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 띄워 박 잡기 고차방정식 가동
▲ (왼쪽부터)박근혜, 정몽준, 이재오 | ||
이명박 당선자는 행정부 디자인에도 관심이 있지만 그것을 후방에서 지원해줄 당의 권력 재편에 더 비중을 두고 상당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선 직전 정몽준 의원을 전격 영입한 것도 박근혜 전 대표와의 경쟁을 통해 차기 주자 구도를 새롭게 만들려는 포석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최측근 이재오 의원이 친이명박 그룹을 대표하며 다시 당권 경쟁에 뛰어들 경우 한나라당은 차기 대권을 두고 ‘박-정-이’의 3각 대결 구도가 정립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개되는 ‘박-정-이’ 3국지를 들여다봤다.
“이제부터 솎아내는 일만 남았다.”
지난 12월 19일 대선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이명박 당선자와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한 의원은 비장하게 자신의 승리 소감을 기자에게 피력했다. 이명박 당선자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박근혜 전 대표가 선거 기간 동안 BBK 의혹 등에도 불구하고 자체 유세를 통해 이 당선자를 측면 지원해준 ‘열정’에 비하면 이 의원의 ‘솎아내기’ 발언은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이 당선자와 박 전 대표가 지난 12월 29일 대선 뒤 첫 단독회동을 가졌지만 총선 공천 시기 등에 대해 양측이 완전한 의견일치를 본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 점을 감안하면 양측 사이에 여전히 ‘냉각수’가 흐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앞서의 ‘친이’ 의원 발언대로 이 당선자 측은 여전히 박근혜 전 대표 세력을 ‘솎아내’ 한나라당을 ‘이명박 당’으로 만드는 데 더 관심이 있음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이런 기류의 중심에 바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전쟁’이 자리잡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 당선자의 대선 승리로 나의 투쟁도 끝났다’라고 밝혔지만 이제 그에게는 ‘제2의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 이 당선자 그늘을 벗어나 오는 2008년 7월 당권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차기 대권에 도전할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그동안의 ‘잠행’을 끝내고 지난 12월 26일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의 해체를 선언하는 공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당내 경선 때의) 지지세력으로부터 당선자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 나부터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반대자를 이해하는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라고 밝혔다. 한 친박 의원은 이날 회견에 대해 “이 전 최고위원이 정작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오히려 대외적으로 자신의 정치 재개를 공개 선언하는 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발전연을 떠나 당 전체를 상대로 나의 정치를 하겠다는 선언일 수도 있지 않은가. 최근 당 안팎에서 이 전 최고위원이 이명박 당선자에게 최고위원 복귀를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해석이 근거가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명박 당선자가 최근 당에 ‘이 의원을 당 최고위원으로 복귀시키는 문제를 강재섭 대표와 상의해서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정반대의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전 최고위원이 머지않아 당의 전면에 컴백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이 전 최고위원은 이날 회견에서 차기 당대표 선거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새 정부가) 출범해 봐야 안다”며 당권 도전 여지를 남겨둔 것도 그의 컴백을 더욱 확실하게 굳혀주고 있다. 다만 그 시기는 2008년 4월 9일 총선 이후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전 최고위원은 총선에서 압승하는 데 일조해 그가 이 당선자 계보의 대표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뒤 이 당선자 계보를 그대로 물려받아 7월 전당대회에서 다시 한번 당권 도전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차기 대권 구도에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현재 전개되는 한나라당 ‘박-정-이’ 3국지의 최대 관심사는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다. 박 전 대표는 대선 이후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지만 총선 공천 국면이 도래하면 박 전 대표도 더 이상 관망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는 2008년 4월 총선은 박 전 대표 정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지금 당내에서는 총선 공천을 두고 벌써부터 ‘친이’와 ‘친박’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야 확실한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래서 박 전 대표는 이번 총선 공천에서 최대한 계보 의원들을 챙겨 총선에 전력투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대표는 중대한 전환점인 총선을 위해 자신의 분명한 권력의지를 보여준 뒤 ‘이재오 돌격대장’에 필적할 충성스러운 계보의원들을 총선을 통해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한 친박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계보정치를 멀리했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자가 이재오 정두언 의원 등의 비주류 몇 명에서 출발해 당을 장악한 것을 보고 생각을 바꾸어야만 할 것이다. 박근혜 근위대 없이는 대권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번 총선 공천에서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박 전 대표 측은 이 당선자 측이 총선 공천을 정권 출범 이후로 늦추자는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박 전 대표 그룹의 다수 의견은 2월 하순 이후 공천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 전 대표 측은 이 당선자 측이 2월 하순 이후 공천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 정부 조각 등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사안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의 도움을 다 받아낸 뒤 그들에 대한 본격적인 숙정 작업을 진행하는 수순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 친박 의원은 이에 대해 “얻을 것 다 얻고 난 뒤 공천을 주겠다는 계산이 아니겠느냐. 공천 시기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 못 박으면서 “1월 중순 이후가 당 내분의 분수령”이라고 전망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친이’와 ‘친박’의 충돌 지점이 생긴다. 4·9 총선을 두고 공천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박 전 대표의 차기 대권 구도도 확정되기 때문에 이번 공천 전쟁은 차기 대권으로 가는 첫 번째 전쟁이 될 것이다. 친이그룹은 공천 살생부로 친박그룹을 고사시킬 마음이 굴뚝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녹록지 않다. 먼저 박 전 대표의 수족을 무리하게 잘라낼 경우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2월 초께 창당할 ‘보수신당’에 친박계 의원들과 박 전 대표가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또 당내 30~40석을 차지하는 친박, 범박계 의원들이 집단행동을 할 경우 당장 새 정부 장관 인사청문회, 부처 개편 등이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에 대대적 숙정은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연착륙에 장애물이 될 뿐이라는 점을 머릿속에 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