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기획, ‘원전’이란 민감한 소재…‘무능 정부’ 현실과 닮은꼴
영화 <판도라>는 과학이 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원전이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이 만나 한순간에 인간을 삼키는 괴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NEW 제공
영화의 배경은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동남권 도시. 고향을 떠나 선원이 되고 싶어 하는 원자력발전소 직원 재혁(김남길), 원자력 발전소가 ‘밥솥’이라 굳게 믿는 어머니 석 여사(김영애), 남편을 잃고 석 여사와 함께 사는 며느리 정혜(문정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들에게 원전소는 삶의 터전이자 자존심 그 자체다.
하지만 정작 원전소는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소장 평섭(정진영)은 여러 차례 발전소 점검을 대통령(김명민)에 제안하지만 총리(이경영)로 인해 묵살되고 만다. 그러던 중 최대 규모의 강진이 대한민국을 찾아오고 타격을 받은 원전이 폭발하면서 방사능이 유출되고 대한민국은 한순간에 혼란에 휩싸인다.
사실 이 영화는 4년 전 제작된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국과 묘하게 닮은 점을 찾을 수 있다. 원전 문제뿐만 아니라 재난상황을 신속히 국민에게 알리기보다 언론을 막는 데만 급급한 정부, 그리고 최고 통치권자 대통령마저 실세 총리에 눌려 리더십을 발휘 못하는 상황까지 영화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영화는 국내 최초로 ‘원전’을 소재로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상당한 피해와 여러 나라의 탈핵 등을 유발시켰지만 대한민국에는 아무런 정책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진도 5.8의 사상 초유 지진이 발생했고 상황은 달라졌다. 지진에 익숙하지 않던 국민들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줬고 원전이 화두에 오른 것이다. 실제 세계최대규모의 원전밀집지역은 원전 12기가 운영되고 있는 대한민국 동해안이다.
영화는 원전 폭발이라는 우리 사회에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영화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 국가 비상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 현 시국과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많다. 영화에서 국가 운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사람은 대통령(김명민)이 아닌 총리(이경영)다. 국정이 대통령이라는 헌법 최고 권력자가 아닌 실세 총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청와대의 모습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닮아 있다.
4년 전 제작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현 시국과 묘하게 닮은 점을 찾을 수 있다. 사진=NEW 제공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에 온 나라가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정작 사태를 수습해야 할 정부는 이렇다 할 대응 매뉴얼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였고 정확한 사실을 국민에 알리기보다 언론을 막는 데만 급급하다. 국민들에게는 하던 대로 하면서 기다리라 하는 정부와 그 말을 믿으며 정부의 대처를 기다리다 더 큰 재난에 빠지는 국민들의 모습은 마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정부의 무능으로 열린 판도라의 상자를 닫는 것은 국민의 몫이었다. 재혁을 필두로 한 원전소 직원들은 직접 사지로 뛰어든다. 그 이유는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다. 영화는 국민 하나하나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절망 대신 희망을 찾자는 메시지를 재혁과 가족들을 통해 전달한다.
연출을 맡은 박정우 감독은 한 방송에 출연해 “영화를 만들 때마다 그 시점에 가장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현실의 문제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 그 속에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공감하고, 소중한 가치를 찾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이 세상이 좀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영화에 담고자 했던 메시지를 전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