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 한파 속 1년 넘게 소녀상 지키는 대학생들···일본대사관 앞 노숙 농성장 취재기
[일요신문] 최근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문제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년 넘게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24시간 노숙하며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이 있어 <일요신문>이 현장을 찾았다.
최근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문제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년 넘게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24시간 노숙하며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이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소녀상지킴이 제공
소녀상 바로 옆을 지키는 이들은 ‘일본군위안부사죄배상과 매국적한일합의폐기를 위한 대학생공동행동’(소녀상 지킴이)으로 자발적으로 12·28 위안부 합의가 맺어지고 이틀 뒤인 2015년 12월 30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정부가 손을 놓는 사이 이들이 소녀상을 대신 지키고 있는 것이다.
# 1.5평 남짓 비닐텐트에 24시간 2교대...휴학한 학생 다수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가 어이진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옆에 있는 이들의 텐트를 찾았다. 바로 1년 넘게 농성을 이어온 소녀상 지킴이가 머무는 공간이다. 이들이 머무는 공간은 4.9587㎡(약 1.5평)에 불과해 성인 4명이 들어가면 틈이 없을 정도로 비좁았다. 내부에는 전기장판이 깔려 있고 한쪽에 난로가 있었다. 하지만 빈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녀상 건너편의 일본대사관 재건축 건설 현장에선 먼지가 날렸고 인근에 연달아 주차된 경찰 버스의 엔진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녀상 지킴이는 매일 오전 9시부터 24시간 자리를 지킨 뒤 다음날 오전 9시 교대한다. 처음에는 몇 개의 단체가 돌아가면서 자리를 지켰는데 현재는 희망나비와 환수복지당 단 2개 단체가 돌아가면서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이날 텐트 안에는 소녀상 지킴이 최혜련 대표(23)를 비롯해 남학생 1명과 여학생 1명 등 3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최 대표는 “보통은 휴학을 하지만 개강하고 나면 학교 가는 친구들이 생긴다. 그 친구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와서 도와준다”고 말했다.
이들이 1년 넘도록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 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이 일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저 소녀상이 어떻게 보면 남의 일일 수 있는데 제가 그 때 태어났더라면 내가 (위안부로) 끌려갔을 수 있었겠다고 생각하니 ‘이건 나의 일이고 내가 피해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누구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나 때문에 하는 일이라 하게 된 일”이라고 덧붙였다.
# “위안부 문제는 나의 일이고 내가 피해자”...집밥 그립기도, 시민들 관심이 버팀목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윤재민 씨(21)는 소녀상 지킴이 활동에 쏟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윤 씨는 “이곳에 와서 친구들, 선배들을 보고 얘기하다보면 하루 그 짧은 시간 동안 배우는 게 정말 많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몰랐던 사회를 보는 것 같고 체력적으론 힘들어도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해 계속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녀상 지킴이’ 텐트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준 건 시민들의 관심 덕분이다. 이들은 주로 간편한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시민단체나 일반 시민들이 직접 찾아와 챙겨준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윤 씨는 “사실 이곳에 와있으면 집밥이 그리울 때가 많은데 직접 따듯한 밥과 반찬을 만들어서 주고 가시는 분들이 계신다. 또 텐트 안에 있는 난로나 각종 물품들도 모두 시민들께서 주신 거나 시민들의 모금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주요 여야 대권 주자들이 대부분 한일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파기론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소녀상 지킴이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직접 행동으로 나설 것이라 강조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총선 전만 해도 국회의원들이 자주 방문했다. 하지만 총선 이후에는 발길이 뚝 끊겼다”며 “여기 와서 사진만 찍고 가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건 없기 때문에 대권주자라고 해서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거란 생각은 안 든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던 우리는 위안부 합의가 폐기될 때까지 이 운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