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거래잔액 1000만원 미만이면 월 3000~5000원 수수료 부과 예정
씨티은행 본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동안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계좌유지수수료 도입의 목소리가 있어온 건 사실이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객이 신규 은행으로 계좌를 이동한 후 과거 거래하던 은행 계좌를 해지하지 않으면 해당계좌에 대해 계좌유지수수료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며 “일반적으로 구 거래은행의 계좌는 잔고가 거의 남지 않은 채 무거래 계좌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 구 거래은행의 관리비용이 늘어나고 해당계좌는 대포통장이나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전했다.
해외에서 계좌유지수수료가 활성화된 것도 계좌유지수수료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다. 미국은 예금 상품에 따라 월 5~30달러(약 6000~3만 6000원)의 계좌유지수수료를 받고, 유럽 은행도 대부분 월 2~3유로(약 2400~3600원) 수준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나 해외에서 계좌유지수수료를 부과하는 계좌는 대부분 당좌예금계좌다. 당좌예금계좌란 수시입·출금 기능에 수표 발행 기능이 추가된 계좌다. 수표를 발행하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신용도가 필요해 부가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일반 입·출금계좌에 계좌유지수수료를 부과하는 곳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은행 등 일부 은행에 불과하다.
한국씨티은행은 무거래계좌나 당좌예금계좌에 대해서만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예금 계좌에도 수수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또 1000만 원 이하 잔액을 가진 고객들에게만 수수료를 받아 서민들에게만 수수료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매월 5000원의 계좌유지수수료를 낸다고 가정하면,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1.5% 수준임을 감안했을 때 400만 원 이하의 예금은 예금 이자로 들어오는 돈보다 수수료로 나가는 돈이 더 많다.
박진회 씨티은행장. 사진출처=씨티은행 홈페이지
고객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과거 SC제일은행도 사회배려계층이나 인터넷뱅킹 이용 고객, 기존 고객에게는 계좌유지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객들의 거센 비판을 받아 결국 폐지했던 걸 생각하면 씨티은행도 비슷한 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짙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서민들은 각종 수수료 혜택에서 배제되고 어쩔 수 없이 은행창구를 이용하는 고객도 있는데 은행들은 없던 수수료 항목까지 만들어서 갖가지 이유로 수수료를 부과하려 한다”며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보다 은행 의존도가 높아 수수료가 곧바로 가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더 심사숙고하고 신중한 검토를 거쳐야 했다”고 주장했다.
계좌유지수수료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비대면 창구가 확대될지도 의문이다. 송치훈 우리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고객 이탈이나 신규 고객 유치에 대한 어려움 등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계좌유지수수료 도입 실익은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며 “미국에서도 예금업무 관련 수수료가 점진적으로 인하되는 추세여서 계좌유지수수료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계좌유지수수료 도입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2015년 8월 금융위원회(금융위)가 은행 수수료 자율화 방침을 밝힌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당시 “은행이 수수료·금리 등을 결정할 때 정부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립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수료 가격 결정과 달리 수수료 신설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씨티은행이 도입하려는 계좌유지수수료는 큰 어려움 없이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계좌유지수수료는 그동안 은행권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계속되는 저금리로 예대마진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수익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씨티은행을 시작으로 다른 시중은행들도 계좌유지수수료 도입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최근 은행들은 한 은행이 선도적으로 수수료를 인상하거나 신설하면 다른 은행들이 2~3개월 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며 “다른 시중은행들도 씨티은행을 지켜보다가 계좌유지수수료 도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2016년 2월 신한은행이 타행 송금 수수료를 1000원에서 2000원으로 인상하자 5월 KEB하나은행이 800원에서 1000원으로, 6월 KB국민은행이 1500원에서 2000원으로, 10월에는 우리은행이 750원에서 1000원으로 잇달아 타행 송금 수수료를 올렸다.
그러나 대부분 시중은행들은 현재 계좌유지수수료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국내 정서상 계좌유지수수료 도입은 이른 것 같아 검토하지 않는다”며 “인터넷은행의 등장으로 예금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는 와중에 고객 반발을 감수하면서 계좌유지수수료를 받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