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진을 ‘김종인급’으로 올리려는 각본 의혹…평소 격의 없이 지내는 사이
서청원 의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그런데, 두 사람 간의 대응 수위가 점차 높아지면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흐르자, 일각에서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두 사람 간의 일촉즉발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혹여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새누리당을 향한 언론과 여론의 주목도를 높이고, 서 의원이 인 위원장을 ‘김종인급’으로 만들어 분골쇄신하려는 짜여진 각본이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말 인 비대위원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리를 보고 누우라고 그러는데, 그게(비대위원장이) 맡을 만한 자리가 아니잖아요. 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맡는거지 욕심스럽게 맡기만 하면 되나요?”라며 고사에 쐐기를 박은 바 있는데, 이를 번복한 것도 석연찮다는 때늦은 의심도 제기된다.
인 비대위원장과 서 의원이 새누리당 전국위원회 개최 직전 만난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전국위는 인 비대위원장 인선을 추인하는 당의 최종 결정기구다. 이 회동에서 서 의원은 “인 비대위원장이 ‘잠시 당에서 나가 계시면 다시 돌아와서 국회의장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탈당하면 그 덕으로 국회의장직을 확답해주겠다”고 자신을 을렀다고 폭로했다.
반대로 인 비대위원장은 “덕담 수준”이었다며 이를 서 의원이 오해했다고 반격했다. 어찌됐든 두 사람 간의 대화에서 차기 국회의장 이야기가 나온 것도, 잠시 탈당하면 다시 복당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오간 것도 맞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 9단이라는 서 의원도, 성직자지만 정치권 가까이에서 절체절명의 시기에 등장했던 인 위원장도 이런 저차원적 수준이기만 할까.
우선 두 사람 간의 친분이 의심스럽다. 인 비대위원장은 1946년생, 서 의원은 1943년생이다. 서 의원이 세 살 많지만 정가에서의 말들을 종합하면 둘은 친구처럼 편안한 사이로 전해진다. 인 비대위원장의 고향이 충남 당진이고, 서 의원은 충남 천안 출신이다. 같은 충남의 결집력은 상당하다고 전해진다.
둘이 충남 향우회 등에서 왕왕 만나 격의없이 지냈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서 의원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시기에서 인 위원장이 객관적 입장에서의 판단을 내려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일부는 두 사람과 소수가 어울리는 자리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인 비대위원장이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쯤이다. 우선 비박계에서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를 선호했는데 이를 친박계가 비토했다. 12년 전 인 비대위원장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윤리위원장으로 활동했을 때 말실수에서부터 크고 작은 구설에 오른 의원들을 대거 징계하면서 ‘저승사자’로 불렸기 때문이다.
정무적인 판단은 차치하고 소신껏 행동하는 일종의 ‘독고다이’(내 식대로 간다는 뜻, 일본말로 특공대)인 인 목사를 두고 당시 친박계에서는 “무서울 수준으로 인적청산을 감행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인명진 카드가 없던 일이 되려던 순간 서 의원이 나타났다.
당시만 해도 서 의원은 친박계 핵심들과 거의 매일 만나 최순실 사태나 당의 분당 등 현안을 두고 비밀회동을 해왔다. 서 의원은 “인명진은 내가 제일 잘 안다”며 “맡겨도 될 사람”이라고 설득작업에 나섰다. 그렇게 각개격파식으로 설득작업에 나섰던 서 의원이 바로 인 비대위원장 체제 등장의 숨은 공로자였던 것이다.
인 비대위원장과 서 의원이 티격태격하는 수준을 벗어나 거의 죽기 살기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도 심상찮다. 여든을 바라보는 정치권과 종교계의 어른으로서 체통을 잊었다는 비판부터 제기된다. 반대로 둘의 표현은 곧바로 언론의 제목으로 등장하며 국민의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만약 이러다 서 의원이 전격적으로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꺾으면 인 비대위원장이 새누리당을 완전히 장악하는 모습이 된다”며 “그런 극적 효과만 있다면 새누리당의 내부 개혁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당의 체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을 벤치마킹한 일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당시 민주당은 김 비대위원장에게 전권을 주며 당내 개혁을 맡겼고, 김 비대위원장은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와 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이어간 바 있다. 서 의원이 자신을 향한 비난여론을 감수하면서 인 비대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추가 탈당 세력을 막고, 내부 개혁을 성공시킴으로써 신당의 성공까지 방해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인 비대위원장 측은 서 의원과 최경환 의원 등이 탈당을 않고 버티면 ‘당원권 정지’ 카드까지 꺼내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언론에 슬쩍 흘리기도 했다. 당내 갈등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항복선언을 받아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만약 이런 작전이 감행된다면 인명진식 개혁의 진정성에 설득력이 실릴 수 있어 보인다.
게다가 서 의원과 최 의원을 고립무원의 상태로 내몰고 있는 친박계의 움직임도 일사불란하다. 이정현 전 대표의 탈당계 제출에 이어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도 가세했다. 이주영 홍문종 김정훈 의원 등은 본인들의 거취를 인 비대위원장에게 백지 위임했고, 유민봉 추경호 정종섭 윤상직 등 현 정부에서 청와대나 총리실, 정부부처에서 녹을 먹었던 초선 의원들도 인 비대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당선된 지 1년도 안 된 초선 의원들이 독립적인 판단으로 정치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 이례적이다. 게다가 이 와중에 정우택 원내대표는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라는 말로 발이 저린 친박계는 탈당하라고 인 비대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해 최순실 사태 속에서 서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 ‘7인회’의 멤버였고, 지난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도 서 의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썰’이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 확보는 어려운 정가의 해석이다. 인 비대위원장이 사심 없이 새누리당 개혁에 나섰을 수도 있다. 차기 국회의장을 정치생명의 최종 목표로 하고 있는 서 의원으로선 탈당하는 순간 그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사생결단의 각오로 인 비대위원장에게 맞서고 있을 수도 있다.
서 의원이 당내에 없어야만 국회의장이란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정갑윤 의원이 서 의원을 내몰기 위해 탈당을 선언하며 배수의 진을 쳤을 수도 있다. 차기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정우택 원내대표로선 이런 사달을 막지 못한 친박계를 숙청시켜 당을 환골탈태시켜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각오를 했을 수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봐선, 김무성과 유승민을 피한 친박계가 인명진이라는 호랑이를 만났다. 이 호랑이가 종이 호랑이일지, 보수의 재건을 이끌 진짜 호랑이인지는 새누리당의 향후 행로가 확인해줄 것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