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려준 밥상’ 삼각동맹이 엎었다고?
▲ 정동영 후보와 신당 의원들이 6일 검찰의 BBK 수사 발표를 규탄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런데 검찰의 무혐의 발표로 소멸할 것 같던 BBK 공방은 각종 음모론의 유탄이 정치권을 강타하며 대선 정국 제 2라운드를 맞이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경준 귀국 공작 배후설’을, 범여권은 ‘검찰-삼성-이명박’의 3중 빅딜설을 주장하며 BBK 정국을 대선까지 계속 이어갈 태세다. 아직도 ‘활화산’인 BBK 사건은 과연 이명박-이회창-정동영의 대선 삼국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BBK 사건에 대한 검찰 발표가 있기 며칠 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측의 핵심 멤버들은 모두 서초동 법원 주변에 진을 치고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첩보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검찰 발표를 며칠 앞두고 정치권이 초긴장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당시 일부 관계자들은 기자에게 “조금만 기다려 보라. 좋은 소식이 많이 있을 것이다”라며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검찰은 그에게 덧씌워진 모든 의혹들을 속시원하게 벗겨주었다.
이 후보 측이 그 같은 자신감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후보 측은 검찰 수사 발표 2~3 주전부터 이미 검찰의 무혐의 발표를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감’은 캠프의 자체 판단이 아닌 미국으로부터 일종의 ‘사인’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이 후보 측의 한 소식통은 이에 대해 “최근 외교가에는 미국은 이미 김경준 사건에 대해 충분한 법률 검토를 마친 뒤 한국으로 돌려보내도 그가 이명박 대선 후보에게 별다른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선뜻 범죄인인도협조요청에 응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아다닌다. 미국은 김경준이 한국에 가더라도 검찰에 의해 그가 사기꾼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질 것으로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 측의 판단은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이 후보 측에 메시지로 전달되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이 후보의 미국 방문이 무산된 배경에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원한다는 정치적 해석을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이명박 후보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결국 미국으로선 야당 후보 지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은밀하게 이 후보를 지원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후보 측은 이에 대해 “그런 이야기는 BBK 사건이 끝난 뒤 나오는 재미있는 후일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좀 비현실적인 시나리오 같다. 오히려 김경준의 귀국은 미국 정부의 ‘묵인’ 아래 범여권이 공작 차원에서 기획 귀국시켰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 측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캠프 주변에 흘러나오는 이야기 중에는 동교동계의 한 핵심 의원이 미국 LA를 방문해 김경준과 접촉했다는 게 있다. 이 과정에서 돈이 오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김경준은 범여권으로부터 검찰의 형량과 관련해 일종의 ‘보장’을 받았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다. 그가 만약 억지로 끌려왔다면 공항에서 ‘나는 억울하다’고 소리칠 것 아니겠는가. 김경준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웃으며 태연자약하게 귀국했다. 하지만 BBK 사건이 그의 의도와 달리 흘러가자 일각에서는 김경준이 범여권에 배신감을 느끼고 그들과 사전 교감을 나누었다는 충격 고백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라고 말했다.
최근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의원은 실제 자신이 사람을 사서 김경준 측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내 앞에서 실토까지 했다. 정동영 후보의 최측근 의원이 지난 여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가서 김경준과 접촉했다는 것은 이미 정치권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BBK 공작 배후설을 강력히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김경준 기획 귀국설은 최근 한 언론의 보도에 의해 다시 증폭되면서 대선 전 최대의 이슈로 부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국민일보>가 지난 7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김경준 씨의 미국 LA 연방구치소 수감동료인 미국인 테클레 지게타(37)씨는 ‘김 씨가 나에게 면회 온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과 거래를 했는데, 증언을 해주면 그 대가로 사면이나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 이명박 후보가 5일 KBS 백남준 특별전을 관람하던 중 바닥에 떨어져 있던 TV 수상기 부속을 손수 붙이고 있다. | ||
그런데 한나라당이 최근 김경준 귀국 배후설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배경에는 최근 범여권에서 BBK 수사 결과 발표 뒤 ‘검찰-삼성-이명박’간의 3중 빅딜설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맞불 성격이 짙다. 최근 정동영 후보 측은 BBK 사건에서 아무런 성과를 볼 수 없게 되자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 정략적 빅딜이 숨겨져 있다’며 그 전선을 검찰 수사 배후설로 확대하고 있다.
