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저작권 위반, 내가 참으면 후배들도 당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 씨가 또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번에는 한 유명 사진작가와의 분쟁이다. 출판사 시공사는 지난 9월 22일 한 사진작가와의 저작권 위반 민사소송 2심에서 또 다시 패소했다. 시공사는 항소를 접으며 2심 직후 판결 받은 1300만 원을 즉시 작가에게 송금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민사 진행 탓에 시한부 기소중지한 해당 건 수사를 2017년 1월부터 재개할 방침이다. 시공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회사다. 전재국 씨는 시공사의 공동대표이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녀 전재만, 전효선 등이 주주로 앉아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 씨가 한 유명 사진작가와의 저작권 위반 소송사건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전재국 시공사 공동대표. 일요신문 DB
그로부터 1년쯤 지난 2015년 초, 작가는 친구에게 이상한 연락을 받았다. 친구는 작가에게 “네가 찍은 사진이 사진 판매업체에 걸려 있던데 이런 쪽에도 사진을 판매하냐”고 물어왔다. 그런 적이 없었던 작가는 즉시 해당 사진 판매업체에 접속했다. 거기에선 <더 갤러리아>에 실었던 자신의 작업 사진 가운데 65컷이 판매되고 있었다. 더 알아보니 시공사는 해당 사진 판매업체와 2014년 저작물 판매 계약을 맺고 자신이 <더 갤러리아>에 실었던 사진을 판매용으로 사용 중이었다.
작가가 사진을 출판사에 판매했더라도 그 사진은 계약된 목적에만 사용돼야 한다. 해당 작가는 계약서에 <더 갤러리아> 작업 내용으로만 자신의 사진 사용을 한정했다. 출판사가 작가와 계약한 분야 외에 사진을 사용하려면 또 다른 저작권 사용 계약을 맺고 작가와 이익을 나눠야 하는 게 옳다. 하지만 시공사는 이를 지키지 않고 ‘관행’대로 작가의 사진을 계약된 이외의 곳에 판매해 버렸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던 그가 전면전에 나선 이유는 편집장의 ‘사과 아닌 사과’를 들은 직후였다. 당시 시공사 관계자는 작가의 항의에 “관행에 따라 우리 회사에서는 이런 내용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원래 다른 사진작가와 작업할 때는 저작권을 아예 양도받든가 합니다”라며 “작가님이야 어느 정도 급이 있으니 우리가 이렇게까지 상황을 설명 드리지만 다른 작가는 작가님처럼 이의제기도 사실 잘 안 합니다. 이의제기한다고 해도 받아주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작가는 한때 그냥 넘어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의 친동생은 “형이야 어느 정도 알려졌기 때문에 목소리라도 낼 수 있지만 업계 후배들은 어떨까? 형 위치까지 올라가기 전에는 계속 당하지 않을까? 지금도 자기 사진 그냥 빼앗겨서 판매되는 거 바라만 보는 사람 많을 거다. 우리가 좋은 예시를 남겨서 업계가 좀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보자”며 형을 설득했다. 설득은 통했다. 작가는 시공사와 전면전을 결심했다.
작가는 2015년 5월 6일 저작권법 위반으로 시공사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민사소송도 동시에 진행했다. 민사소송이 진행되자 검찰은 민사소송이 종료될 때까지 기소를 중지했다. 지난 4월 1일 1심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작가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역시 지난 9월 22일 2심에서 작가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작가는 시공사 외 자신의 이미지를 구매한 사진 판매업체도 고소 명단에 포함했다. 민사소송에서 시공사는 “해당 사진 판매업체는 사진을 제공받고 판매를 대행하는 역할을 했을 뿐 고소인의 저작권을 침해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작가는 “사진을 대행하는 전문 회사는 원칙적으로 사진의 소유자가 사진작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해당 사진 판매업체는 시공사가 사진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이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거나 명백한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민사재판에서 법원은 사진 판매업체도 사진 원작자의 복제권과 전송권을 침해했다며 작가에게 배상하라 판결했다. 불법적으로 저작권을 사고 판 이들 모두에게 철퇴를 가하겠다는 작가의 의지는 이제 검찰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시공사 전경. 일요신문DB
작가는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서울중앙지검은 2015년 “민사가 함께 진행된 탓에 민사 종결 후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라며 시한부 기소중지처분 통지서를 작가에게 전했다. 작가는 2심 판결이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지난 10월 기소중지된 형사 고소 건을 빨리 처리해달라며 검찰에 수사 진행 촉구 요청까지 넣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 제6부 유시동 검사실 관계자는 “새해가 밝으면 바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시공사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이런 ‘원작자의 이익 인정 부분’에 있어서 원작자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원한 한 사진작가는 “보통 풍경작가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 많이 당하는 편이다. 특히 연차가 어린 작가는 항상 이런 피해를 입는 편”이라며 “계약할 때 사진 사용 범위를 ‘출력해서 전시용’으로 한정 짓지만 대부분 상업용 사진으로 다시 판매돼 쓰인다. 큰 사진은 가운데 일부를 잘라 상업적으로 다시 이용하는 사례도 많다. 구매자가 ‘갑’인 탓에 자칫 항의했다가 일이 안 들어올 수도 있어서 그냥 묵묵히 참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전면에 나서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사실 나조차 이런 일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곤 했는데 선배 소식을 들으니 조금 부끄러워진다. 선배가 이렇게 길을 터주셔서 우리가 조금 더 자부심을 가지며 사진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