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죽어갈 때 가해자들에 ‘입양 허가’
지난해 8월 뇌사 판정을 받고 2개월 만에 숨진 입양아동 은비(4)는 입양가정에서 양부모에게 학대를 받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신문 DB
은비가 심정지 상태로 경북대병원에 실려 온 것은 지난해 7월 15일, 서울가정법원의 입양 허가 결정이 내려진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7월 22일이었다. 이 시기는 은비의 양부모가 아동 학대 의심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기간과 맞물린다. 입양기관은 양부모의 학대 사실을 숨긴 채 입양 허가 신청을 진행했고, 법원은 면밀한 조사 없이 형식적으로 제출된 자료만을 근거로 아이에 대한 입양 허가를 결정했다. 이로 인해 은비는 자신을 죽음에 이를 정도로 학대한 양부모의 ‘친양자’로서 사망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입양 신청은 양부모·친부모를 대신해 입양기관이 맡아 진행하게 되는데, 이때 법원은 입양기관이 제출한 자료를 중점적으로 살핀 뒤 허가 결정 여부를 가린다. 이 과정에서 양부모를 상대로 심문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입양기관에서 제출한 자료들이 요건에 맞으면 법원 측에서 따로 조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간혹 제출한 서류가 미비하거나 필요성이 제기될 경우 가정법원 소속 가사조사관이 직접 입양 가정을 조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력 부족과 업무 과다 등의 문제로 인해 이 과정이 축소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 법조계의 이야기다.
은비의 경우도 양부모가 학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지난해 7월 15일부터 입양 허가가 내려진 7월 22일까지 법원의 입양 가정에 대한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 입양기관이 보정서를 제출하기는 했지만 추가 서류로는 입양가정이 은비 외에 입양한 다섯 아이에 대한 재학증명서만을 제출했을 뿐이었다.
법원이 입양기관으로부터 자료를 받고 입양 허가 결정을 내릴 때 은비는 이미 뇌사 상태로 연명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법원의 입양 허가 결정 처리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더욱이 법원 측은 은비를 입양한 가정이 입양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 입양에 앞서 입양 가정을 조사하는 과정도 입양기관에 모두 일임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22일 은비의 입양을 허가한 서울가정법원의 결정문. 이 시기 은비는 입양가정의 학대로 잠정적인 뇌사상태에 빠져 있었다. 사진제공=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
입양 가정 조사에 대해서는 “서류 심사 후 가정법원의 가사조사관이 입양 가정에 직접 방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몇 차례를 방문할지, 정해진 시기에 방문할지 또는 불시에 방문할지 등을 결정하는 것도 각 법원마다 달라서 입양 가정에 대해 상세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발생한 ‘포천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의 경우는 가정법원이 전과 10범인 양부에게 입양 허가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숨진 입양아동의 친부모와 양부모는 합의를 통해 민간입양을 진행했고 법원은 합의 내용만을 참고해 입양 허가 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양부의 범죄 수사기록을 아예 확인하지 않았거나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허가한 것이다. 민간입양은 입양특례법이 아니라 민법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친부모의 동의만 있으면 별도의 조사 없이도 입양 허가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은비 사건과 포천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은 모두 법원의 입양 허가 처리가 허술하게 진행되면서 끝내 입양아동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허가 결정을 직접 내린 법원은 물론, 입양처 등 관계기관도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있어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가사전문 법률지원센터의 한 관계자는 “입양특례법을 통해 절차가 복잡해졌다고는 해도 결국 입양기관에 모든 것이 일임돼 있기 때문에 자격 없는 가정에 아동이 입양돼 고통을 겪더라도 입양 허가 결정을 내린 법원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며 “법원이 가사조사관 파견 확대와 심사 요건 강화 등을 통해 입양 가정을 더 면밀하게 파악해 입양 허가 과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은비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1월 25일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다. 학대에 직접적으로 가담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알려진 양부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습 학대 및 중상해), 학대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며, 양모는 아동방임 및 유기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