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에 ‘거짓 사연’ 올려 동정심 호소…후원금 먹튀 잇따라
충북 제천 맘 카페의 한 회원이 카페 회원들을 상대로 억대의 사기를 치고 잠적한 사실이 드러났다. 충북MBC 뉴스 화면 캡처.
지난해 12월 22일 충북 제천의 지역 최대 맘(Mom) 카페 회원들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휘말렸다. 카페 외부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회원 이 아무개 씨(여·44)가 다른 회원들에게 거액의 사기를 치고 자취를 감춘 것.
이 씨는 지난해 9월 제천의 한 어린이집 담당 교사가 강제로 낮잠을 재우는 과정에서 질식사한 원아 A 군(당시 3세) 사건과 관련해 추모 행사를 진행했으며 분향소 지킴이 참여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 왔다. 숨진 A 군을 위한 천도재 명목으로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했으며, A 군의 유족에게 전해준다며 위로금을 건네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원금 사용처는 밝히지 않았지만 자신의 얼굴을 공개한 채 커뮤니티 활동에 발 벗고 나선 이 씨에게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추모 활동으로 커뮤니티 내에서 인지도를 쌓은 이 씨는 이내 자신의 친정오빠가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는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특히 오빠의 병세가 위중해 병원비가 급하다는 이야기에 많은 회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정작 자신은 곤궁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던 회원들은 적게는 300만 원에서 많게는 2000만 원까지 이 씨에게 건네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씨는 돈을 일괄적으로 갚기로 한 지난해 12월 21일, 휴대전화 착신을 거부한 채 잠적했다. 아픈 오빠가 있다는 말도 거짓말이었으며 커뮤니티 내에서 사용한 이름도 가명이었다. 현재까지 이 씨에게 돈을 건네줬다고 밝힌 회원들만 10여 명에 달하며, 유가족에게 전달하지 않고 가로챈 천도재 비용 등 후원금 200여 만원을 포함해 피해 금액은 총 3억~4억 원에 이를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지도를 쌓은 뒤 거짓 사연을 지어내거나 부풀려 후원금을 ‘먹튀’하는 사이버 구걸 사례는 최근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어려운 가정형편이나 성폭력 또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심각한 사건을 미끼로 회원들을 현혹해 후원금 모금을 유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십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난해 10월경,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밝힌 회원 B 씨가 가해자인 아버지로부터 수차례에 걸친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B 씨는 기존에 다양한 정보 글을 올려 커뮤니티 내에서 인기가 높은 유명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원들이 도움을 주고 싶다며 댓글을 달자, B 씨는 이후 계속되는 글을 통해 “변호사와 상담하고 싶지만 돈이 없다” “집을 나왔는데 갈 곳이 없다”라며 하소연을 늘어놨다. 이를 안쓰럽게 여긴 회원들이 직접 후원의사를 밝히자 B 씨는 못 이기는 척 계좌번호를 공개하고 모금을 받았다. 몇 시간 만에 수백만 원 상당의 돈이 모금됐다.
그러나 B 씨의 태도에 의구심을 품은 한 회원이 그의 이전 게시글을 찾아보던 중,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시기에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는 글을 발견했다. 이를 추궁하자 계속해서 말을 바꾸던 B 씨는 결국 “급전이 필요해서 거짓말을 했다. 모금된 돈은 돌려주겠다”라며 실토했다. 분노한 회원들은 B 씨를 사기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아동학대 사실을 거짓으로 지어낸 뒤 회원들로부터 모금을 받으려다 덜미를 잡힌 경우도 있었다. 가정주부 C 씨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윗집 아이가 학대를 당하는 것 같아 아동학대 신고를 했는데 도와주고 싶다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아이를 둔 어머니 회원들이 많은 이 커뮤니티에서는 C 씨의 글에 공분하며 “아이 옷이나 학용품이라도 보내주고 싶다”라고 후원 의사가 이어졌다. 그러자 C 씨는 곧바로 “아이 아버지께 여쭤보고 연락처를 드리겠다”며 적극적으로 후원을 받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아동학대 사건을 허위로 제보한 뒤 후원금 모금을 유도하려다 운영자에게 적발된 한 커뮤니티 회원의 사과글.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그러나 운영자가 아동 학대 신고 접수 내역이 없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자 결국 C 씨는 “그냥 관심을 받고 싶어 글을 썼을 뿐 사기를 치려고 한 건 아니었다”라며 꼬리를 내렸다. 다행히 후원이 이뤄지지 않아 C 씨의 사이버 구걸은 미수에 그쳤다.
이 커뮤니티 운영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회원들 사이가 돈독한 커뮤니티일수록 이를 악용해 사이버 구걸을 일삼는 회원들이 많다. 자기 상황을 부풀리거나 거짓으로 지어내서 회원들의 관심을 끈 뒤 개인적인 후원금 모금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사건이 계속 발생하면 좋은 일을 하려다 상처를 받고 정작 도움이 절실한 곳에도 의심하고 주저할 수 있다”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모든 걸 맡기지 말고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후원금 모금이나 금전 거래 등에 대한 시스템을 철저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