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만들어 되치기로 대역전
▲ 검찰의 BBK 수사가 무혐의로 종결되면서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이 굳혀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BBK 사건 수사결과 발표 후 1강 2중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각 후보 캠프의 움직임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정국 최대 뇌관이었던 BBK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발표로 명암을 달리했지만 후보들은 나름대로 새로운 전략을 준비하면서 합종연횡 등 세 불리기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형국이다. 범여권은 BBK 수사 결과에 대한 의혹을 최대한 부각시키면서 이를 계기로 호남과 진보세력의 결집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선거 판도를 ‘이명박 대 반이명박’의 분위기로 몰고 가면서 후보 단일화를 통해 지지층의 결집을 이뤄낸다는 전략이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간의 후보단일화 논의가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막판 성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와 후보 등록 후 첫 번째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킨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BBK 여진에 희망을 걸면서 완주 의사를 분명히 했고 BBK 굴레에서 벗어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범여권을 압박하면서 무소속 정몽준 의원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를 영입하면서 대세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후보 간 합종연횡은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 명분을 외면한 채 지분 나누기나 총선을 겨냥한 향후 정치적 입지를 노린 정치공학적 야합이라는 비난도 없지 않지만 막판 대선 승패를 좌우하는 최대의 마지막 승부처가 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각에선 과거 ‘DJP 연합’이나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카드에 버금가는 폭발력 있는 깜짝 연대카드가 대선 막판에 성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후보들은 지방색에 마지막 희망을 걸며 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기도 하다. BBK 뇌관이 제거된 이후 대선의 마지막 승부처를 짚어본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관행화처럼 굳어진 정치 속설이다.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또 오늘의 동지가 내일은 적이 되는 비정하고 냉혹한 정치현실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대선이 치러지는 해는 배반의 계절이라고 할 정도로 후보 간 합종연횡이나 이합집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김영삼-노태우-김종필 3당 합당(92년), DJP 연합(97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2002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합종연횡이었던 것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에서 대혈투를 벌이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유력 후보들을 중심으로 한 합종연횡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도 과거 대선 사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대선정국 최대 변수로 꼽혔던 BBK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이명박 후보가 모든 혐의에서 벗어나자 정치권과 각 후보 진영은 음모론 등 새로운 의혹을 부추기며 2차 대선을 준비하면서도 한편으론 대권 전략 수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대세론 확산에 방점을 찍고 있고 치열한 2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정동영·이회창 후보는 막판 대역전극을 기대하며 지지층 결집과 세 불리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대선이 종반전으로 향하고 있는 만큼 세 후보 모두 전통적 지지층 결집과 합종연횡으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분위기다.
BBK 굴레에서 벗어나면서 다시 대세론을 구축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는 300억 원이 넘는 전재산을 사회에 헌납한다고 발표하는 등 막판 대세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후보는 또 30여 년 충청권 맹주로 군림해 온 김종필 전 총재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승리를 견인한 정몽준 의원을 영입하는 데 성공하는 등 거침없는 세 불리기에도 나서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6일 김 전 총재의 청구동 자택을 방문해 협조를 요청했고 김 전 총재는 그 자리에서 한나라당 입당과 함께 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에 앞서 3일에는 20여 년간 무소속을 고집해 온 정몽준 의원이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과 함께 한나라당에 전격 입당했다. 정 의원은 이날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패한 20년의 정치실험을 마감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건전한 제도화를 위해 새 활로를 뚫어야 할 때가 왔다. 이런 중차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무책임하게 중립지대에 안주할 수 없다”며 이 후보 지지 선언과 한나라당 입당 배경을 설명했다. 입당 후 한나라당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은 정 의원이 7일 이 후보 지원 유세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를 돌며 ‘이명박 대세론’ 구축에 나설 방침이다.
