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실세의 ‘산실’
▲ 2002년 12월 말 당시 김진표 인수위 부위원장, 노무현 당선자, 임채정 위원장(왼쪽부터). | ||
위원장인 정원식 전 총리를 중심으로 김한규 남재희 박관용 서정화 신경식 양창식 유경현 이재환 이민섭 이해구 이환의 장영철 최병렬 최창윤 등 15명이 인수위원이었다. 당시 YS가 구성한 인수위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지역안배였다. 12명이 서울·경기·대구·부산 등 각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이었다.
인수위의 활동이 끝난 후 신경식 의원은 정무제1장관을 지냈고 서정화 의원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박관용 의원과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역시 각각 청와대 비서실장과 서울시장 등으로 정치 전성기를 구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선거 혁명에 의한 정권교체였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인수위원수도 25명으로 늘었고 할 일도 많았다. YS 정부와 여러가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인수위원장은 이종찬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가 맡았지만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DJP 연합정권이었던 만큼 위원은 양측이 나눠가졌다. 국민회의 측에서 이해찬 조찬형 임복진 박정훈 박찬주 추미애 김한길 의원, 김덕규 김정길 박지원 전 의원, 최명헌 전 노동부 장관, 신건 전 법무차관이 참여했고 자민련 측에서는 김현욱 함석재 이동복 이양희 김종학 정우택 이건개 지대섭 한호선 의원과 조부영 최재욱 전 의원, 유효일 전 육군대학 총장이 선임됐다.
후에 이종찬 인수위원장은 국정원장에 임명됐으며 사회문화분과 인수위원이던 박지원 전 비서실장은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과 제2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이해찬 의원은 인수위 정책분과 간사를 맡은 후 교육부 장관을 지냈고 인수위 대변인을 맡았던 김한길 의원은 이후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기용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수위는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정치인을 배제하고 정책 실무형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었다. 대부분 진보성향의 40~50대 중견학자들이었다. 임채정 위원장을 비롯 부위원장에 김진표, 기획조정분과위 간사에 이병완, 정무분과위 간사에 김병준, 통일·외교·안보 분과위 간사에 윤영관, 경제 1분과위 간사에 이정우, 경제 2분과위 간사에 김대환, 사회·문화·여성 분과위 간사에는 권기홍, 국민참여센터 본부장에 이종오, 인수위 대변인에 정순균으로 구성됐다. 인수위에는 25명의 인수위원 외에도 전문위원, 행정요원, 자문그룹 등을 포함해 총 250명 안팎이 활동했다.
노 대통령은 “인수위원들을 (새 정부에) 처음부터 기용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며 “밖에서 찾아서 없으면 몇 분은 모시겠지만 마음을 비우고 있으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발언과 달리 상당수가 새 정부에 참여했으며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와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은 정권 내내 노 대통령과 함께했다. 성경륭 청와대 정책실장은 기획조정분과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외교통일안보분과에서 위원으로 활동했다. 얼마 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정무분과위원회의 전문위원이었으며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 역시 국민참여센터 전문위원이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