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시스템 개혁 이젠 언론계 몫
▲ 지난 3일 인수위가 국정홍보처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사진공동취재단 | ||
“정부가 주도하는 언론 규제는 시대착오적이다. 이명박 후보의 생각도 그렇다.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게 확고한 입장이다. 자율 규제 방식이 바람직하다.”(이명박 선대위 박천일 교수, 11월21일 한국기자협회 주최 대선 미디어정책토론회)
지난해 언론계 최고의 논란거리는 두말할 나위 없이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이었다. 이명박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이 방안을 폐지하겠다고 공약으로 내걸었다. 과연 새 정부의 언론 정책은 어떻게 바뀔지 살펴봤다.
취재지원선진화 방안 논란은 지금까지 7개월 넘게 계속됐다.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을 심의·확정한 것은 지난해 5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이 1월 “몇몇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 가지고 기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만들어 나가는 기자실의 실태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지 4개월만이었다.
이후부터 정부와 언론은 극한 대결로 치달았다. 기자 사회는 일제히 반발했다. 기자협회가 6월 전국 기자 301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 90.7%(반대하는 편 42.5%, 절대 반대 48.2%)가 정부의 방안에 반대했다. 일선 기자들의 반발은 그동안에도 수그러들지 않았고 정부는 정부대로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을 강하게 추진, 대선을 앞둔 지난달에도 경찰청과 국방부가 기자실 폐쇄를 강행해 갈등을 빚었다. 국정홍보처가 기자실 통폐합 등에 사용한 예산만도 55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한겨레와 인터넷매체를 뺀 정부기관 출입기자들은 통합브리핑룸 이용을 거부하고 주변 다른 공간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총리실 출입기자들은 감사원 기자실에서, 경찰청 기자들은 청사 1층 로비에서 근무 중이다. 통일부 기자들은 청사 부근 모 기업 기자실에 자리를 잡고 있다. 외교통상부 기자들은 그동안 청사 주변 커피숍을 전세내고 이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다. 많은 기자들이 대선을 거쳐 인수위 활동 등 현안 쪽으로 집중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새 정부는 국정홍보처 폐지 및 취재지원선진화 방안 전면 재검토를 밝힌 바 있다. 차기 정부는 종전처럼 취재를 위한 기자들의 정부청사 출입을 보장하고, 청사 내에 기사송고실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또 신문유통원, 신문발전위원회, 언론재단 등 ‘신문 지원 기관’으로 이름 붙여진 기관을 통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새 신문법에 이런 내용을 담겠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있었던 국정홍보처의 인수위 업무보고에서는 인수위와 홍보처 간의 신경전이 팽팽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홍보처는 “관료는 영혼이 없다” “정부조직법상 언론 대처기능이 없는 가장 약한 조직이 질타를 받는 아이러니” 등의 격한 표현까지 쓰며 부처 존속에 대한 방어논리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홍보처의 한 참석자는 “국정홍보 시스템은 성공적으로 구축되었으나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 형성으로 체감적 홍보성과가 미흡했다”며 책임을 언론에 돌리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인수위가 국정홍보처 폐지 방침을 발표한 이후 각 부처들도 취재 통제 조치를 일부 완화하고 있다. 외교부는 9일 옛 브리핑룸으로 자리를 옮기고 간담회도 가졌다. 국방부도 끊었던 송고실의 난방과 전기를 되살렸다. 경찰청 간부들도 임시송고실에 내려와 기자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한 중앙 부처는 대변인실을 기사 작성 공간으로 기자들에게 열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인수위는 기사송고실을 원상 복구하기 위해 최근 현장 점검을 실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진화 방안 추진을 주도했으나 폐지가 확실시되는 국정홍보처 측에서는 “브리핑룸 운영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우리가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이명박 당선인이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을 백지화하겠다는 애초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이 마무리되고 윤곽이 드러나는 2월 정도가 되면 원상복구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선진화 방안이 백지화되더라도 취재시스템 개혁 문제는 계속 화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메이저 언론사 기자들의 인터넷 등 신진 미디어 기자들에 대한 배타성 등은 계속 논란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 주도가 아닌 언론계 자율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영호 대표는 “앞으로 취재시스템 개혁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철저히 언론계 자율로 해결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 자체적인 시스템 개혁 능력 여부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과연 지난 1년간의 갈등과 분쟁이 진정한 ‘취재선진화’를 가져왔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장우성 기자협회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