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토토’에게도 꿈이 이루어지길
미얀마 오지마을 깐퓨에 어둠이 깔리며 한국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찾아가는 ‘시네마 천국’ 프로젝트다.
오전에는 영화를 볼 주변을 봉사단원들이 깨끗하게 청소를 합니다. 오후에는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한편에서는 영화세트를 세웁니다. 한복을 입어보는 체험, 얼굴에 갖가지 재밌는 모양을 그려내는 미용체험, 한국 간식 먹어보기, 한국 전통놀이 체험, 간단한 미션으로 선물을 받는 게임도 합니다. 인근 초등학교에서는 영상으로 위생에 관해 교육도 합니다. 주민들과 봉사단체가 함께 어울려 하나가 됩니다. 마을 주민들이 너무 재밌어 하고 하루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한국과 더 친숙한 하루가 되었습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프로젝트. 이 영화는 소년 토토와 마을 극장의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애틋한 추억과 우정을 그렸습니다. 나중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토토가 30년 만에 고향을 찾아와 첫사랑이던 엘레나와 재회하는 가슴 아픈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잘려나간 필름의 수많은 키스 장면을 지켜보는 마지막 장면도 눈에 선합니다. 이 영화의 촬영지는 이탈리아 시실리(Sicily) 섬의 작은 마을 팔라쪼 아드리아노(Plazzo Adriano)입니다. 지금도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도 시실리 출신입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아카데미상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이 작품은 사실 주세페 감독이 데뷔 3년 만에 만든 것이어서 더 놀랍습니다. 32세이던 1988년 작품입니다.
낮에는 한국문화 체험시간을 가졌다. 주민들이 한복을 입어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탈리아 시실리 섬 하면 <시네마 천국> 외에도 두 작품이 떠오릅니다. 영화 <대부>와 소설 <상실의 시대>입니다. 시실리 출신의 마피아 세계를 다룬 <대부>는 아름다운 시실리를 자주 보여줍니다. 소설 <대부>를 쓴 작가는 마리오 푸조입니다. 그는 실제로 마피아 조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1966년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그가 발표하려는 작품에 관심을 가져 20페이지의 소설 줄거리를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보급판 페이퍼백 소설이 1000만 부가 넘어섰습니다. 사상 최고의 판매입니다. 바로 영화화 되면서 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러브스토리> 등 그간의 흥행기록을 다 깨버린 것입니다.
<상실의 시대>는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입니다. 그가 이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한 곳이 시실리입니다. 무명이던 그는 서른일곱 살의 어느 날 도쿄를 떠나 긴 여행을 떠납니다. 답답하고 암울한,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여 도착한 곳이 시실리입니다. 3년간을 이탈리아, 그리스 등지에서 살았습니다. 시실리에서는 제목도 붙이지 않고 썼던 그 소설이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그가 도쿄로 돌아왔을 때 그의 소설은 10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습니다. 자신도 놀랐습니다. 이렇듯 시실리는 꿈의 공장입니다. 하루키가 3년간 살며 일기처럼 기록한 에세이 <먼 북소리>에는 시실리의 수산시장 풍경, 그리스 섬 마을들이 정겹게 살아납니다. 그 에세이 안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한국 전통문화 체험으로 줄다리기를 하는 남과 녀. 그런데 이상하게 여자팀이 이긴다.
추운 밤에는 난로에 불을 지핀다. 난롯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은 조용히, 그리고 기분좋게 지나간다. 전화도 걸려 오지 않고 마감날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눈 앞에서 타닥타닥하고 불꽃이 튈 뿐이다. 기분 좋은 침묵이 사방에 가득하다.
인생에도 이런 시간들이 필요한 걸까요. 한적함, 고즈넉함, 시간도 속도도 필요하지 않은. 오늘 이 깐퓨 마을에는 바로 이런 삶들이 진득하게 배어 있습니다. 어둠이 깔리며 하늘에는 별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 우린 얼마나 저 별빛을 잊고 살았던가요.
이제 <시네마 천국>의 영사기사 알프레도처럼 한국인 영사기사가 스크린에 영상을 비춥니다. 한국영화 <국가대표>가 시작됩니다. 운동장에는 마을의 노인, 아낙네, 청년,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모두 영화를 봅니다. 시실리가 ‘꿈의 공장’이었듯 이곳 깐퓨 마을의 또 다른 ‘토토’에게도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저도 영화를 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