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 닫혔지만 ‘후문’은 열려있다
▲ 지난 11월 23일 중소기업희망선포식에 참석한 정동영 후보. 단일화 실패로 위기에 몰린 정 후보의 돌파구는 뭘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 협상이 결렬된 이후 범여권 대선정국에는 더 짙은 안개가 드리우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관계자는 “결국 ‘범여권 다자구도’로 대결을 펼쳐야 하나. 단일화를 해도 어려운 마당에 뿔뿔이 싸우겠다는 꼴이니 어쩌자고 이러는 것인지…”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범여권 후보단일화는 범여권 각 당의 후보가 선출되기 이전부터 거론돼 왔고 각 당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범여권으로서는 대권 창출을 위해 ‘꼭 이뤄내야 하는’ 1차 관문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단일화 실패에 대한 범여권 내부의 진통은 생각보다 그 후유증이 큰 듯하다.
단일화 작업의 축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남은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정 후보는 범여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후보단일화 작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만큼 협상이 결렬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크다. 막바지까지 단일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정 후보는 23일 “물리적으로 합당은 불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당 내외의 비판이 당분간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선 정 후보가 단일화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당내 역학 관계를 무시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 정치 분석가는 “결국 의결기구 구성 비율을 두고 양 당이 싸우다가 협상이 타결되지 못한 것 아니냐. 신당과 민주당은 의석수가 140:8로 비교조차 안 되는데 정 후보가 후보단일화에 급급해 당내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퍼주기식 단일화 협상을 내놓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내에서는 대선후보 경선 당시 경쟁자였다가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비판도 날카롭다. 손 전 지사는 “우리 선거가 국민들에게 ‘정치세력 간의 정치’로 비쳐선 안된다”며 “떳떳하고 당당하게, 국민을 보고 국민을 상대로 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총리는 “민주당과의 단일화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당의 대표가 되는 게 전국적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겠느냐는 점에 대해서는 광주에서도 부정적 견해가 많다. (통합논의가) 주식회사 지분 나눠먹기 하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에 당에 대한 신뢰가 더 떨어지는 것”이라며 “대선이라는 큰 선거에서 주도권 행사를 하나도 못하는 선거를 해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이 때문에 한때 대통합민주신당 내에서는 정 후보와 손 전 지사, 이 전 총리 간의 갈등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민주당의 최인기 통합협상단장은 한 인터뷰에서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협상이 결렬된 배경에 대해 “정동영 후보를 제외한 대통합민주신당 내 7개 세력이 전부 반대해 처음부터 될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최인기 단장이 언급한 대통합민주신당 내 7개 세력은 손학규 전 지사 계열, 이해찬 전 총리 계열, 친노 세력, 시민사회세력, 민주당 탈당파, 김근태 전 의장 계열 등과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인사들이다. 처음부터 정 후보가 당내 세력 대다수가 반대하는 협상안을 제시하는 무리수를 두었으며 그 후 이들 세력을 설득해 하나로 만들지 못한 지도력의 문제가 부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과의 단일화에 실패한 정동영 후보는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에 다시 달려들었으나 결과는 또다시 상황만 악화시키고 말았다. 정 후보는 21일 서울 조계사 불교역사기념관에서 열린 불교계 초청 토론회에서 “문국현 후보님을 간절히 만나고 싶었다. 부처님의 ‘가피(加被·부처가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준다는 뜻)’로 자리가 만들어진 것 같다. 오늘 들어보시고 공통점이 많으면 단일화해 달라. 현재까지는 공통점이 많을 것 같다”고 거의 사정조의 호소를 했다. 그러나 문 후보의 대답은 차가웠다. 문 후보는 22일 “정 후보가 (현 정부와 여권의) 실정에 대해 먼저 사과하고 사퇴하는 것이 맞다”며 “25일까지 결단하길 바란다”며 오히려 역으로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물론 대선후보 등록 후에도 사실상의 후보 단일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 후보 측은 대선승리를 위한 양당이 가치연대를 통한 선거연합을 해서 연립정부를 세울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이인제 후보나 문국현 후보의 현재 지지율로만 본다면 당선 가능성이 극히 낮은 만큼 새로운 사태 변화를 기다릴 수도 있기는 하다.
실제로 현재 민주당 내에는 후보 단일화 무산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이미 조순형 의원이 탈당하는가 하면 수도권과 영남 등 약세지역을 중심으로 전직 의원 및 원외 지역위원장(옛 지구당위원장)들의 이탈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본격 선거운동을 위한 유세차 구입 자금도 부족하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그러나 범여권은 현재로서는 다자구도로 이명박 후보와 맞서 싸워야하는 입장에 처한 셈이며 이는 범여권의 위기 상황이랄 수도 있는 국면이다. 선거전략가로 통하는 이해찬 전 총리(대통합민주신당 선대위원장)도 “역대 선거 중 가장 어려운 선거가 됐다”고 한탄하고 있다. 다급해진 범여권의 상황은 DJ의 발언에서도 감지된다. DJ는 22일 한 행사장에서 “여론조사를 보면 진보세력과 중도적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이 7~8할이며, 아직 우리의 기반은 살아 있다”며 “우리가 위축되고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기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지고 있는데 어떻게 승리가 있겠는가”라고 언급했다.
과연 통합협상에서 큰 상처를 입은 정동영 후보가 내놓을 해법은 무엇일까. 그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