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받지 못한 자들’ 퇴출이냐 역공이냐
▲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신당 내부에서 일고 있는 대대적인 물갈이론과 전면적 인적쇄신론 중심에는 DY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다. DY는 신당 대선후보로서 대선 참패에 따른 책임론에 직면해 있고 노 대통령은 대선을 통해 냉정한 국민적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 2의 정풍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초선의원들이 인적쇄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인사도 다름 아닌 DY를 정점으로 한 현 지도부와 중진들 그리고 오랫동안 노 대통령을 보좌해 온 친노그룹이다.
실제로 문병호 의원 등 초선의원 19명 모임은 27일 ‘현 지도부의 즉각 사퇴’와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들의 백의종군을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결과를 발표한 문 의원은 “지난번 성명서에서 당과 정부, 국회의 중심에 있던 분들이라는 추상적 표현을 썼는데 이를 정부에서는 총리와 장관, 당에서는 당의장과 원내대표를 지칭하기로 했다”며 “이 분들에게 백의종군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인적쇄신 대상을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총리와 장관, 당을 이끌었던 당 의장과 원내대표로 보다 구체화하면서 사실상 ‘살생부’를 꺼내든 셈이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DY를 포함한 김근태 김원기 문희상 임채정 신기남 천정배 김한길 정세균 의원 등 중진들과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강금실 김두관 전 장관 등 대표적인 친노인사들이 대거 살생부 대상에 포함된다.
이들 초선들은 살생부 대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인사들이 스스로 총선 불출마를 포함해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일회성 성명이 아니라 지속적인 쇄신운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어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초선들의 대반란에 신당 지도부는 27일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열어 최고위를 공백 상태로 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쪽으로 일단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부는 초선들의 정치세력화에 우려감을 표시하면서도 이들이 주도하고 있는 정풍운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등 쇄신안을 놓고 격론이 오갔다는 후문이다.
당내 각 계파들도 초선의원들의 반란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초선의원들이 지목한 쇄신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고 10여 명이 넘는 중진들을 겨냥해 ‘기득권 포기’를 주장한다는 게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방심했다간 ‘정풍’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는 분위기다.
따라서 각 계파는 인적쇄신과 정풍운동이 필요하다는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대상은 자신들이 속한 계파가 아닌 타 계파라는 점을 부각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DY계와 김한길 그룹이 친노그룹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전략과 맞물린 계파 간 생존플랜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인적쇄신론을 둘러싼 계파 간 갈등이 치열한 생존 게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범여권 양대 축인 DY계와 친노그룹 간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DY계인 조배숙 의원과 김한길 의원이 친노그룹 책임론과 2선 후퇴론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나선 것은 양 진영 간의 이별 전쟁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 의원은 26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대선 참패의 원인은 한마디로 참여정부 즉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며 “친노 쪽 의원들은 앞으로 전면에는 나서지 않는 게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또 친노그룹과의 분열 가능성과 관련해 “지금 단계에서 할 얘기는 아니고 논의를 거쳐 정치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해 결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DY와 가까운 김한길 의원도 27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가장 많이 책임을 느껴야 할 사람들이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니까 서로 책임을 따지지 말자면서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며 친노그룹 2선 후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김 의원은 또 “정동영 후보가 노무현 정권 대안 세력의 주자가 아니라 승계세력의 주자로 국민에게 규정당한 게 가장 큰 대선참패 요인이었다”며 “‘무능한 오만’이 노무현 프레임의 본질이다. 이제 노무현 프레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말해 책임론에 직면해 있는 DY를 두둔하기도 했다. 논란이 일고 있는 전당대회 및 새 지도부 선출 방법과 관련해서는 “당의 혼돈 상태는 몇몇 실력자나 계파 간 타협 정도로 수습될 수준을 넘어섰다”며 “정상적인 전당대회에서 경선을 통해 새 지도부를 구성하고 여기에 당 쇄신에 대한 전권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참패 요인을 ‘노무현 정부 심판론’으로 몰고가면서 친노그룹을 인적청산 재물로 삼아 ‘정풍’ 소용돌이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DY계의 전략이 투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전대 경선 주장은 당내 기반과 조직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DY계의 당권 장악 플랜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당 내 최대 계파인 DY계의 당권 장악 플랜과 맞물려 DY의 정치활동 재개 시점도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DY가 비록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정치 휴지기에 들어간 상태지만 그의 휴식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DY는 대선 패배 후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항상 국민과 함께하겠다”는 소회를 피력한 바 있다. 언제든 정치활동을 재개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발언인 셈이다.
