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사진으로 신분증 위조…통신 장비로 정답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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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시험장. 사진은 기사내용과 상관없음. 사진제공=한국토익위원회
[일요신문] 공정하게 치러져야 할 외국어 능력시험에 또 다시 구멍이 뚫렸다.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이가 대리 시험을 봐주거나 같은 시험을 동시에 보며 답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부정행위가 이뤄졌다. 부정행위를 주도한 인물은 시험 응시자 본인 확인에 필요한 신분증의 위조까지 지시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지난 12일 제주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외국어 능력시험에 대리 응시해 높은 점수를 받아주는 대가로 돈을 챙긴 대학생 이 아무개 씨(30)를 업무방해 및 주민등록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이 씨에게 돈을 주고 대리시험을 맡긴 강 아무개 씨(33)등 27명은 불구속으로 입건됐다. 이 씨가 이들로부터 벌어들인 수입은 약 1억 2000만 원이었다.
지난 2012년에도 토익 부정시험이 적발돼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사건은 부정시험에 많은 인력이 투입된 비교적 대규모 범행이었다. 옷소매 끝에 부착된 카메라로 시험지를 촬영하면 본부에서 문제를 풀어 의뢰자에게 답을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의뢰자는 외관상 보이지 않는 초소형 고막 이어폰을 통해 정답을 들었다. 하지만 이 씨는 이와 달리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결했다.
미국 유학 경험으로 영어에 자신이 있던 이 씨가 대리 응시한 시험은 토익, 토플, 텝스, 오픽 등 다양했다. OMR 카드에 답안을 체크하는 토익이나 텝스뿐만 아니라 마이크에 목소리를 녹음하는 말하기 시험이 포함된 토플과 오픽도 대리시험이 이뤄졌다.
이 씨가 의뢰자들로부터 받은 금액은 최소 130만 원에서 600만 원까지 다양했다. 그는 대기업 직원의 경우 금액을 높여 부르는 등 의뢰자의 경제 상황에 따라 돈을 차등적으로 받았다. 이 씨는 사이버 도박을 하며 생긴 사채를 갚기 위해 범행을 저질러 돈을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씨는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대리시험 희망자를 모집했다. 어플리케이션 내 게시판 등에 대리시험 광고를 올리고 의뢰자와 개별 연락을 취했다. 그는 의뢰자들과 연락을 할 때도 대포폰을 사용했으며 보안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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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시험 의뢰자와 이 아무개 씨 간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 사진제공=제주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그는 연락을 취해오는 의뢰자들에게 그들과 자신의 사진을 합성해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도록 주문했다. 합성된 사진이 박힌 신분증을 들고 자신이 직접 시험을 보러가기 위해서였다.
여성 의뢰자의 경우에는 통신 장비를 이용했다. 이 씨는 여성과 동시에 어학 시험을 치르며 통신 장비를 통해 의뢰자에게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 답을 알려줬다.
이 씨는 신호 송신기를 자신의 옷 속에 감추고 답이 1번일 경우 신호 1회, 2번일 경우 신호 2회를 보내는 방식을 이용했다. 의뢰자는 신호를 받으면 미세한 진동이 울리는 수신기를 허벅지 등에 부착해 이 씨로부터 신호를 받았다. 신호를 통해 답을 알려주기 어려운 말하기 시험은 본인이 직접 시험을 치를 수 있는 남성들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외에도 부정행위로 적발되지 않기 위한 이 씨의 노력은 치밀했다. 토익 시험은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답안지에 응시자 필체 파악을 위해 한글로 된 문장을 따라 쓰도록 돼 있다. 제주청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피의자는 필체가 달라지고 급격한 점수 상승이 있는 경우 부정행위가 적발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며 “토익 응시 경험이 있는 의뢰자의 경우 시험을 여러 번 치르며 점수를 서서히 올리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경우 이 씨는 대리 시험 사례금을 높여 받았다. 따라서 적발된 의뢰자는 27명이지만 부정행위는 이보다 많은 37회가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얼굴 대조하고 필체 확인하고…그래도 뚫리나 토익, 토플 등 외국어 시험을 주관하는 회사들은 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나름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시험 시작 전과 시험 중에 신분증과 응시자 얼굴을 대조해 본인 확인절차를 거치고 채점 결과를 가지고도 부정행위를 적발하기도 한다. 한국토익위원회는 답안지에 한글로 된 예시 문장을 따라 적도록 만들어 응시자의 필체를 파악한다. 이후 시험 점수를 토대로 이전 시험에 비해 점수가 급상승한 사람의 필체 등을 대조해 대리시험 등 부정행위를 가려낸다. 텝스관리위원회 관계자도 “시험 결과에 따라 부정행위 의심자를 호출해 재시험으로 검증절차를 밟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플을 주관하는 ETS에서는 시험장 현장에서 본인확인을 위해 응시자 얼굴 사진을 촬영한다. 하지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토플IBT’ 시험의 경우 응시자마다 시험 시작 시간에 차이가 있어 말하기 부문에서 다른 응시자의 내용을 듣고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상황이다. 일부 학원에서는 이를 한 가지 요령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오픽은 응시자마다 다른 문제가 나오고 말하기 시험이기 때문에 다른 부정행위보다 대리시험을 경계한다. 오픽 주관사 크레듀 관계자는 “시험 시작 전 본인확인 절차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외국어시험 주관사의 노력에도 부정행위 적발 소식은 이따금씩 들려오고 있다. 시험 주관사와 신분증을 관리하는 행정기관의 제도개선과 수사기관의 지속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상] |
대리시험 제안 ‘즐톡s’ 설치해보니… 외국어 시험 대리응시로 1억 원 이상을 벌어들인 이 아무개 씨가 광고를 위해 사용한 어플리케이션은 ‘즐톡s’로 밝혀졌다. 제주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이곳에 올라온 이 씨의 광고를 토대로 조사에 착수해 결국 그를 검거했다. 실제 채팅어플인 즐톡s를 설치해봤다. 어플에는 채팅 외에도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 짧은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 등의 기능도 있었다. 개인정보는 나이와 성별, 위치정보만이 공개되며 익명성이 보장되고 있었다. 장터 메뉴에는 중고차부터 휴대폰까지 다양한 물건을 팔겠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물건뿐만이 아니었다. 스포츠 경기를 예측해 주겠다는 ‘픽 공유’, 조건만남, 담배 판매, 대출 등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는 거래 제안도 함께였다. 경찰에 적발된 외국어 시험 대리응시 제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