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기도(evening-prayer·2015), 145.5x112.1cm, 캔버스에 유화.
Future Art Market-Artist 23
‘치밀한 묘사와 동양적 사유의 결합’ 김경렬
우리 전통 회화에는 ‘관수도’라는 제목을 붙인 그림이 있다. 선비로 보이는 인물이 물을 바라보는 그림이다. 조선 산수화에서 하나의 장르로 분별할 만큼 심심치 않게 보이는 주제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물처럼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상선약수)이라는 생각을 실천하고 싶었던 조선 지식층의 마음을 품은 그림이다.
세종의 이종 조카였던 강희안이 그린 ‘고사관수도’가 가장 유명하다. 조선회화사 첫 장을 장식할 만큼 걸작으로 꼽힌다. 바위에 엎드려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욕심 없는 얼굴의 노인을 그렸다. 자연에서 인생의 참 뜻을 찾으려는 작가의 심중이 잘 드러나 있다.
같은 주제를 현대적 감성으로 담아낸 김경렬의 ‘저녁 기도’는 명상적이다. 바위의 앉아 해질녘 강물을 바라보는 소녀의 설정이 애상적이기까지 하다. 인물의 뒷모습을 약간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성으로 관람자의 관점을 그림 속 분위기로 끌어들인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당신은 어떤 생각에 잠기는가 하고….
그림 솜씨가 아주 출중한 작가로 알려진 김경렬은 자연 이미지에다 이렇듯 동양적 사유 공간을 심는다. 치밀하게 묘사한 바위와 물속의 자갈 혹은 나무는 사진처럼 보이는데도 생각의 여지를 충분히 품고 있다. 사실적 장면에 대한 감탄보다 명상적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Romantic(2015), 162.2x112.1cm, 캔버스에 유화.
왜 그럴까.
작가의 연출 역량 때문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실제 있을법한 장소를 바탕으로 하지만 화면의 공간은 작가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자연스럽다. 여기에 단색조에 가까운 절제된 색채로 명상적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실제 경치처럼 느껴지지만 작가의 관념적 풍경에 가깝다.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기 위한 상상 풍경인 셈이다.
무슨 생각일까.
김경렬은 ‘불이(不二)’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리즈를 그려내고 있다. 불교 철학에서 나온 이 말은 세상 만물이 각기 다른 모습을 갖고 있지만 근본은 모두 하나라는 뜻이다. 결국 인간과 자연은 커다란 질서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자연의 순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깨달음을 ‘불이 시리즈’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리는 물은 고요한 이미지를 보인다. 강물도 있고, 호수도 있으며 바다로 보이는 물까지 등장한다. 물은 고요하지만 멈춘 것은 아니다. 흐름도 있고 잔잔한 파도나 부드러운 포말도 보인다. 그런데 번잡스럽지 않다. 움직이지만 품위를 지키는 모양새다. 흡사 조선 선비의 여유로운 걸음걸이를 연상시킨다. 물의 속살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맑고 깨끗한 청정수다. 그 속의 자갈이나 물 밖으로 나온 바위도 정갈해 보인다. 이 모두가 작가의 뛰어난 사실 묘사력이 빚어내는 결과물들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주고, 모난 곳은 보듬고 헐거운 곳은 북돋우며 낮은 곳을 찾아 스스로 흘러가는 물의 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김경렬의 관수도와 가장 가까울 듯싶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