신당 관계자들은 DY가 당권이 걸려 있는 2월 전대나 계파 의원들의 생존과 직결된 4월 총선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DY 가 4월 총선에서 서울 종로나 강남에 직접 출마해 차기 대권 교두보 구축에 나설 것이란 섣부른 관측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친노그룹은 거센 책임론에 직면한 만큼 나름대로 생존전략에 고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친노그룹은 대선에서 드러난 냉혹한 국민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대선 패배에 따른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친노인사로 분류되고 있는 이화영 의원이 26일 모 라디오에 출연해 “인적 청산 요구는 당을 수렁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친노그룹은 책임론 공방전과 당권 파워게임에서 밀릴 경우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고 독자적인 생존 플랜도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친노그룹 리더격인 이해찬 전 총리의 측근 인사들이 중심이 된 재단법인 ‘광장’ 준비위원회가 27일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한국정치의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것도 이러한 위기감과 함께 어떻게든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리된다. ‘광장’은 이 전 총리가 과거 신림동에서 운영했던 서점의 이름으로 이 전 총리의 지지자들과 친노그룹이 주도적으로 만든 연구재단이다. 친노그룹이 ‘친노’라는 꼬리표를 달고 총선에 나서거나 독자생존을 모색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만큼 이 전 총리를 중심으로 세력 재편을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이 전 총리는 이날 세미나 축사에서 “이번 패배를 거울 삼아 새로운 가치와 길을 찾아내야 한다”며 “서로의 탓으로 돌리고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나선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대선 패배 책임론을 둘러싼 인적쇄신론은 특정 인물이나 계파의 문제가 아닌 민주 진영 전체의 문제로 규정하면서 친노그룹도 쇄신 대상이 아닌 주체로 당당하게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발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친노그룹은 대선 책임론 중심에 서 있는 만큼 당 쇄신론 논쟁에서는 한 발짝 물러서는 대신 2월 전대와 새 지도부 구성에 총력전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특히 친노그룹은 새로운 지도부 구성 문제와 관련해서 합의추대론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경선을 주장하고 있는 DY계와 김한길 그룹에 비해 조직적인 열세를 극복할 수 없는 만큼 합의추대와 집단지도체제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분위기다. 친노그룹은 당내 중진그룹과 손학규·김근태 의원계와 물밑 접촉을 강화하면서 합의추대론을 설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그룹 일부에서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손잡고 이른바 ‘손학규 대안론’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들 친노그룹은 손 전 지사뿐 아니라 당내 소수 계파들과의 전략적 연대를 통해 인적청산 소용돌이를 정면돌파한다는 1차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월 전대 과정에서 합의추대론 등이 무산되거나 당권 경쟁에서 DY계에 밀릴 경우 탈당 등을 통한 독자생존 플랜을 본격화한다는 내부 방침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신당 일각에서는 친노그룹이 노 대통령의 퇴임 후 정치구상과 맞물린 이른바 ‘노무현 신당’ 창당을 극비리에 추진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친노그룹 핵심 인사들이 4월 총선에 지역구 출마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이 전 총리(충남)를 비롯한 한명숙 전 총리(강남 서초)·유시민 의원(대구)·김두관 전 장관(경남)·안희정 씨(충남) 등 대표적인 친노 인사들이 지역구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고 청와대 출신 참모들도 오래전부터 자신들이 출마할 지역구에 내려가 표심잡기에 돌입한 상태다.
친노그룹은 1월 중에 모임을 갖고 출마 예상지역, 당선 가능성, 무소속 출마 여부 등 4월 총선 전략을 종합적으로 수립할 예정이다. 노 대통령도 친노인사들의 총선 출마를 직·간접적으로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대선 참패에 따른 후폭풍이 신당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2월 전대와 4월 총선을 겨냥한 계파 간 생존게임이 본격화되면서 DY계와 친노그룹 간의 마지막 이별전쟁도 본궤도에 진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핵심 주역으로 긴밀한 국정 파트너십과 때로는 팽팽한 경쟁 관계를 유지해 왔던 양측의 이별전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또 절치부심하며 차기를 기약하고 있는 DY와 퇴임 후 정치구상에 몰두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진검승부가 어떤 결과물을 도출할지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