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계약” VS “합법 절차”…영세 업체는 곡소리
지역에서 15년 넘게 운영돼 온 영세 장례식장을 두고 상조업계 1위 업체가 건물 소유주와 짜고 매매계약을 맺어 장례식장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S 장례식장 전경. 박정훈 기자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S 장례식장은 지난 1998년 렌터카업체 부설 주차장시설을 운영하던 건물을 임대해 장례식장으로 용도를 변경, 20년 가까이 운영돼 오고 있다. 이 장례식장의 대표 임 아무개 씨(70)는 용도 변경 당시 혐오시설이라며 건립을 반대하던 주민들을 설득해 장례식장 용도에 맞게 대수선허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임 씨는 10억 5000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지하 1층~지상 5층에 달하는 이 건물 중 지하 1층~지상 1층을 장례식장으로 용도변경하고 지상 2층부터 5층까지는 주차장으로 사용하며 장례식장을 운영해 왔다.
임 씨에 따르면 전 건물 소유주는 장례식장 건물에 대한 용도변경, 부속시설을 신축할 경우 이에 대한 보상을 해준다는 내용을 임 씨에게 약속했고 지난 10여 년간 장례식장 건물에 대해 임 씨가 우선 매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수차례 약속했다. 임 씨는 이를 믿고 장례식장 건물에 10억여 원의 증·개축비용을 투입해 장례식장의 가치를 증대시켰다. 임대계약 기간이 연장되는 상황에서도 임 씨는 건물을 매수할 뜻을 내비쳤고, 건물 소유주는 이 건물을 53억 원에 매매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마땅한 매도인이 나타나지 않자 이에 건물 소유주는 사전 협의를 통해 임 씨에게 50억 원에 이 건물을 매입해도 된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계약을 체결하기로 한 2013년 12월 3일 임 씨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건물 소유주가 급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해 약속 장소에 나올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날 계약이 불발되자 건물 소유주에게 안부차 연락을 취한 임 씨는 또 다시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본래 임 씨와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던 날로부터 이틀 뒤인 12월 5일 건물 소유주가 대형 상조업체 A 사와 60억 원에 비밀 유지조건을 달고 건물 매매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이후 2014년 1월 6일 건물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 A 사는 기존 임대료를 월 920만 원에서 월 1400만 원으로 약 50% 이상 증액한다는 내용 등을 담아 새로운 임대차 계약을 임 씨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임 씨는 당시 전 건물소유주와의 계약 기간이 2015년 8월 31일까지 남아 있었기에 A 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A 사는 계약 갱신 조건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장례식장 측에 건물을 비우라는 통지를 지속적으로 하며 압박했다.
A 사와의 새로운 임대차 계약체결에 동의할 수 없었던 임 씨는 법원 공탁절차, 계약기간 만료 전까지 전대차 등을 진행했고 유익비 청구 소송까지 진행했다. 장례식장 측은 1심에서 100% 승소했으나 2심에서 재판 결과가 100% 뒤집어져 패소했다. 그 사이 임 씨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던 담당 변호사는 고인이 됐고, 법무팀을 동원한 A 사와의 법적 다툼에 든 비용만 5000여 만 원에 달했다. 임 씨는 “A 사는 애초에 소송에서 이길 생각이 없었다. 전 건물주와 남아 있던 임대기간을 벌기 위해 소송을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A 사는 강제집행 및 손해배상 절차를 진행했고, 최근 강제집행을 예고해 사태는 더욱 긴박하게 전개됐다. 장례식장 측은 이에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A 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임 씨는 “최근 가진 협상에서 A 사는 보상 금액으로 40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으나 거절했다”며 “20여 년간 운영해오면서 10억 원 넘게 들여가며 장례식장을 운영해왔는데 법원집행비용 4000만 원만 지급하겠다 하고 나가라 하는 것은 우롱하는 처사”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장례식장 측 한 관계자는 “법리적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지만 도의적으로라도 호소하고 싶다”며 “꼼수 계약에 이어 우리가 반대하던 지역주민들을 설득하고 용도변경을 해 만들어온 장례식장을 거저먹으려는 것인데 이대로 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장례식장의 또 다른 관계자도 “꼼수 계약으로 건물을 인수하고 적절한 피해보상을 해주지 않는 것은 ‘갑질’이자 없는 사람들에 대한 횡포”라며 “직원 대부분이 50대에서 70대인 것을 감안하면 뭘 하며 먹고 살지 막막한 상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A 사는 전 건물 소유주와 임 씨와의 사전 계약체결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A 사 관계자는 “건물 소유주와 계약 당시 임차인과 계약이 끝났다고 해서 매매하게 된 것”이라며 “임차인과 건물 소유주 사이에 구두계약을 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매매 계약 후 임차인과 남은 계약기간에 대해 재계약을 요청했지만 거절한 쪽은 장례식장 측”이라고 강조했다.
유익비 청구 소송에 대해서도 “재판을 진행한 결과 임차인이 우리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판결 났다”며 “오히려 재판을 진행하느라 건물을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법원 판결대로 강제집행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미 법원집행 신청 전 장례식장 측에 이사비를 지급할 테니 분쟁을 마무리하자고 제안했지만 장례식장 측에서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