정 후보 측은 이에 대해 “검찰의 발표 뒤에는 삼성 특검이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 특검과 BBK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이 검찰로 하여금 이같이 100% 무혐의 결정을 한 배경이라고 본다. 비자금 수사를 받고 있는 삼성과 이명박 후보, 떡값 검찰 간에 삼각동맹이 구체화됐다는 의혹을 갖고 있으며 이게 수구부패동맹의 배경이 됐다는 것이 선대위의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 후보 측이 ‘빅딜설’을 주장하게 된 배경에는 한 인터넷 언론에서 보도한 청와대와 이명박 후보 간 빅딜설과도 관련이 있다. 정동영 후보는 “거대한 음모론이 인터넷 매체에 보도된 청와대와 이명박 후보간 빅딜을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검찰 발표는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으로 그 뒤에 숨어있는 음모가 작동한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 지금부터 그 음모가 뭔지 심증을 파헤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빅딜설에 대한 확인 작업을 거쳐 정치 공세를 분명히 할 것을 밝힌 셈이다.
이런 빅딜설은 그 누구보다 김경준 효과를 더 기대하고 있는 이회창 후보 측에 의해서도 증폭되고 있다. 이회창 캠프의 강삼재 전략기획팀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과 이명박 후보의 최측근이 지난 2일 긴급 회동했다’라고 보도한 한 인터넷 언론을 예로 들며 “이 후보와 현 정권과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정동영 후보 측은 이에 대해 “강 팀장이 거론한 이 인터넷 매체는 지난 5일 정가 소식통을 인용해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K 대 출신 S 씨와 이명박 후보 측근인 K 대 출신 J 의원이 일요일인 2일 오후 서울 K 호텔에서 회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또 ‘선후배인 두 사람은 이 후보가 집권한 이후 노 대통령 퇴임 후 검증에 대해 덮어주는 문제와 삼성 비자금 특검과 관련해 특검 수위를 조절하는 조건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주장했다”라고 전했다.
한편 강삼재 팀장은 이런 주장과 관련해 “검찰 수사 등 최근 상황이 한나라당의 단독적 행위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후보가 무능한 좌파정권과 손을 잡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만큼 즉각 사퇴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이회창 캠프의 또 다른 관계자도 “이 후보 측근과 참여정부의 한 인사가 골프 회동을 가졌다”라고 주장한다.
이제 BBK 사건의 1라운드가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조작과 연루되었는지의 여부였다면 김경준 귀국 배후설 대 검찰-삼성-이명박 빅딜설은 그 2라운드인 셈이다. 그리고 이 전선이 며칠 남지 않은 대선의 최후 교두보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실 정동영 후보 측은 BBK 수사결과 발표 이후 공황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정 후보 측은 BBK를 이번 선거의 유일한 승부처로 삼아 화력을 총동원해 공격했기에 그 후유증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발을 빼고 정책 대결로 몰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왔고 시간도 없다. 그 결과 정 후보 측은 늪에 빠진 발을 빼지도 못하고 다시 화력을 BBK로 집중하고 있다. 일단 검찰 발표를 전면 부정하고 BBK 특검이라는 전선에서 새 동력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민주당 이인제 후보도 대 검찰, 대 이명박 성토에 가세하며 범여 단일 대오를 형성하는 흐름이다. 여기에는 이회창 무소속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대선이 급격하게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급격한 변화 때문에 ‘반이명박 전선’에 같이 선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대선 직전 극적인 단일화를 이룰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도 나온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 측은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BBK 후폭풍이 대선을 며칠 앞둔 현 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뇌관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폭풍은 대선을 넘어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먼저 한나라당으로서는 BBK 사건과 관련해 김경준 귀국 배후설의 실체를 철저히 규명할 것이라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 먼저 김대업식 정치공작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끊겠다는 정치적 명분이 있다.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은 검찰 발표가 있은 직후 기자들과 만나 “많은 이야기와 증언을 수집하고 있지만, 대선 후 밝혀질 사안이기 때문에 거기 직접 대응 않겠다. 배후는 대선이 끝나고 나면 자동적으로 밝혀질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지 김경준 귀국 배후설과 관련해 정동영 후보 측의 일부 측근들을 타깃으로 끝까지 그 실체를 추적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만약 이 후보가 당선이 된다면 범여권에서 계속 BBK 사건으로 물고늘어질 것을 대비해 그 방어기제로서 김경준 귀국 배후설의 진실을 끝까지 파헤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범여권이 대선에 패배한 뒤에도 내년 총선을 위해 BBK 사건을 끝까지 ‘활화산’으로 남겨둘 것으로 전망한다. 그것에 대비한 측면에서 한나라당도 귀국 배후설에 당력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