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말리는 ‘사람 욕심’… 때 기다려 ‘드라이브’
▲ 지난 12월 22일 이명박 당선자가 지인들과 테니스를 치고 있다. 이 당선자는 그간 대선 때문에 평소 취미인 테니스를 손에서 놓았었다. 국회사진기자단 | ||
이명박 당선자의 ‘복심’으로 통하는 정두언 의원. 그는 승리가 확정적일 때인 대선 며칠 전부터 각계의 인맥을 두루 활용해 인수위 밑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선 투표 당일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 당선자에게 인수위 구성 기본 방향에 대해 비밀보고를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 의원은 이때 인수위원장은 상징적인 인물로 구성해야 한다며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과 박세일 전 서울대 교수, 그리고 최시중 고문과 4선의 김형오 의원 등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당선자로부터 모두 부정적인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특히 어윤대 전 총장의 경우 벌써부터 고려대 인맥이 전면에 나서면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가 학연에 너무 연연해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며 정 의원을 질책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 뒤 이 당선자는 소장파 의원들과의 만남에서 처음으로 이경숙 카드를 공개적으로 거명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여성 대학총장이 위원장으로 어떠냐”며 의원들의 반응을 떠봤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동안 ‘이경숙 위원장’ 카드에 대한 여론 평가도 거치게 했다. 그 과정에서 이 당선자는 이경숙 카드를 일부 언론에 슬쩍 흘려 여론여과 과정을 거치는 ‘노련함’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데 이때 이 당선자와 친분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동아일보>가 이경숙 카드를 처음 확정적으로 단독보도한 것을 두고 이명박 정부와 <동아일보>의 밀월관계를 지켜보라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 이 당선자는 이 총장을 지난 선대위 구성 때부터 마음에 두고 적극적인 영입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선대위 구성 전 정두언 의원은 기자에게 선대위원장 적임자로 이경숙 총장을 몇 번이나 거명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기자에게 “이 후보가 이 총장의 CEO 마인드를 높이 사고 있다. 몇 번이나 선대위원장 자리를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언젠가는 이 후보가 이 총장을 크게 쓸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경숙 위원장의 발탁은 앞으로 이명박 당선자의 인사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전두환 정권 때 국보위 입법위원과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활동했다는 전력 때문에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의 반발을 불렀지만 ‘능력’보다 나은 검증 잣대는 없다는 당선자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앞으로 이 당선자가 조각을 할 때 능력 검증만 되면 민주당이나 대통합민주신당 출신 인사의 중용을 통해 국민통합과 실용주의 인사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상징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이미 인수위 인선 때 나타나기도 했다. 박진 박재완 최경환 의원 등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운 이른바 ‘범박 그룹’을 대거 기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이 당선자가 대거 인수위 간사격으로 기용한 것을 두고 당내 화합과 ‘실용’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또한 이명박 당선자의 전문성 최우선 순위를 반영하는 인선이라는 점에서 향후 이명박 정부의 진용을 읽을 수 있다. 정부혁신·규제개혁TF팀장으로 기용된 박재완 의원은 행정고시 출신이면서 성균관대 교수 출신으로 청와대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있다. 박 의원은 특히 공공부문 개혁과 관련한 꾸준한 연구로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전문가다.
경제2분과 간사로 기용된 최경환 의원도 행정고시 출신으로 행정부를 거쳤고, 외교·통일·안보 분과의 박 진 의원은 외무고시 출신으로 김영삼 정권 때 청와대에서 비서관 생활을 했고 미국 정치권에도 폭넓은 인맥을 확보하고 있어 향후 이명박 정부의 외교 핵심 라인으로 떠오른다. 또한 이주호 의원은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 출신으로 이 당선자의 교육공약을 총괄하는 등 교육전문가로 통하고 있다.
실용·전문성과 함께 역대 정권의 인수위 구성 때마다 말이 많았던 ‘코드’ 인사도 여전히 눈에 띈다. 이 당선자는 사람을 쓸 때 고집스러울 만큼 이모저모를 꼼꼼히 따진다. 이 당선자가 뜨기 이전인 지난해 여름 그의 캠프에 합류한 한 인사는 “이 당선자를 오랫동안 곁에서 보좌해오던 ‘인의 장막’ 때문에 캠프에 안착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나의 입성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준 뒤 조용하게 나를 기용했다. 주변 반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한번 옳다고 믿으면 파문이 가라앉은 뒤 반드시 쓸 정도로 사람에 대한 욕심이 대단한 것 같더라”고 말했다.
이번 인수위 인선에서도 이 당선자 특유의 ‘가족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당선자 비서실 인선에선 당선자와 오랫동안 같이 해왔던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비서실 보좌역으로 임명된 정두언 의원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 당선자를 보좌했던 측근 중의 측근이다. 한때 정 의원은 정무분야 간사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당선자의 ‘복심’으로 너무 튄다는 주변의 우려 때문에 당선자 보좌역이라는 ‘위인설관’을 통해 인수위에 입성했다.
일각에서는 정 의원 대신에 이재오 전 최고위원 계보인 진수희 의원이 정무분야에 들어온 것을 두고 이 전 최고위원이 ‘한창 잘나가는’ 소장파 중심의 정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막판에 자기 계보인 진 의원을 인수위 요직에 밀어 넣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청와대 비서실 진용과 조각 때도 소장파와 이재오 계보 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리고 이 당선자를 오랫동안 보좌해온 박영준 전 서울시 정무담당 부국장과 뒤늦게 캠프에 합류했지만 사적인 인연으로 이 당선자에게 정치적 조언을 해온 권택기 전 선대위 스케줄팀장 등은 안국포럼 멤버이고, 인수위 부대변인으로 내정된 강승규 팀장도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 당선자와 손발을 맞춰왔다. 여기에 ‘남자 10명과도 바꾸지 않는’ 김윤경 이진영 씨 등도 그대로 당선자 비서실에 입성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의 사람들’이 이 당선자의 국정 철학을 구현하는 데 최선봉에 설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능력 위주가 아닌 ‘끼리끼리’ 문화가 이 당선자에게 인의 장막을 형성해 다양성을 해치고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