▲ 지난 6일 대선후보들의 합동 토론회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 ||
이명박 후보와 보수 진검대결을 펼치고 있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회창 후보는 BBK 수사 발표 이후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면서 한나라당으로부터 사퇴압력을 받고 있지만 대선완주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후보 측은 BBK 수사 발표(5일)를 검치일로 표현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지만 전열을 재정비하고 전국 유세 투어와 보수층 결집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지난 3일 심대평 대표와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이 후보는 6일 대선후보직을 사퇴한 심 대표와 함께 충남 아산 현충사를 참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민심투어를 재가동하는 동시에 충청권과 보수층 결집에 올인하고 있다. 이 후보는 새로운 보수신당 창당 작업을 비롯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중장기 플랜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 측은 보수 진영 외연확대 작업과 맞물려 고건 전 총리, 참주인연합 정근모 후보,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조순형 의원 등 거물급 보수 인사 영입에 승부수를 띄우면서 이명박 후보와 끝까지 진검승부를 펼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부패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동영 후보 역시 진보개혁세력 결집과 범여권 후보단일화로 마지막 대역전극을 연출한다는 계획이다. 비록 영입에 공을 들였던 고건 전 총리가 ‘대선 불개입’을 재천명하면서 ‘대어 낚기’에 실패하긴 했지만 3일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선숙 전 환경부 차관을 영입해 ‘여풍’몰이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정 후보 측은 또 이무영 전 경찰청장을 선대위 고문으로 영입하는가 하면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과 진대제 전 장관에게도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인제 민주당 후보 이수성 국민연대 후보와의 단일화 및 정책 연대 성사 여부도 관심사다. 1차 합당에 실패한 이인제 후보와 추가 협상을 물밑에서 진행하고 있고 참여정부 계승론을 주장하고 있는 이수성 후보와의 연대도 조만간 현실화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문제는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이 어떤 식으로 결론날지 여부다. 양측은 부패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는 단일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도 시기와 방법을 놓고 첨예한 기싸움을 벌여왔다. 정·문 두 후보 측은 7일에도 단일화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 범여권 내에서도 후보 단일화가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지만 막판 극적 타결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이처럼 ‘빅3’ 후보들을 중심으로 합종연횡이 본격화되면서 과거 대선 사례처럼 이번 대선에서도 깜짝 연대카드가 성사될 경우 대선 승패를 좌우하는 마지막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서 깜짝 연대 카드와 관련해 갖가지 가상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선 치열한 2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정동영·이회창 후보 간의 막판 후보단일화 내지는 연대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이 양측은 BBK 수사 발표 이후 ‘반이명박 연대’에는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지만 단일화나 연대 가능성에는 손사래를 치고 있다. 특히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이 회창 후보로서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있다. 또한 정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이 후보 지지자의 상당수가 이명박 후보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부담이다. 이 후보의 지지층이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선 승리가 담보된다면 족보나 혈액형에 구애받지 않고 손을 맞잡았던 과거 대선 사례처럼 두 사람 또한 독자적인 힘으로 대선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막판에 힘을 합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밖에 합종연횡과 함께 막판 선거판을 흔들 변수로 BBK 특검법을 둘러싼 공방, 부동층 향배, TV토론, 선거 때마다 위력을 발휘해온 지역주의 투표 성향 등을 들 수 있다. 정동영 후보로서는 BBK 수사결과에 대한 의혹을 발판으로 후보 단일화와 지역, 이념적 지지층의 결집을 이끌어낸다는 전략이다. 특검과 촛불집회 등을 통해 반이명박 세력을 하나로 묶는 작업에 성공한다면 한번 해볼 만하다는 것이 내부적인 판단이다. 실제로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 5%p 안팎의 상승효과가 예상되지만 이에 못지않게 범여권 성향표를 결집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반부패 반이명박 연대가 결성될 경우 20∼30%나 되는 부동층을 끌어 모으는 데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이와 함께 이명박 후보의 독주가 반감을 불러 막판 호남과 진보세력의 결집을 가져 올 수도 있다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지역주의가 이번에도 투표장에서 힘을 발휘할지 여부도 주목된다. 범여권으로선 후보단일화에다 부동층 쏠림, 그리고 지역주의 투표 성향 부활 등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내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6일부터 16일까지 모두 세 차례 진행되는 TV토론도 표심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TV 토론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정동영 후보로서는 한나라당 경선 당시 상호토론에서 약점을 보여 토론 후 지지율이 떨어지던 이명박 후보를 상대로 최대한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전략이다.
과연 정동영 이회창 후보가 막판 변수들을 어떻게 활용해 BBK 이후 발걸음이 가벼워진 이명박 후보를 제치고 대역전극의 주인공이 될지 종착역으로 달리고 있는 대선정국 최대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