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사당이냐” 당 안팎서 비난 봇물
민주당 전략 기구인 민주연구원은 지난해 말 ‘개헌 논의 배경과 전략적 스탠스 & 더불어민주당의 선택’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해 일부 당내 인사들에게 전달했다. 이 보고서는 문재인 전 대표를 대선 후보로 기정사실화한 뉘앙스를 풍겼다. 또한 문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개헌에 반대하는 입장을 담고 있다.
민주당 전략 기구인 민주연구원에서 지난해 말 작성해 논란이 된 ‘개헌 논의 배경과 전략적 스탠스 & 더불어민주당의 선택’ 보고서 일부분.
보고서는 1월 3일 <동아일보>가 ‘민주 개헌저지 문건, 친문끼리 돌려봤다’고 보도하면서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일요신문>도 이 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는 ‘Ⅰ. 개헌 논의의 배경’ ‘Ⅱ. 민심과 개헌’ ‘Ⅲ. 정치권과 개헌’ ‘Ⅳ. 2017 대선과 제3지대론 & 개헌’ ‘Ⅴ. 개헌 추진을 위한 기본전략’ ‘Ⅵ.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전략적 스탠스와 선택’ 총 6개 파트로 나눠져 있는 33장짜리의 문건이다.
보고서에서 ‘비문’ ‘비문 세력’ ‘비문 전선’ 등 ‘비문’이 담긴 표현은 총 9군데 등장한다. 문재인 전 대표는 10번 등장한 반면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 민주당의 다른 잠룡들은 2번 나온다. 일각에서 친문 패권주의에 젖은 문 전 대표의 맞춤형 전략 보고서란 비판이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보고서는 제3지대를 ‘현실적으로는 대권을 위한 독자적인 조직이나 세력이 취약한 대권 주자 간의 야합’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이 역시 친문 진영 시각과 흡사하다. 보고서는 안철수 전 대표와 반기문 전 총장이 제3지대에서 결합한다면 비문연합과 문 전 대표의 선거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민주당의 크나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밖에 문재인 전 대표와 추미애 대표가 대선 전 개헌논의 불가를 고수하는 것은 당 안팎으로 고립될 수 있는 만큼 사전 차단 또는 출구 전략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한 대목도 구설수에 올랐다.
민주당 내 비주류 인사들은 강력 반발에 나섰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1월 4일 “당 지도부는 연구자에 대한 보직 해임을 철회하고 모든 파동의 책임을 민주연구원장에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당의 공식기구인 민주연구원이 벌써 대선 후보가 확정된 것처럼 편향된 전략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당론을 정해야 하는 민감한 개헌 이슈에 대한 보고서가 몇몇 사람에게만 회람되는 것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개헌 논의를 ‘정략적’ 차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문제다. 민주연구원은 특정 후보가 아니라, 당의 집권을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기동민, 김병욱 의원 등 20여 명의 민주당 초선 의원들도 “당내 경선이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특정인을 당의 후보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당의 공식 기구에서 낸 보고서에서 비문 연대, 비문 전선, 비문 결집 등의 표현을 쓴 것은 당의 분열을 자초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 개헌 특위’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우리 당의 개헌 추진 의지를 폄하했다”며 지도부에 진상 조사 및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당 외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원내대표는 1월 5일 SNS에 “개헌 보고서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보고서로 착각이 들 정도다. 공당의 모습이 아니고 전형적인 사당의 모습이다.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기 전부터 이런 모습이라면 만약 집권을 하면 제2의 박근혜 대통령이 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고 꼬집었다. 장제원 개혁보수신당 대변인도 “민주당이 특정세력의 패권 정당, 문 전 대표의 사당임을 자인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주연구원은 연구원 개인 의견으로 작성됐고, 당 지도부 및 대선주자 5명(문 전 대표, 김 의원, 박 시장, 이 시장, 안희정 충남지사)에게도 전달된 만큼 문 전 대표만을 위한 문건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민주연구원 측에 해명을 요구했으나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민주연구원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당 지도부는 관련 문건 작성을 지시한 적도 없고 보도가 나온 후에야 관련 문건의 내용을 알게 됐다. 확인 결과, 관련 문건은 민주연구원 소속 연구원의 개인 의견에 불과하며 내용을 보더라도 확인되지 않은 허위의 사실과 해당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부적절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개헌 보고서에 대한 비토 기류는 수그러들지 않는 모습이다. 노웅래 의원은 1월 4일 “김용익 (민주연구원) 원장은 개인의 사견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다. 분명히 민주연구원의 공식적인 보고서고 확실히 책임을 물어야 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민주연구원이 친문 일색이라는 지적도 뒤를 잇는다.
한편, 보고서를 작성한 민주연구원 문병주 수석연구위원은 보직 해임되고 대기발령 조치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친문 인사로 분류되는 김용익 연구원장도 1월 4일 “제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사태를 정리해 달라”며 지도부에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민주연구원 홈페이지 ‘나도 한마디’란엔 김 원장 사퇴를 반대하는 게시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문 전 대표 지지자들로 추측된다. 민주당은 안규백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를 구성하고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