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e-Motion(2014), 162.1X112.1cm, Oil on canvas.
Future Art Market-Artist 21
‘불에 담은 순수성과 에너지’ 정일진
예술가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시대 흐름을 파악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개척자형’과 기존 형식을 바탕으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질서를 세우는 ‘연구자형’이 그것이다.
정일진은 혁신보다는 연구자형 예술가의 입장에 서 있다. 그의 작업은 새로운 형식 실험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로 치장된 작품이 아니다. 평면을 고수하며 유화 기법으로 대상을 재현하는 그림이다. 특히 애정이 가는 것은 시류에 눈 돌리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방식의 작업을 꿋꿋하게 밀고 나간다는 사실이다. 뚝심이 느껴진다.
그는 불을 그린다. 검정 바탕에 진홍색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그래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한 번 보면 머릿속에 진하게 박혀버린다. 불이라는 강력한 이미지와 검정과 빨강색의 강렬한 대비 때문에 그렇다. 하고 많은 소재 중에 왜 불을 택했을까. 작가의 고백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불가에 앉아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던 중 나도 모르는 사이 깊은 사색에 빠지게 됐습니다. 분명히 눈을 뜨고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꿈을 꾼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이 나타내는 에너지, 온기, 오묘한 변화가 몽상에 빠지게 한 것이지요.”
Fire-Motion(2016), 162.2X80cm, Oil on canvas.
“장작불을 피워놓고 불가에 앉아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던 중 나도 모르는 사이 깊은 사색에 빠지게 됐습니다. 분명히 눈을 뜨고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꿈을 꾼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이 나타내는 에너지, 온기, 오묘한 변화가 몽상에 빠지게 한 것이지요.”
유백색의 강렬한 불꽃을 중심으로 노랑, 주황, 진홍, 빨강으로 변해가면서 비단결 같은 선으로 너울거리는 불길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빠져들 수 있을 법한 감정이다. 무아의 황홀경 같은 것이다.
이런 감흥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정일진의 불 그림이다. 여기에는 감상 같은 것이 끼어들 여지가 추호도 없다. 불을 상징하는 상투적인 수사나 은유도 없다. 뜨거운 불 앞에 서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전체에서 우러나오는 아우라는 추상적이다. 단순히 불을 사실적으로 그리려는 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상화된 불은 물리적인 불이 아니다. 마치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가 만난 물체를 태우지 않는 불과 같은 이미지와도 통한다. 하느님(신)을 상징하는 은유로 등장한 불은 형체가 일정하지 않은 빛의 성질로 정신의 결정체다. 정일진이 추상화한 불 이미지도 결국은 이런 정신의 결정체를 향하고 있다. 물체를 태워 화기와 에너지로 변하는 물리적 성질을 담으려 했다면 장작불 같은 사실적 분위기를 고수했을 것이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작가는 불의 물리적 성질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불꽃을 추상적 이미지로 발전시켰다.
그렇다면 그가 불 그림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뭘까. 불길과 맞닥뜨렸을 때 느꼈던 순수성이다. 거기서 작가는 세상을 이루는 기본 요소를 확실히 느꼈을 것이다. 불을 통해서….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