하게 밝히고 정치를 하라”고 몰아세웠다. 이 총장은 “대선 48일을 앞두고 모든 당원이 이명박 후보를 중심으로 앞만 보며 가고 있는 이 엄숙한 순간에 이 전 총재의 태도와 행동은 국민의 가슴에 우울한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총장이 한나라당에게도 아킬레스건인 ‘차떼기 대선자금’이라는 ‘핵폭탄’을 터뜨린 것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만만치 않게 높게 나타난 것이나 김경준 씨의 귀국으로 인한 BBK 의혹의 쟁점화 등으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가고 있는 현 상황이 절박하다는 반증이라는 해석도 있다.
MB 측은 이 전 총재가 출마하더라도 자신 있다며 이 전 총재의 회동 계획과 향후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간단치는 않다는 점을 MB 측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 전 총재의 출마설과 관련 MB 측의 시선은 자연히 박근혜 전 대표에게 쏠리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가장 불안해하는 점은 이 전 총재와 박 전 대표의 연대다. 이 전 총재의 측근들은 이 전 총재가 출마를 저울질하는 이유 중 하나로 ‘MB가 박 전 대표를 제대로 포용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이 이 전 총재의 출마를 부추기고 있다”라거나 “박 전 대표 측이 이 전 총재의 출마를 부탁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일부에서는 이 전 총재의 뒤에서 그의 출마를 권유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친박 인사들로 서청원·홍사덕·강삼재 전 의원 등의 실명도 거론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을 이미 지난 경선 과정에서 충분히 경험한 만큼 이 전 총재와 박 전 대표가 손을 잡는 것만은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MB 측은 최근 박 전 대표 측에 대한 포용작업에 나서 하나 남아있던 최고위원 자리를 박 전 대표의 추천을 받아 친박인사인 김무성 의원에게 주는가 하면 당사에 박 전 대표의 개인 사무실을 꾸릴 계획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