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시작이고, 백석의 시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석 줄이기도 하다. 열정의 본질, 젊은 사랑의 이미지를 어떻게 저리 감각적으로 그려냈을까. 사랑해서 눈이 내린다니, 푹푹 밤눈이 내린다니,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내려앉은 세계의 신비를 만진 것 같다. 사랑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은 논리를 깨고 나오는 열정이며, 그 열정을 믿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토요일마다 백만이 모이고 밤늦게까지 촛불이 바다가 되는 비상시국이다. 청와대 앞에서 촛불은 별처럼 빛나고 함성은 하늘을 찌르는데,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 관저에서 대통령은 여전히 눈 감고 귀 막고 계시는가. 아니면 원래 눈귀가 없으신가. 세 차례 걸친 대국민 담화를 들으며 깜짝 놀란 까닭이 있다. 국민의 의혹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데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질문도 받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고 뒤돌아선 것! 그 때 아, 대통령은 기자의 질문을 소화해서 표정이 있는 자기 언어로 소통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든 것은 나만이 아니리라. 그동안 제기되어왔던 대통령의 소통부재는 의지의 문제이기 이전에 능력의 문제인 것은 아닌 지, 하는 생각!
그런 대통령이 최순실의 이권개입은 최순실의 문제지 자기는 몰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해서도 별 거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통령으로서 수행한 국정 전체의 1% 미만이란다. 그것을 어떻게 계량화했을까. 국가 예산이 400조인 나라의 1%는 4조 아닌가. 대통령이 결정하는 일이 하루에도 몇 개가 될까. 1%라 믿어지지도 않지만 그 1%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가 아니다. 영혼 없는 변호사들의 기막힌 말장난 변론에 누가 속을까.
기막힌 변론 중의 하나는 “세월호 당일 신속하게 현장을 지휘”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는 답변서에 그렇게 되어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내 눈과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국민들이 억울하고 기막히게 죽어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날 대통령은 무엇을 했냐는 의혹에 대해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피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했단다. 그렇게 답변한 것이 대통령 변호사들의 궤변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생각이라면 정말 세월호 7시간의 의혹이 없었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새해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고 새롭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가난한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아름다움을 발견해서 푹푹,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해가 떴으면 좋겠다. 그렇게 가난한 우리들의 열정이 빛났으면 좋겠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